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여행 중이었는 데 중국 베이징 공항에서 흰 와이셔츠에 깨끗한 복장을 한 한인 고교생들로 보이는 한 무리가 게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일행 중 나이 든 여자 분이 그들에게 다가가 다짜고짜 학생들이 공부는 안하고 왜 공항에서 이런 놀이를 하고 있냐고 큰 소리로 힐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녀는 평소 가르치기를 좋아하고 남을 가르칠 때 보람과 희열을 느끼는 분이었습니다.
곁에 앉아 그 말을 듣고 있던 인솔자인 듯한 나이 든 남자분이 점잖은 음성으로 이들은 매우 뛰어난 학생들로 오래동안 중국에서 특별 교육을 받은 후 집으로 돌아가는 중인데 스트레스도 풀 겸 놀고있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있던 나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습니다.
나 이가 많거나 경험이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상대방에게 충고나 권면하길 좋아합니다. 자신이 아는 것이 많다고 생각하고 가르치기를 잘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에게 자신의 경험담이나 견해를 밝히길 좋아하고 또한 어떤 성격적 결함이나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겐 끊임없는 잔소리를 늘어놓습니다. 상대방은 자신의 말이 꼭 필요하다고 말입니다.
자신의 생각이 옳고 자신의 견해가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일수록 확신에 차서 상대방의 상황에 대한 배려보다 자신의 입장에 더 무게를 두어 듣는 사람에게 별 유익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에겐 옳은 대답이 될런지 모르지만 상대방에겐 그렇지 않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데도 자신의 주장을 강요합니다.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거나 불우한 가정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은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자라면서 열등감이나 소외감 또는 자신감 부족 등 그늘진 부분을 가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현재의 삶에 불만이 가득한 사람들은 상대방의 말이 자신에게 약간이라도 공격적이라고 느끼면 즉시 불같이 화를 내고 달려듭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약함이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성숙한 사람일수록 함부로 남을 권면하거나 충고한다는 게 어려울 것입니다. 듣는 자가 상대에 대한 충분한 존경과 신뢰가 쌓이지 않았다면 어떠한 말도 소용없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상대방이 조언을 구할 때 어떠한 말이라도 받아들일 자세가 된 사람에게만 조심스럽게 하려고 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한 입과 두 귀를 주셨듯이 말은 적게하고 듣기는 잘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것은 말에는 실수가 많되 듣는 것을 통해 유익할 수 있다는 뜻일 것입니다. 가르치려고 하지 말고 이해하라는 말도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대체로 가르치려고 하고 참견하기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남의 이야기 듣는 것을 참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실 듣기 싫어하는 사람은 가르치지도 말아야 합니다.
나는 마이윤 웹사이트에 <좋은 글>에도 올렸지만 ‘하루에 한번씩 읽어도 좋은 글 80가지’를 자주 읽으며 나 자신을 점검하곤 합니다. 그 글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도 잔소리는 용서가 안된다’가 가슴에 와 닫습니다. 그리고 ‘말은 하기 쉽게 하지 말고 알아듣기 쉽게 하라’라는 말도 자주 가슴에 새깁니다. 정말 무시당하는 말은 바보도 알아듣습니다. 가르치려고 하면 피하려고 합니다.
약점은 농담으로라도 들추어서는 안됩니다. 무엇보다 참견하려 들지말고 정성껏 들어주어야 합니다. 위의 사건들도 부지런히 들으려고 했다면 닫힌 마음의 빗장을 벗길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섣 부른 충고나 권면이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사랑없는 차가운 충고는 상대방에 대한 비웃음이나 악의에 찬 인신공격으로 들리기 쉽습니다. 말과 행동이 같은 삶을 살면서 온유하고 화평한 사랑의 언어로 겸손히 낮아져서 따뜻한 가슴으로 전할 때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야고보서 1:19)
2010/10/05
윤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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