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9.23 17:54

발칸유럽 크루즈 여행 에세이

크루즈를 타고 그리스나 이탈리아의 휴양지로 여행하는 상상을 한번쯤 해봤을 것이다. 한 중년의 여성 수필가가 꿈꾸던 크루즈 여행을 떠났다. 이탈리아와 발칸 사이, 아드리아해와 발칸반도를 누비는 동안 그의 마음엔 어떤 추억이 아로새겨졌을까.

 

발칸유럽 (사진=헬스조선DB)
발칸유럽 (사진=헬스조선DB)

코스타, 잊지 못할 추억이 되다
젊은 시절 한때 니체에 끌린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그가 젊은 날에 쓴 시 한 구절을 지금도 기억한다.

‘태양은 머리 위에, 내 제노아의 배는 물살을 가른다.’

그의 많은 시 중에 왜 이 구절이 지금까지 마음에 남아 있는지 알 수 없다. 그 시를 읽던 때도 가물가물하다. 아마서구식 교육을 받은 내가 슈베르트의 가곡 ‘보리수’를 들으면 정신적 향수를 느끼는 것과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오래전부터 제노아의 배는 아니더라도, 그리스나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그 부근의 바다 위를 떠돌고 싶었다. 이번 크루즈 여행은 그렇게 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지중해와 연결된, 이탈리아와 발칸 사이에 있는 잔잔한 아드리아해는 크루즈 여행을 하기에 안성맞춤인 것 같았다. 더군다나 그곳 바다에서 보는 일몰과 일출은 돈 주고도 못 보는 장관이라지 않은가.

 

피트니스센터, 실내외 수영장, 공연장, 레스토랑 등을 갖춘 코스타 메디테라니아호(8만5000t급).
피트니스센터, 실내외 수영장, 공연장, 레스토랑 등을 갖춘 코스타 메디테라니아호(8만5000t급).

우리가 탄 크루즈선 코스타사(社)의 ‘메디테라니아호(號)’는 길이가 300m나 되고 승무원이 900명 가까이 되는 거대한 선박이었다. 저녁마다 만찬장의 코스요리를 먹었다. 수시로 이벤트가 열렸고, 승무원은 식사가 끝날 때쯤이면 승객들과 함께 춤도 추고 가면을 쓰고 나와 분위기를 살렸다. 성악가 뺨치도록 노래를 잘하는 웨이터가 ‘오 솔레미오’를 부를 땐 아낌없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밤 9시엔 항상 대극장에서 하는 쇼를 보러 갔다.

잠을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도시에 우리를 풀어주고 우린 대기하고 있던 관광버스를 타고 주변의 아름다운 곳을 찾아다녔다. 배로 돌아오면 여유 있게 호텔 같은 방에서 쉬거나 갖가지 선상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었다. 가방을 싸는 번거로움 없이 배에서 내려 관광할 수 있는 게 크루즈 여행의 장점이었다.

아침마다 갑판에 나와 떠오르는 해를 보며 걸었다. 태양은 드넓은 하늘 위로 붉게 타오르는가 하면, 파스텔 톤의 다양한 빛살을 뿌려주기도 하고, 운무가 끼었나 싶으면 먼 바다 위로 무지개가 떴다. 가끔 별빛을 보러 갑판으로 나가기도 했다. 깜박이는 불빛과 밤하늘을 보면서 지구의 저 먼 곳에 있을 우리 가족을 생각했다. 내 정신이 이끄는 대로 이렇게 먼 곳을 찾아왔다. 그렇게 크루즈선 메디테라니아는 우린 인생에 또 하나의 아름다운 추억을 새겨놓았다.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는 ‘아드리아해의 진주’란 별명이 아깝지 않다. 영국의 소설가 버나드 쇼는 “진정한 낙원을 원한다면 두브로브니크로 가라”는 말로 이곳을 칭송했다.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는 ‘아드리아해의 진주’란 별명이 아깝지 않다. 영국의 소설가 버나드 쇼는 “진정한 낙원을 원한다면 두브로브니크로 가라”는 말로 이곳을 칭송했다.
그리스 이오니아제도에 있는 대표 휴양지 코르푸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옛 시가지를 걷다보면 이탈리아에 온 듯하다.
그리스 이오니아제도에 있는 대표 휴양지 코르푸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옛 시가지를 걷다보면 이탈리아에 온 듯하다.

발칸, 오렌지빛 지붕
옛 서양 문명이 대부분 그렇듯 마을은 성당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서유럽과 달리 발칸반도는 동로마의 그리스정교회와 서로마의 ‘로만가톨릭’이 혼재한다. 소련이 무너진 후 사회주의 국가였던 여러 연방이 독립을 선언하며, 내전의 상흔이 곳곳에 보였다. 역사적으로 강대국에 둘러싸인 발칸은 아드리아 해변에 높은 성벽을 쌓았고, 이런 성벽은 후손에게 관광지로서의 유산이 되었다.

아드리아해를 따라 내려오다가 지중해와 만나는 신화의 나라 그리스에 닿았다. 카잔차키스가 생각나고 조르바와 크레타가 크레타가 생각나지만 이번 여행지는 그리스에 대한 정신적 향수를 채우지는 못했다. 내가 생각하는 그리스는 강렬한 지중해 햇살에 하얀 집이 있는 풍경이었다. 바다가 보이는 집 앞, 꽃이 있는 테라스 의자에 앉아 붉은 포도주 한 잔을 여유 있게 마시고 싶었다. 서양의 정신적 고향이 된 신화와 유적지를 찾아 떠돌다가 카잔차키스의 무덤에도 가고 싶었다. 그러나 이번은 아니다. 크루즈선이 정박할 수 있는 두 개의 항구 아르고스톨리온과 코르푸가 우리의 목적지였다. 아드리아 해안의 여러 항구도시와 다를 바 없었다.

아르고스톨리온에 있는 작은 민속박물관에 들렀을 때 아기자기한 민예품과 생활소품은 내 감성을 자극했다. 전쟁에서 승리한 영웅들의 동상이나 웅장한 성채와 성당의 외관은 관광객에게 커다란 구경거리다. 그러나 그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긴 유품들도 정겨운 볼거리다. 손뜨개로 만든 아기 옷, 손때 묻은 피아노며 바이올린 등 악기, 섬세한 여인의 드레스, 예쁜 찻잔…. 역사 속에 수많은 전쟁을 치르고 모든 것이 파괴되는 비참함 속에서도, 인간은 아기를 낳아 기르고 아름다운 장신구를 만들고 노래하고 춤추며 즐겼다. 여행은 그런 것을 확인하는 또 하나의 과정이 아닐까. 비록 서유럽처럼 부유하지 않았지만, 발칸반도는 오밀조밀한 오렌지빛 지붕들처럼 서로 조화를 이루며 아름답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많은 폭포로 연결된 16개 영롱한 호수가 인상적인 크로아티아의 플리트비체 국립
많은 폭포로 연결된 16개 영롱한 호수가 인상적인 크로아티아의 플리트비체 국립 공원.
슬로베니아의 블레드호수는 둘레가 6km 정도의 작은 호수지만, 유럽 전체를
슬로베니아의 블레드호수는 둘레가 6km 정도의 작은 호수지만, 유럽 전체를 통틀어 가장 아름답기로 손꼽힌다.
‘알프스의 눈동자’블레드호수.
‘알프스의 눈동자’블레드호수.

내 소원, 맑은 종소리 되어
이번 여행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을 꼽으라면 크로아티아의 플리트비체국립공원과 슬로베니아의 휴양지 블레드호수다. 사람들은 대자연의 오묘한 조화를 보기 위해 멀고도 먼 길을 찾아 이곳에 왔다.

유럽의 비경이라는 플리트비체는 수많은 폭포와 다양한 빛깔의 호수가 장관을 이루는 곳이었다. 마치 숲의 정령이 살아있는 듯 싱싱한 생명력이 느껴졌다. 어느덧 나까지 푸른 숲, 푸른 물속의 물고기가 된 듯 가볍고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저녁이 돼서야 슬로베니아 국경을 넘어 블레드 호수가 한눈에 보이는 호텔에 도착했다. 어느 시인은 생애 가장 아름다운 아침을 이곳에서 맞았다고 한다. 창 밖을 보니 드넓은 호수와 그 너머 높은 암벽 위에 성곽이 조명을 받아 은은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알프스의 눈동자’라는 호수는 밤에도 반짝이고 있었다. 아침 식사 후 알프스 빙하가 녹아 만들어졌다는 블레드호수 트레킹을 시작했다. 높은 성 위에서 숲속 아름다운 오솔길을 내려오다가 호수를 따라 걸었다. 오솔길 여기 저기 이름 모를 야생화가 피어 있었다. 어느 관광지를 가도 그곳을 장식하는 화룡점정은 꽃이다. 꽃이 있다면 감옥이라도 아름다울 것 같았다.

호숫가 나무 그늘 아래서 낚시하는 사람들,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여유롭고 평화로운 휴식처였다. 사공이 젓는 배를 타고 호수 위 작은 섬에 있는 성당에 들렀다. 성당 안에는 종을 울리는 밧줄이 있었다. 이 줄을 세 번 잡아당기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사람들 마음속엔 얼마나 많은 소원이 있을까. 밖에서는 그 소
원들이 맑은 종소리가 되어 끊임없이 들려왔다. 나이 들어가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추억을 많이 만들 것, 더 많이 갈망하지 않을 것, 세상의 꽃이 주변을 밝히
듯 내 존재도 그러하기를, 그리고 할 수 있는 한 많이 사랑하기를. 내가 잡아당긴 소원의 종소리는 성당 밖 블레드호수 위로 울려 퍼졌다.

 

TIP. 헬스조선 ‘발칸유럽 힐링 크루즈’ 참가해볼까?
아드리아해의 가을이 깊어질 무렵인 10월 7~18일(10박12일) 헬스조선 비타투어의 ‘발칸유럽 힐링 크루즈’가 출항한다. 발칸유럽 3개국(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몬테네그로)과 이탈리아, 그리스를 초호화 크루즈를 타고 한 번에 둘러보는 일정이다. 매일 눈을 뜨고 일어나면 크루즈가 아름다운 성곽 도시 두브로브니크, 그리스 고급 휴양지 코르푸, 세계문화유산의 도시 코토르 등에 데려다 준다. 크루즈 관광을 마친 후에는 ‘유럽의 가장 아름다운 숲’ 플리트비체 국립공원과 ‘알프스의 눈동자’ 슬로베니아 블레드 호수를 찾는다. 일반 크루즈 프로그램에는 없는 헬스조선만의 특별한 일정이다. 한국인 전문 크루즈 인솔자가 동행하며, 1인 참가비 540만원(유류할증료·가이드 경비 포함, 선내승조원 경비 €70 불포함). 2017년에도 6월과 10월 두 차례 진행할 것이다.

 

1,313 total views, 2 views to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