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렌 이 펜주 딕킨슨 대학 교수 논문이 최근에 발표되었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생각이 착찹해졌다.  이 문제가 최근에 두드러진 문제라기보다 지금에서야 공론화 되었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미국선 한국인, 한국선 재미동포라 배척 당하면서 정체성 혼란이 심각해지고 집단에서 스스로 격리되어지는 현상이 생겼다는 것이다.

“나는 ‘제3의 문화를 가진 아이(A Third Culture Kid)’라고 말하고 싶어요. 새로운 형태의 민족성을 가진 거죠. 두 개의 외부 문화가 내 안에 함께 공존하는…”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재외동포 출신 글로리아(26)씨가 선언하는 자신의 정체성이다. 같은 처지의 은미(25)씨도 이렇게 말했다. “한국에서 내 ‘미국성(Americaness)’은 너무 튀어 보이죠. 하지만 내 집이 있는 미국에서는 저의 ‘한국성(Koreaness)’이 튀는 요소가 됩니다.”

아들도 내게 얼마 전이 되어서야  속내를 털어 놓았다.  콜롬비아 대학교에서 매케니컬 엔지니어링을 전공하고 있었을 때 자신이 아무 문화에 속하지 않은 존재로 심한 정체성혼란을 겪었다고 한다.  많은 자녀들이 대학에 들어간 후 가족의 보호를 벗어나 자유로워지면서 많은 혼란을 겪는다지만 내 아들만큼은 아무 문제 없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워낙 두 딸들이 너무 잘 자라주어 내가 너무 방심했던 것 같다.

미국에서 태어나 수많은 나라들을 여행하며 자유분망하게 자란 아들은 한국학생들 모임에 들기 매우 힘들었다고 한다.  한인학생들은 너무 페쇄적이라 한인끼리만 모이는 동아리가 대부분이어서  마음에 내키지 않았고, 그렇다고 다른 동아리에 참석하자니 거의 백인들이라 그것도 그리 내키지 않아 많이 혼란스러웠다고 한다.

기타를 잘 쳐서 대학시절에 오디션을 통해 아들만 빼곤 다 음대생들인 기타 동아리에서 활동하면서 때때로 연주활동을 한 것 외엔 한 두개 소그룹에 속하지 않았나 싶다.  워낙 아들을 믿어서 특별히 걱정을 안 했는데 정작 아들은 대학생 때 많은 정신적 고통을 겪었던 것 같다.

졸업 후 아들은 뉴욕에 있는 미국 투자회사에서 일하다 한국지사에서 일하게 되어 기대가 무척 컸었다.  나도 두 딸들은 그런대로 한국말을 잘 하는데 막내아들은 한글이 약해 좋은 기회로 잘 됐다 싶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함께 일하게 된 코워커가 아들보다 몇 살 위였는데 너무나 한국적이어서 함께 일하기 무척 힘들었다고 한다. 나이 한 살만 더 먹어도 대접받으려 들고 거의 24시간 무섭게 일만 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는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서울대 출신이었는데 자세히 이야기하진 않지만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로 몇 번 충돌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다니던 투자회사를 그만두고 자신의 회사를 설립하겠다고 열심히 연구하고 공부하고 있다.  암스테르담 회사의 일을 봐주고 생활비를 벌면서 베를린에서 지내다가 잠시 비지니스 비자를 얻기 위해 뉴욕에서 지내고 있지만 다음 달 곧 베를린으로 거처를 옮겨 성공할 때까지 있을 예정이라고 해서 앞으로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  요즈음 일이란 다 콤퓨터 작업이라 암스테르담 회사의 일을 도와주지만 세계 어디에 있어도 화상통화로 일이 가능해 생활비는 일단 해결된 셈이다.

다니던 투자회사에서 다시 일하면 좋겠다는 제의를 받았으나 거절했다고 한다.  맨해튼에서 받는 월급으로는 비싼 아파트 값을 물고 나면 빠듯한 생활을 면하기 힘들다며 아직 젊으니 자신의 계획을 얼마든지 실행에 옮길 수 있다고 했다.

아들이 자신의 생각을 오픈할 수 있다는 것은 오랫동안 힘든 시간을 보낸 후 생각이 정리되면서 어느 정도 자신감을 찾았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심정을 이야기하며 자기는 한국인도 아니고 미국인도 아니고 처음부터 세계인이라고 생각했다며 자신의 생각이 옳았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유럽에 둥지를 틀 아이디어가 생기고 세계 어느 나라 청년들과도 머리를 맞대고 함께 일할 수 있다고 했다.

유럽의 경기가 악화되면서 스페인만 하더라도 청년 80%가 실직상태라고 한다.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여서 유럽에서 가장 경쟁력있는 독일 특히 베를린에 많은 청년들이 창업의 꿈을 품고 모인다고 했다.  아들이 시작하는 비지니스에 벌써 한 독일회사가 관심을 표명해서 미팅이 오고가고 있다.

엄마가 독일어를 좀 하는 게 이상하다며 독일어와 중국어는 듣기 싫다고 하더니 지금은 둘 다 배워야겠다고 하니 세월이 약인 것 같다.  콤퓨터에 앉아서 독일어를 열심히 배운다.  내게 짧은 말은 독일어로 한다.  “Danke schoen…”  “Sprechen sie Deutch?”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이 더욱 분명하다.  자녀들을 위해 기도에 힘써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자녀들의 영혼이 잘 되어야 하고 그 다음 하는 일들이 주 안에서 잘 되기를 쉬지 말고 기도해야겠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면 무엇이 두려우랴.

 

윤명희
3/18/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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