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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 여름 대학준비 때문에 학교 교실에 홀로 앉아 공부 하느라 끙끙거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혼자 책장을 뒤적이고 있었는데 같은 반 친구도 아니었고 평소 잘 알지 못하던 같은 학년 학생이 문을 삐끗 열더니 두리번거리며 들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얼굴만 어렴풋이 기억날 뿐 이름은 생각나지 않는 그 학생으로 인해 성령이 있음을 듣게 되었습니다.  물론 어릴 적에 현신애 권사님이나 신 권사님의 집회에서 은혜를 받고 병고침도 받았다는 이야기는 듣긴 했지만 우리가 물 뿐만 아니라 성령으로도 거듭나야 한다는 이야기는 금시초문이었습니다.

그 애를 따라 간 교회에서 사도행전의 뜨거웠던 성령의 역사와 귀신들의 드러남을 목격하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그 교회에 간지 얼마 안되어 국가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던 때인 8월 15일 새벽기도 할 때 성령체험을 하고 방언을 선물로 받게되었습니다.  집 근처의 조용한 장로교회를 다녔던 나는 여학생이 교회에서 철야를 한다며 야단치는 것을 못 들은 체하며 매일 교회에서 지내고 어울려 산기도 다니며 회개하고 부르짖는 기도에 열중했습니다.

그 때 영의 눈이 열려 많은 것을 보고 체험하기도 했습니다.  그 러다가 도중에 몇 가지 일로 예전에 다니던 교회로 돌아가게 되면서 대학에서의 공부와 또한 결혼하고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뜨거웠던 믿음이 훈련받고 유지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점차 타협하는 믿음으로 기울어지면서 영적 갈증으로 많이 힘들었습니다.

살면서 기쁨도 있었지만 무서운 고통도 많았습니다.  쓰러지고 넘어지고 실망과 좌절을 겪으면서 크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겪는 모든 경험들은 절대 우연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돈, 명예, 지위, 욕망, 성공, 우정, 이성의 사랑 같은 것은 믿고 의지할 것이 못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지하면  의지할수록 더 깊은 상처만 남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고통과 아픔을 통과하면서 결국 나의 부족함을 깨닫게 되고 주님께 더욱 겸손히 내려놓게 된 것 같습니다.

주님께 헌신하므로 주님의 음성을 듣고 따르기 위해 쉬지않고 기도하며 나의 뜻이 아닌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오직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길 원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성공과 명예, 돈을 쫓으면서 끝없이 사람들의 인정이나 칭찬, 인기에 연연한다는 것은 세상에 속는 것임을 실제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믿음이 첫 사랑처럼 항상 뜨거웠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인 것같습니다.  그러나 비록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지만 언제나 주님만 바라보며 어려움을 통과할 때 더욱 믿음이 성숙해지는 것 같습니다.  지금도 갈 길은 멀지만 수많은 시험을 거치면서 좀 더 주님의 심정을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고2  때 주님을 만나 순전할 적에 많은 환상과 이상을 보았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감사했지만 지금 깨달은 것만큼은 아니었습니다.  많은 은사를 체험하면서  나는 주님께 붙잡힌 바 된 사람이니 절대 넘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거저 받은 선물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쭐해졌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선물인 은사가 주님과 동격이 될 수 없으며, 선물은 없을 수 있지만 주님은 아니라는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혼동하고 있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성경에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고린도전서 12:8~10)

이 모든 것이 은사(gift) 즉 선물인데 사람들은 선물은 대단한 것으로 알고 선물의 주인이신 주님은 갈망하지 않는 경향이 있어 주님이 너무 슬퍼하신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몇 년 전 어려운 시험을 겪고 난 후였습니다.  사람들은 보이는 것에 치중한 나머지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얼마나 주님을 이용하는지요.  많은 대형 교회 목회자들은 각종 감투로 치장하고 온갖 높임을 받고, 교인들은 나나나 하면서 병 고친다면 우루루 쫓아가고, 예언한다고 하면 또 우루루 몰려가고, 축복기도 한다면 또 우루루….

주님은 저만치 떨어져 보고 계시는 데, 주님의 인도하심은 구하지도 않고 자기 생각에 옳은대로 행합니다.  그리고 병 낫고, 부자되고, 자식 잘 되고, 만사형통하길 원하기만 하면서 아무 생각없이 사는 우리를 보시고 주님은 울고 계십니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요한복음 6:67)라고 하셨듯이 지금도 우리를 보시고 ‘너희가 세상에서 잘 되기만 바라느냐’라고 하십니다.

어제 저녁 잠시 화장실로 갔다가 갑자기 심령에 “스타벅스에 전화하라”는 내적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러면서 아이패드가 떠올랐습니다.  나는 칠레 광부구출을 보느라 컴퓨터 앞에 앉아 현장중계에 온통 정신을 뺐겨서 “아이, 혹시 아이패드를 그곳에서 잃어버릴 경우 그곳 전화번호를 알아놓으면 곧 연락하기 편하라고 그러시는가보다.”  그런 생각을 하며 그냥 지나쳤습니다.  그런데 오늘 낮에 밖에 나가려고 막 가방을 들어올렸을 때 뭔가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척 가벼웠던 것입니다.  열어보니 아이패드가 없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어제 저녁 시간이 조금 남아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아이패드에서 메일채크를 하고 책을 읽다가 그냥 나왔던 것입니다.

스타벅스에 가면서 주님의 세미한 내적 음성을 무시했지만 그 곳에 있다고 하셨으니 있을꺼야라고 하면서 한편 “만약 없어졌어도 주님이 내가 그것이 필요치 않기 때문에 허락하신 일일꺼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스타벅스 직원이 나의 아이패드를 내놓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은 나의 생일입니다.  이 것만큼 커다란 주님의 선물이 어디있겠습니까.  그러나 이제는 분명히 압니다.  더 이상 선물에 유혹되지 않습니다.  주님이 내 안에 계시면 그까짓 선물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선물의 주인이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
2010/10/13
윤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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