오늘도 어제처럼 엄마를 모시고 병원에 다녀와야 했다.
어제는 다리의 통증으로 가정의에게 갔었다.
그래도 그 연세에 정정하신 편인데도 나이는 못 속이는가 보다.
나이가 들면서 온 몸이 내려앉는다는 말이 새삼스러웠다.
그저 머리로만 그러려니 생각했었는데 실제로 엄마가
눈에 띄게 작아지시는 게 가슴으로 다가와 서럽게 저려왔다.
온 뼈 마디마디가 늙으면서 주저앉아버리기 때문이란다.

오늘은 보청기 사용한 후 일 주일 지나 다시 조정이 필요해서였다.
왼쪽 귀는 아주 안 들리고 오른 쪽 귀로 좀 들을 수 있는 편이셨는데
괜찮은 보청기 덕분에 좀 더 잘 들으시는 것 같아 마음이 기뻤다.
평소 보통으로 말을 하면 잘 못 알아들으셔서 가까이 다가가
여러번 같은 말을 되풀이 해야 할 때면 듣는 분도 그렇겠지만
말하는 사람도 짜증스러워질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교회에 나오시다 요즘엔 못 뵙는 노인부부가 생각난다.
인내심 많고 정이 많은 자그마한 할머니는 젊었을 때 할아버지 때문에 많이 힘드셨다.
늘씬하고 활달한 할아버지께서 젊었을 때 여자들에게 꽤나 인기가 많았다고 했다.
아니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교회의 친교시간엔 제일 커다란 목소리의 주인공이셨다.
잘 웃으시고 말도 잘 하시고 가만히 있지를 못하시는 분이셨다.

그런데 갑자기 조용해지시더니 얼굴이 어두워지셨고 우울해지시는 것 같았다.
집 뒤뜰 공터에 채소를 심어 예배 후 점심시간에 푸짐한 유기농 야채를 제공하시느라
두 노인분이 얼굴이 검게 그을릴 정도로 농사일도 재미있어 하시던 분이셨는데…
알고보니 할아버지의 청력이 급속히 떨어져 보청기를 써도 기계음만 요란해서
잘 듣지 못하시게 되자 그렇게 활달하시던 분이 의기소침해지신 것이었다.

할머니는 사시는 내내 속을 많이 썪히신 할아버지를 보실 때마다 웃으시며 머릴 저으셨다.
귀가 잘 들리지 않으시는 할아버지는 예배시간에 큰 소리로 할머니에게 물으셔서
조용히 설교를 듣던 사람들을 깜짝 놀래키곤 하셨다.  평소였다면 어림도 없던 분이신데…
점점 더 귀가 들리지 않게 되자 할아버지는 자신 속에 깊이 깊이 침전되시는 듯 했다.
눈동자도 힘이 없어지시고 의욕이 상실되어 밖에 나오려 들지 않게 되셨다.

아들이 미국에 초청해서 한국에서 가지고 있던 집도 팔고 온 재산을
몽땅 가지고 두 내외분이 미국 땅을 밟았을 땐 희망도 있으셨다.
그러나 막상 미국에 와 보니 아들내외는 고생하고 있었고 보다 못한 할아버지는
가지고 오신 재산을 몽땅 아들내외에게 주어 집 한 채와 작은 식료품가게도 마련했다.
아침에 눈 뜨면 아들내외는 가게로 나갔고 손주들은 할머니 차례였다.
할아버지는 가게를 돌보기도 하시고 노인봉사센터에서 일도 하시면서 활발히 사셨다.

그런데 어느 날 할아버지가 입으신 양복 어깨에 좀이 잔뜩 먹은 구멍들이 눈에 띄었다.
마르고 약간 굽어지신 어깨에 걸친 연회색 자켙에 좀이 먹어 듬성듬성한 구멍을 보자
가슴이 메어졌다.  그렇게 활달하시던 분이 교회에 오신다고 외출용 양복을 입으셨는데
오래된 양복이라도 괜찮은데 그렇게 심하게 좀먹은 것이라니…  이게 늙는 거구나 싶었다.
다시 사자니 얼마나 오래 입겠다고 사겠으며 그렇다고 살 돈도 그리 있지도 않은 듯 싶었다.

지금은 아주 들리질 않아 폐인이 되다 싶이 되셔서 웃지도 않고 말도 않으신다는 말이 들렸다.
그래도 정부보조금으로 주는 보청기 말고 돈을 지불하더라도 좀 더 나은 것을 하시면
훨씬 더 들을 수 있으실텐데 나의 엄마를 모시면서 그 노부부가 슬피 떠오른다.
그래서 죽을 때까지 노인들은 자신의 재산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는가 보다.
그러나 고생하는 자식에게 무언들 아까울까.  이것이 현실과 이상의 괴리이다.

한 달 전 엄마가 입으신 캐시미어 스웨터 뒤 어깨 한 군데에 꿰맨 자국이 눈에 띄었다.
그건 내가 엄마를 위해 선물한 화사한 진주황색이었는데 한 군데 좀이 먹은 것이다.
갑자기 그 할아버지의 뒷모습이 떠오르며 가슴이 울컥했다.
늙어간다는 것은 좀먹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그러나 엄마, 제가 있쟎아요.
걱정마시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그런 캐시미어 스웨터는 얼마든지 사드릴께요.

 

윤명희
2013-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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