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초에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언덕을 혼자 내려가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단체 여행 중 자유시간을 주어 이곳 저곳 흥미있게 기웃거리기도 했는 데 갑자기 어떤 청년이 쭈삣거리며 다가오더니 유창한 영어로 말을 거는 것이었습니다. 키가 조금 크고 마른 편인 이 청년은 비록 양복을 입었지만 좀 허름해 보였습니다. 금방 유대인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저 여행객들에게 묻는 평범한 질문으로 별로 특별한 대화가 오고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조금있다가 약간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자기가 유대인이 아니기 때문에 좋아하지 않을거라며 자신은 팔레스타인이고 내가 마음에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이 사람이 제 정신이 아니구나 하고 너무 놀라고 겁이 나서 걸음아 날 살려라 밑에서 기다리고 있던 리무진버스를 향해 냅다 달려갔습니다. 어찌나 빨리 뛰었던 지 발바닥이 용수철 처럼 튀어 올라오는 것 같았으며 금방 헛 발 딛어 발목이 부러질 것만 같았습니다.내가 앉던 자리에 겨우 앉아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는 데 그 청년은 버스 밖에서 무어라고 외쳐대는 것이었습니다. 유대인 운전사는 기가 찬 표정을 지으며 혀를 차고 있었습니다. 마침 나의 뒷 좌석엔 한국의 S 공대 교수 부부가 미리 와 앉아 계셨습니다. 그 청년은 그 노부부가 나의 부모인 줄 착각했던 모양입니다. 그 노부부에게 큰 소리로 당신의 딸을 좋아하니 자기에게 달라면서 낙타 한 마리를 주겠다고 했습니다. 내 뒤의 Y교수님은 큰 소리로 안된다고 손을 내저으셨습니다. 그랬더니 더 큰 소리로 그러면 낙타 두 마리 줄터이니 딸을 달라고 했습니다. Y교수께선 더 크게 손사래 하시면서 “안 팔아요 She is not for sale.”라고 외치셨습니다.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뒤 1995년 여름에 모로코에 있었습니다. 복잡한 마라케쉬(Marrakesh)에서 30km 떨어진 곳 아틀라스 산맥(Atlas Mountains) 끝자락에 오우리카 골짜기(Ourika Valley)라고 불리우는 아름다운 지역을 가고 있었습니다. 포장되지 않아 마른 먼지가 자욱하게 날리는 길을 덜컹거리며 한참 올라가다가 갑자기 물이 흐르고 푸른 나무가 울창한 곳을 보니 전혀 딴 세상 같아 보였습니다. 한국의 시골풍경을 보는 듯 얕게 흐르는 물에 빨래하는 아낙네들과 발가벗고 물장구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 곳은 6개월 전에 막 전기가 들어왔다고 했으며 지금도 옛날부터 살아온 유대인들이 회당에서 예배도 본다고 했습니다. 그 곳은 유대인들과 무슬림들이 충돌하지 않고 서로 잘 어울려 지낸다는 모로코 인 여행안내자의 설명이 있었습니다. 장날엔 멀리 나가야 해서 아이들을 서로 맡겨 젖을 물려준다고 하는 데 남의 아이에게 젖을 먹인다는 것은 한 가족을 의미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지역은 아주 오래 전에 북유럽인들의 유입이 있어서 지금도 피부가 흰 사람들이 많다고 했습니다. 여행안내자는 모로코의 국왕도 나라의 통합을 위해서 이 지역 백인계통의 여자와 아랍계통의 여자 한 명씩 골라 딱 두 여자만 아내로 삼았다고 했습니다. 참 별 걸 가지고 공정하게 했다니… 하긴 능력있으면 공식적으로 아내를 4명도 둘 수 있는 곳이니 그럴만도 하겠지요. 그러면서 이곳 사람들은 똑같은 신부감이라도 아랍 계통이면 낙타 두 마리를 주면 되고 북유럽계통이면 낙타 다섯 마리까지 주어야 데리고 올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 곳을 첫 딸과 막내 아들네미와 같이 여행하던 중이었습니다. 낙타 이야기를 듣다가 갑자기 10년 전 예루살렘 언덕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나서 두 아이들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더니 눈을 뚱그렇게 뜨면서 우스워 죽겠다고 깔깔거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론 한 동안 “She is not for sale”로 아이들의 놀림거리가 되었습니다. 요즘 TV 뉴스에서 크리스마스 연극 무대에 올린다며 낙타 두 마리와 아주 귀여운 양 두 마리를 끌고 맨해튼 거리를 누비며 홍보하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낙타 두 마리를 보는 순간 지나간 추억의 아련한 파편들이 떠올랐습니다. Y교수께서 크게 손사래 지으시며 “안 팔아요 She is not for sale. NOT FOR SALE ~ ” 하시던 음성이 지금도 귓가에 들리는 듯 해서 혼자 싱겁게 웃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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