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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정원가꾸는 것을 너무 좋아하셨습니다.  이북에서 사실 때 들에
싱싱한 채소나 맛있는 과일들이 항상 풍부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셨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큰 탈없이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 게 아니냐고 하시곤 했습니다.

그러나 세월은 약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처럼 부지런하고 일을 무서워하지 않던 분이
올해는 아주 눈에 띄게 몸이 쇠약해지시는 것을 피부로 느낍니다. 한쪽 귀도 잘 들리지
않는다며 옆에 놓아둔 엄마의 핸드폰 소리가 울려도 가만 계시기도 합니다.

아파트에서 사는 것을 몹시 싫어하셨습니다.  뜰에 나가 꽃과 채소를 돌보며 살아야지
어떻게 땅을 밟지 않고 살 수 있느냐고 하셨습니다.   정원을 돌보는 재미에 봄부터
검게 그으른 얼굴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열심히 땅을 갈곤 하셨습니다.

그런데 올해엔 야채 모종을 사오라는 부탁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이젠 도저히 뜰에서 일할 기운이 없어 자신이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아, 엄마는 영원히 내 곁에 계실 것처럼 생각하며 살아왔었는데…

더 이상 이 세상에서 사시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무겁게 짖누르는 깊고 깊은 슬픔이 밀려왔습니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이지만
이북에 남겨진 생사를 알 수 없는 엄마의 둘째 언니를 빼곤
다 돌아가시고 엄마만 외로이 혼자 긴 세월을 사셨습니다.

점점 연로해 가시는 엄마의 모습을 지켜보아야 하는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스산한 가을 바람에 앙상해지는 가지에서 떨어진 마른 낙엽들이 아스팔트 길위에
이리저리 몰리기도 하며 딩굴어 다니 듯 나의 마음을 쓸쓸히 휩쓸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살아 있는 것들은 움직이며 움직이지 않으면 죽게됩니다.   정지되는 것은 죽는 것과 같습니다.
며칠 전 아무 소리없이 시장에 나가 맵지 않은 한국고추와 오이 모종을 사가지고 왔습니다.
엄마가 포기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움직이며 항상 좋아하던 일을 하시길 원하면서 말입니다.

오늘은 시장에서 노랑, 분홍, 연주홍 장미 세 그루를 사왔습니다.
며칠 숨막힐 듯 무덥던 날씨 탓이었는지 새로 사온 커다란 화분에 옮겨 심는데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눈까지 따가왔고 옷도 소낙비를 맞은 듯 했습니다.

올해부턴 내가 엄마가 하시던 일들을 조금씩 더 맡아 해야할 것 같습니다.
나를 위해 장미 세 그루를 더 사왔지만 엄마를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새들이 찾아들고 햇빛에 반짝이는 장미꽃을 보며
우리 모두 살아있음에 행복해하길 바라면서 말입니다.

이젠 더 많이 엄마와 외출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장도 같이 보고 맛난 음식도 더 사드리고 수다도 더 떨려고 합니다.
그리고 장미꽃처럼 해맑고 환한 미소를 더 많이 보내려고 합니다.

2011/06/11
윤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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