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어느 아는 사람이 책 한 권을 빌려주어 읽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 책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김수현 작가의 소설이었는데TV 드라마로도 인기를 끌었던 ‘세 딸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평소 소설보다 산문이나 자서전을 더 좋아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 김수현 씨의 노련한 글솜씨에 흠뻑 빠졌던 적이 있습니다. 덕분에 평소 잘 보지않던 그 비데오를 중간부터 빌려다가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책 중에는 세 딸들이 한 지붕아래에서 자랐지만 서로 예상을 할 수 없는 인생을 사는 다양한 삶을 그린 것이었습니다. 그 소설 끝부분에 이런 한 줄의 짧은 표현이 나의 마음을 강력하게 끌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아닌 나를 나로 착각하고 사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라는 대목이었습니다.
김수현 씨를 두고 언어의 마술사라고 부르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것이 이번에도 또 다시 증명되는 것 같습니다. 너무 천편일륜적인 내용과 한 바구니에 밥 담 듯이 같은 공간에서 출생의 비밀로 얽히지 않으면 부잣집과 가난한 집 젊은 이들의 비약과 비운을 담은 것들이 대부분이라 보기에도 민망스럽고 식상해서 드라마는 보고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번 작품인 ‘천일의 약속’은 간결한 대화와 빠른 극의 흐름이라던지 구도가 아주 탄탄해 보였습니다.
극중 노회장의 딸로 나오는 완벽한 신부감인 향기와 그 노회장 밑에 병원장으로 근무하는 임채무의 아들 지형이 그리고 어릴 때부터 고아로 자란 서영, 이 세 사람이 엮는 삼각관계는 젊디 젊은 서영에게 찾아 온 치매라는 엄청난 충격과 함께 예기치 못하게 발생되는 사건의 줄거리입니다.
극중 인물인 서영과 지형은 처음 보는 탈랜트였지만 그들의 연기가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것 같았고 그 이름처럼 지고지순한 향기도 독특한 캐렉터로 드라마의 맛을 더하는 것 같습니다. 이미 지형은 부잣집 딸 향기와의 결혼도 파기한 채 죽음을 앞둔 서영을 향해 향기는 가진 것이 많지만 서영은 자기가 사랑하고 지켜주어야 할 사람이라며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있습니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이미 암으로 세상을 떠난 장진영의 곁을 죽을 때까지 옆에서 지켜주었던 남자가 생각나게 하기도 했지만 장진영도 서영의 상황과는 또 다른 차이가 있습니다. 물질만능 시대에 살면서 최악의 조건도 마다하지 않고 그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고 부르짖는 그런 멋진 남자가 백마를 타고 나타나주길 바라는 수많은 여자들에게 잠시 현실을 잊게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수천 만명 중 한 사람에게 이런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을런가.
내가 살아오면서 가끔 소울메이트라는 이성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 이외에는 갈라놓지 않을 듯한 사랑도 많은 경우 퇴색되어 버리는 것을 봅니다. 그렇듯 불완전한 인간의 사랑이므로 무너질 가능성이 더 많을 것 입니다. 또한 그렇게 사랑이 불완전하기에 사람들은 미치도록 완전한 사랑을 갈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드라마 ‘천일의 약속’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궁금하기도 합니다. 향기가 자신은 지형을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할 정도로 ‘오직 당신만을 사랑해’로 일관할 것인가 아니면 마음을 고쳐먹고 새로운 사랑을 찾아갈 것인가. 나중에 서영의 상태를 알게되면서 지형을 더 사랑하게 될 것인가 아니면 눈물을 감추며 돌아설 것인가. 서서히 기억을 잃어버리는 서영의 연기가 기대되면서 주위 인물들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앞으로의 전개가 궁금해집니다.
사랑은 관심이며 희생이라는 명제 앞에 가장 근접한 최상의 사랑 진면목이 어떻게 보여지게 될런지 바보상자를 무시하던 내가 바보처럼 즐겁게 콤퓨터 스크린 앞에 의자를 끌어당기게 됩니다. 나 또힌 바보가 되어…
윤명희
2011-11-11
573 total views, 1 views today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