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신학생들에게 가장 닮고 싶은 목회자가 누구냐고 물으면 100주년 기념교회를 목회하시는 이재철 목사님이라고 대답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많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분은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흔하지 않은 목회자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신의 출판사를 누구든지 다 알 수 있게 공정하고 깨끗하게 운영했으며, 사적인 집이나 재산이 없이 오직 복음만을 위해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매주 인터넷으로 방문하여 이재철 목사님의 설교를 듣다가 양화진 문화원에서 열리는 목요강좌를 알게 되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이 이제는 인터넷 세상에서 원하기만 하면 귀한 자료와 귀중한 강의도 듣게 되어 지식정보 산업시대를 실감하게 됩니다.
여러 지식인들의 강좌도 좋았지만, 특히 평소 좋아하는 이어령 선생님과 이재철 목사님의 <지성과 영성의 만남>을 열심히 들었습니다. 그리고 혼자 듣기 아쉬워 ‘마이윤’ 웹사이트에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 강의 중 8번 째 “종교”에 대한 강좌 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모든 종교적 갈등이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문제입니다. 종교가 영원한 절대 가치관을 위해서 현세적인 가치관을 희생하는 것이 고등 종교인데 하등 종교일수록 자기부인이 없습니다.
고등종교가 타락하면 첫째, 성직자가 급증합니다. 자기부인을 잊어버릴 때 성직자 자체가 좋은 직업이 되어 종교지원자가 많아집니다. 영원한 것을 추구하며 산다면 지원자가 많을 수 없습니다.
예 를 들어 스땅달의 <적과 흙>처럼 유럽 청년들이 내가 추기경처럼 붉은 옷을 입고 종교적 권력을 추구할 것인가 아니면 판사처럼 검은 옷을 입고 세속적 권력을 추구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로마 카톨릭이 부패했을 때에 로마 카톨릭 추기경들은 모두 축첩을 했었고 개인 사유재산을 가질 수 있어서 지원자가 급증했습니다.
둘째, 성직자가 많아지면 종교기관이 급증합니다. 성직자들이 다 먹고 살기 위해서 매일 같이 종교기관이 생깁니다. 수요공급의 원칙에 의해서 말입니다.
셋째, 종교의 기복화입니다. 성직자가 많아지다 보니 전부 경쟁자가 됩니다. 그래서 내가 사역하는 기관에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오게하기 위해서 내가 전할 필요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듣기 좋게 말합니다.
넷째, 종교의 이해 집단화입니다. 종교가 세속적 집단이 되고 권력을 추구하는 집단이 됩니다. 그 때부터 종교인들이 종교의 이름으로 전쟁도 하고, 자기 교단을 위해 칼을 휘두르기도 하고, 테러도 일으킬 수 있어 온갖 부작용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것은 종교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의 문제이지 종교 그 자체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을 잘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항상 자기를 위해 행동하며, 자기를 위해 살아가는, 자기중심적인 삶을 포기하고, 남을 위해 행동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중심적이며, 희생과 손해를 싫어하고, 남을 용서하는 것을 싫어하는 마음의 감옥에서 벗어나, 주님의 기쁨을 위해 살고, 다른 사람의 즐거움을 위해 사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날 말씀을 가르치려고 하고 훈계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 말씀을 그대로 삶에 실천하는 사람들은 적습니다. 죽음까지도 불사하는 자기부인의 신앙이 없다면 목회자의 길을 가지 말 것입니다. 자신의 영혼도 어리면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려고 든다면 그 결과는 뻔할 것입니다.
그래서 아주 소수의 실천하는 목회자들을 보면 더욱 귀한 것 같습니다.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는 게 아니라,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사역자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나 같은 어리석은 자도 위로 받고 저는 믿음이 힘을 얻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너라.”(마태복음 16:24)
2011/02/05
윤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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