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녀는 빨갛고 납작하게 생긴 포르쉐를 몰고 내가 일하던 회사 건물 1층 오픈 차고에 미끄러지 듯 차를 세웠습니다. C는 포르쉐를 몰고 나를 픽업하러 온 최초의 사람이었습니다. 그 녀는 내가 회사 일로 알게 된 독일계 미국인인 남자가 자신의 아내 L이 한국여자라는 말에 호기심이 생겨 함께 만나게 되었고 L이 자신과 친하게 지내던 C를 내게 소개해서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L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는 이랬습니다. 한국에서 영문과을 나온C는 시카코에서 살다가 성격차이로 한국인 남편과 이혼한 후 아이들을 남겨두고 홀로 뉴욕으로 와서 살고 있으며 워낙 친정이 잘 살아 돈도 있었고 또 나중에 팔았지만 맨해튼에 커다란 샐러드 바를 운영하면서 돈을 꽤 벌었다고 합니다.
나는 그들을 통해 맨해튼에 밀리언 달러 클럽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그 녀의 사생활은 꽤 복잡한 듯 했습니다. 생각이 비슷해야 대화가 되고 친구가 될 수 있지만 서로의 관심사가 달라 그들과의 만남도 그리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두 번째 포르쉐를 만나게 된 것은 둘째 딸인 한나가 예일 의대 다닐 때 지금 사위인 하워드가 인사차 오면서 새까만 포르쉐를 몰고 왔던 것입니다. 그 때 하워드는 하버드 법대를 졸업하고 하버드 의대에서 또 다시 공부하고 있어 학생신분이었는데 그 비싼 차를 몰고 온 것입니다.
아직 돈을 벌지도 못하면서 부모 돈으로 비싼 차를 몰고 다니는 것은 좋게 볼 수 없다며 정말 그런 차를 타고 싶으면 자신이 충분히 돈을 벌 때 타도 늦지 않다고 딸에게 말했습니다. 딸이 그 말을 전했던지 그는 집으로 돌아가서 당장 포르쉐를 팔아 그 돈으로 다이아 반지를 사서 한나에게 청혼했습니다. 나의 의견을 존중해 준 하워드가 더 예뻐보인 것은 두 말 할 필요도 없습니다.
세월이 흘러 지금 둘은 결혼해 아이도 낳고 잘 살고 있습니다. 사위가 차에 관심이 많아서인지 여러 대의 신형 차를 갖고 있습니다. 며칠 전 둘째 딸에게 갔을 때 딸이 맨해튼에 함께 가자고 해서 아무 생각없이 흰 포르쉐에 올라탔습니다. 그런데 뉴져지와 뉴욕을 잇는 죠지워싱턴 브릿지가 심하게 밀리는 바람에 약속시간이 늦게 되어 내게 차고에 넣어달라며 내려버렸습니다.
난생 처음 포르쉐를 운전하려니 불안하기도 했습니다. 엔진소리는 더욱 요란하게 들려왔고 패달을 밟는데도 힘을 더 주어야만 했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잠깐 스쳤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차 열쇠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갑자기 등에 진땀이 났습니다. 당연히 핸들 오른 쪽 아래에 매달려 있어야 하는 데 보이질 않았습니다. 나는 잠시 아마 포르쉐 신형이라 열쇠없이도 발동이 걸리는가 보다 생각하며 혹 버튼이라도 있나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딸이30분 쯤 걸린다고 하기에 복잡한 맨해튼이라도 순경이 와서 떠나라고 하면 몇 바퀴 슬슬 돌면 되겠지 생각하고 엔진을 킨 채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40분이 지나도 나오질 않아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괜히 차고에 넣을 걸 그랬다는 생각을 하며 차 열쇠를 찾는데 갑자기 여 순경이 다가와서 “Why are you here?” 하며 눈을 치켜뜨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애써 웃음지으며 곧 갈 거라고 했으나 열쇠를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재빨리 딸에게 전화했으나 받지도 않아 매우 당황했습니다. 한참 차 안을 두리번 거리는데 핸들 왼쪽 아래 깊숙히 차 열쇠가 매달려 있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내가 한국에서부터 운전면허증이 있었어도 왼쪽 눈에 잘 띄지도 않는 그런 곳에 차 열쇠를 꽂고 시동을 거는 차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이 열쇠를 왼손으로 돌리자면 오른 쪽으로 돌려야 하나 왼 쪽으로 돌려야 하나 잠시 혼란스러웠습니다. 절대로 엔진을 끌 수 없어 빨리 딸이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여 순경의 독촉에 밀려 한 바퀴 돌기 시작했습니다. 한 바퀴 채 다 돌기 전 신호등에 서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습니다. 금방 나간다는 반가운 딸의 목소리였습니다.
부모가 모두 의사였던 둘째 사위는 예일 대학 2학년 재학 때 잠시 집 주위에 볼 일이 있어 나가셨던 어머니를 교통사고로 여의게 되었습니다. 그 녀가 운전하던 차는 아주 작은 차여서 사고 당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 충격으로 그는 하버드 의대에서 심장과 교수로 있던 누나와 함께 있기 위해 예일 대학에서 하버드 대학으로 전학하였습니다.
지금도 어머니가 아주 든든한 독일제 차를 운전하셨더라면 돌아가시지 않았을런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위는 절대로 작은 차는 사지 않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 큰 딸 룸메이트의 남편도 졸지에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을 두고 그가 든든한 차를 운전하고 있었더라면 목숨은 잃지 않았을런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딸 부부 모두가 병원 일로 항상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서 차는 제일 든든할 뿐만 아니라 새 차여야 한다며 차에 관한한 돈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런 사위의 상처를 이해하기 때문에 옆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없습니다. 또한 자신이 열심히 일을 하고 그 수고의 결과로 산 차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윤명희
2011-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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