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서 책을 사면 마음이 뿌듯해지고 아주 부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들어 시간이 나면 가끔 들러서 평소 생각했던 것을 사오는 편이다.  모두 이모라고 부르는 그곳에서 일하는 여자 분은 오랫동안 그 서점에서 일해 왔기 때문에 나의 독서성향을 잘 알아 내가 필요한 것 외에 더 살 게 없겠느냐고 물으면 이것저것 추천해주기도 한다.  그녀가 권했던 책을 여러 권 사놓고 보지 못했던 책들이 많다.  이제 8월도 중순에 접어들어 아침 저녁 제법 선선해 책읽는 계절이 온 것 같아 하나둘 읽어보려고 한다.

오늘 오후에 책 세 권을 들고 가까운 스타벅스에 가서 카페라떼 냉커피와 샌드위치를 시켜 놓고 우선 한 권을 읽기 시작했다.  책은 이미 작고한 서강대 교수였던 장영희의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이었다.  수필집이라 주위에서 일어난 개인경험을 써서 그리 어렵지 않아 읽는 도중에 시원한 하비스커스 차와 오트밀 과자로 입가심하면서 오후 한나절 앉아서 책 한 권을 다 읽었다.

미국에서 공부하던 이야기와 암으로 투병하면서 그리고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주위에서 겪었던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써내려가서 그녀가 죽기 전의 생각을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여러 수필 중 제자였던 ‘민식이의 행복론’을 읽다가 눈물이 핑 돌았다.  그는 고등학교 3학년 떄 삶과 죽음이 간발의 차이로 갈라지는 것을 목격하였다.  같은 반 친한 친구 두 명이 학교 앞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후 한 명은 죽고 한 명은 살아나서 병실에서 내뱉은 첫 마디를 듣게 된다.   “엄마! 나 화장실 가고 싶어!  오줌 마렵다고!”

한 친구는 떠나 보내고 또 한 친구는 되찾게 된 민식은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깨닫게 된다.  행복이란 특별한 것이 아니라 그저 이 세상에서 숨 쉬고, 배고플 때 밥을 먹을 수 있고, 화장실에 갈 수 있고, 내 발로 학교에 다닐 수 있고, 내 눈으로 하늘을 쳐다볼 수 있고. 작지만 예쁜 교정을 보고, 그냥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이 행복하다고 굳게 믿는다.

또한 이 책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에서 서강대 남학생들과 여학생들이 장래 아내감과 남편감에 대해 내세우는 조건들도 재미있다. 그야말로 화성과 금성의 차이라고나 할까?

내가 좋아하는 여자는

나만 사랑하고 다른 남자는 쳐다보지도 않는 여자.
우리 부모님 공경하고 잘 돌보는 여자.
남편 도움 청하지 않고 가사일 혼자 알아서 하는 여자.
요리 잘하는 여자.
부지런해서 늘 집 안을 깨끗하게 잘 정돈해 놓는 여자.
몸과 정신이 건강한 여자.
책을 많이 읽는 교양 있는 여자.
근검해서 옷 사는 데 돈을 많이 쓰지 않는 여자.
내가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는 여자.
나보다 오래 사는 여자.
비가 오면 우산 들고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려 주는 여자.
내가 아무리 늦게 와도 저녁 먹지 않고 기다리는 여자.
아들 잘 낳는 여자.
목소리가 크지 않은 여자.
너무 너무 예쁘지는 않지만(너무 예쁜 여자는 위험하니까!) 조금은 예쁜 여자.
밤늦게 친구 데리고 와도 불평 한마디 안 하는 여자.
노래를 잘해 ‘주부 가요 열창’에서 1등상을 타서 나를 하와이에 데리고 갈 수 있는 여자.
일찍 일어나서 모닝커피를 만들어 달콤한 키스와 함께 주는 여자.
내 의견에 찬성하지 않을 때도 늘 웃는 여자.
밤에 도둑이 들어도 무서워하지 않는 여자(왜냐면 내가 무서우니까!)
일요일에 하루 종일 자게 해주는 여자.
겨울이면 손뜨개로 스웨터 짜주는 여자.
남에게 환멸감을 주지 않고 초미니 스커트를 입을 수 있는 여자.
내가 돼지 멱따는 소리로 노래 불러도 “오 당신 목소리는 엘비스 프레슬리 같아요!” 하고 말해 주는 여자 등등.

내가 좋아하는 남자는

나만 사랑하고 다른 여자는 쳐다보지도 않는 남자.
신체 건강하고 머리 좋은 남자.
야망이 있는 남자
유머 감각이 풍부한 남자.
돈을 많이 버는 남자.
가사일을 즐겨 하는 남자.
두말없이 우리 부모님을 부양하는 남자.
내가 야단칠 때 말없이 앉아 있는 남자.
내 독립적 생활을 방해하지 않는 남자.
애 잘 키우는 남자.
술은 조금 하되 담배는 피우지 않는 남자.
퇴근 후에 집에 와서 요리하고 집 안 치우는 남자.
우리 부모님을 일주일에 한 번 방문하는 남자.
나보다 오래 사는 남자.
아침에 일찍 일어나 모닝커피를 만들어 침대로 가져다주는 남자.
내 잘못을 이해해 주는 남자.
더러운 버릇(발을 안 씻는다거나 하는)이 없는 남자.
나의 사교 생활(집에 늦게 들어온다든지, 술을 마신다든지 하는)을 이해해 주는 남자.
예쁜 여자를 끔찍하게 싫어하는 남자.
스포츠를 싫어하는 남자.
목소리가 좋은 남자.
일주일에 한 번 비싼 레스토랑에서 외식하자고 하는 남자.
결혼기념일과 내 생일을 절대로 잊지 않는 남자.
자주 꽃을 주는 남자.
나와 함께 쇼핑 가는 남자.
비 오는 날 함께 오랫동안 우산 받고 걷다가 카페에서 차를 마시는 낭만이 있는 남자.
여자 화장실 앞에서 내 핸드백 들고 서 있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남자 등등.

행복을 위한 이 많은 조건들을 써내려 갔지만 끝 마디에 단 하나의 단서를 붙이길 “사랑에 빠진다면 위의 조건들은 문제가 안 돼요!”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더니 사랑병에 걸리면 모두 눈에 콩깍지가 씌우는 가보다.

산 좋고,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이 없다.  사랑한다면 그 중 3분의 1 아니 10분의 1만 되어도 감사하는 마음의 여유를 갖고, 부족하고 못난 것이 오히려 안쓰러워 진다면 모두 행복해질 것이다.  부디 행복하세요…

 

윤명희
2012-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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