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즈음 신문에는 화려한 무대에 가려진 추한 음대에 관한 기사가 났습니다. 어디 음대 뿐이겠습니까마는 서울대의 한 음대 교수가 10여 년간 학생들을 구타한 내용이 e메일로 진정돼 조사에 착수했다고 합니다. 조사 결과 그 교수는 자신이 참가하는 음악회에서 박수 소리가 작았다고 학생들을 일렬로 세운 채 때렸고, 콘서트 입장권을 강매한 것이 밝혀졌다고 합니다. 여 러 음대 재학생들이나 졸업생들이 증언하기를 그들의 교수들이 폭언과 상습적 폭행, 지도교수의 콘서트 입장권 강매 와 청중 동원, 스승의 날, 명절, 생일에는 고가의 명품 선물을 요구하고, 고가의 특정 악기를 특정 가게에서 구매하도록 권유한다는 것입니다. 한 국에선 이러한 상황을 견딜 수 없으면 일찌기 외국으로 유학을 떠나던가 아니면 모든 것을 감내해야만 할 노릇입니다. 더구나 전통적으로 위계질서가 강한 성악과나 관악기를 다루는 기악과에서는 선배들이 기합을 준다며 후배들을 때리기도 한다니 어처구니가 없는 일입니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 아주 부잣집 딸인 L은 서구적인 이목구비와 뽀얀 피부를 가진 늘씬한 친구였습니다. 삼청동에 살던 그의 집은 정말 으리으리했습니다. 한 동안 잊고 지냈는데 내가 대학 졸업후 초등학교 같은 반이었던 친구를 통해 L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말인즉, L이 모 여대 음대 성악과를 시험쳤을 때 너무 못불러서 노래하는 도중 시험관들이 L에게 그냥 내려오라고 했다고 합니다. L을 가르쳤던 교수가 아주 난처해졌으나 L 부모는 그 교수에게 그 당시 매우 귀했던 미국산 초대형 냉장고를 선물했고, 또한 막대한 돈을 주어 그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L은 음대를 졸업한 후 아주 부잣집으로 시집갔습니다. 다른 한 경우는, 나의 대학동창 중 K는 결혼해서 남매가 있었는데 그녀는 딸에게 아주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엄하게 가르쳤습니다. K는 큰 공장을 운영하고 몇 개의 사업체를 가진 동창 중에서도 아주 잘사는 친구였고 매우 활동적이었습니다. K의 딸은 초등학교 때 이미 피아노 리사이틀을 성대하게 했으며 신문에도 떠들썩한 기사가 여러 번 실렸고 그후 수많은 대회와 리사이틀을 가짐으로 유명한 피아니스트로의 기반을 닦았다고 했습니다. 그후 미국에 살고 있던 내게 K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K는 딸이 줄리아드 예비학교에 다니게 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미국에 가니 만나자는 이야기였습니다. K의 딸은 이미 얼마동안 유럽에서 혼자 공부하기도 했지만 K는 한국에서 벌인 사업과 남편 때문에 미국에 계속 머물 수 없어 많은 걱정을 했습니다. 나도 개인적인 생각으론 자녀들을 너무 어린 나이에 부모와 떨어져 외국에서 공부시킨다는 게 그렇게 권장할 만한 일은 아닌 것같아 다소 걱정스러웠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잘 견디어주어 훌륭하게 자랐습니다. K는 미국에 보내길 잘한 것 같다며 학교 공부도 썩 잘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딸이 더 이상 음대를 가지 않겠노라는 연락을 받고 너무 당황스럽다며 뉴욕으로 달려와서 어찌해야 하겠느냐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 성실한 답을 해주었습니다. 딸이 정말 싫다고 하면 시키지 말라고요. 그러나 오랫동안 물질과 시간과 정열을 투자해 왔는 데 너무 아깝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음악에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연주활동으로 얼마나 개인생활을 희생해야 하며, 그 결과 이혼하는 사람도 보았고, 소수를 제외하곤 경제력있는 배우자를 만나지 않으면 물질적으로도 힘든 생활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K는 자기 딸이 줄리아드의 유명한 교수에게 레슨을 받는데 그의 모습이 자기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초라하고 힘들어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이렇게 어렵게 공부해서 선생님처럼 산다면 무슨 보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K는 최고의 줄리아드 교수 레슨비가 서울 음대교수에 비해서 너무 싸다는 것에 놀랐다고 했습니다. K 는 딸을 가르쳤던 음대교수에게 더 이상 돈을 상납하지 않아도 되어 너무 홀가분하다고 했습니다. 나는 깜짝 놀라서 그게 무슨 말이냐고 했더니 무슨 특별 레슨이다 대회다 리사이틀이다 하면서 그 교수에게 바친 돈이 얼마며, 또한 딸이 비록 미국에 있더라도 성공해서 돌아오면 끈이 있어야 변변한 대학교수 자리라도 얻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에 매달 레슨비 명목으로 몇 년째 돈을 계속 주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은 다 그렇다고 했습니다. 공부를 잘했던 K의 딸은 그후 미국의 명문 B대학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계속 MBA를 공부하겠다고 했습니다. 가끔 K의 고마워하던 음성이 귀에 들리는 듯 합니다. “명희야, 너무 고맙다. 내가 딸이 피아노를 그만 두겠다고 했을 때 눈앞이 캄캄해서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다. 그런데 네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진정되었단다. 지금은 나도 딸이 그만두길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고맙다…” |
![]() |
|
464 total views, 1 views today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