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 마 전 큰 딸로부터 전화가 왔었습니다.   다음 주말에 친구의 웨딩샤워가 있는데 남편이 출장가서 주말 오후에나 돌아오게되니 아침이나 그 전날 집에 올 수 있으면 좋겠다고요.  그렇지 않아도 지난 주말 롱아일랜드 집에 있을 때 손녀 에이다의 머리카락이 너무 없어서 빡빡 밀어 주었는데 어떻게 되었는지 보고 싶던 차에 잘됐다 싶었습니다.

에이다를 찍을 카메라를 가방에 넣고 그 다음 주 토요일 아침 일찍 차가 붐비지 않을 때 조용히 맨해튼 터널을 지나 딸 집에 도착했습니다.  씨리얼을 먹고 있었는데 아직 보름밖에 안돼 머리털이 조금만 자라 민대머리 모습을 하고 활짝 웃는데 얼마나 귀여운지 그냥 달려가 안아주고 싶었습니다.

에이다가 꼭 8개월 째 접어드는데 이젠 제법 붙잡고 걷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집으려고 재빨리 움직일 줄 안다며 신기해 했습니다.  큰 딸은 9개월 만에 걸었고 돐 날 뛰어다녀서 사람들이 놀랬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자기 딸도 그렇게 빨리 걸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모습을 보며 나의 젊은 시절이 오버랩되는 듯 했습니다.

딸이 그 사이 일어났던 일들을 미주알 고주알 정신없이 이야기하더니 몇 시에 우유 먹이고 몇 시에 이유식 먹이고 꼼꼼히 적은 6시간 짜리 스케쥴을 육아일지 위에 올려놓으며 몇 번이나 다짐하고는 그래도 미덥지 않던지 무슨 일이 있으면 전화하라며 신신당부하고 휑하니 나가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에이다를 보아주는 내니만큼 미덥지 못한가 봅니다.

남편이 맨해튼 뻐스 운전사로 일하고 있는 내니는 세 자녀를 둔 40대 착실한 크리스챤으로 바베이도 사람입니다.  정말 믿고 맡길 수 있어 자기가 편하게 일을 할 수 있노라고 몇 번이나 이야기했습니다.  그 녀의 막내 딸이 중학생인데 공부를 아주 잘해 반에서 일등만 하다는 데 자기 딸이 하바드 대학에 들어가는 게 꿈이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딸이 하버드 출신이라는 것을 알고 너무 좋아 자기 딸이 쉬는 날 가끔 데려오기도 한답니다.

원래 출산하기 전부터 내게 내니를 부탁해서 여러곳에 부탁했었습니다.  이왕이면 아기가 한국말도 배우고 한국음식도 접하길 원했기 때문에 한국사람만 찾았었습니다.  참 좋은 분들도 있었는데  모두 세금내는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딸 은 어떤 분야를 진출하게 되던지 자신의 법적문제는 철저히 관리하는 타입입니다.  철저한 세금과 정확한 돈관리 그리고 신변정리를 깨끗하게 하고 있습니다.  하버드 법대를 졸업하면서 바로 백악관에 들어간 동창들이 자기가 대통령이 되면 딸을 국무장관으로 임명하겠다고 했다는 친구의 농담섞인 이야기도 들려주었습니다.  꼭 정치인이 아니더라도 딸의 직책이 그래야만 하고 딸도 틀림없는 성격 때문입니다.

그래서 크게 기대했던 한국내니를 구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 딸이 세금을 내주면 내니에게 실제로 돈이 더 들어가는데 말입니다.  미국에서 세금을 내면 은퇴 후 연금을 받을 수 있는데 한국사람들은 왜 세금을 안내려고 하는지 너무 좁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미국은 내니에게 시간 외의 일을 하면 수당을 더 주어야 하고  아이에 대한 것만 보살피지 절대 다른 일들은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일 년에 두 주는 유급휴가를 갖게 하고 공휴일은 쉬게 합니다.  딸의 내니는 아침 7시 출근에 저녁 6시 퇴근입니다.

딸이 나가버리고 난 후 에이다를 쳐다보며 가방에서 얼른 카메라를 꺼내들었습니다.  내가 사진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무 것도 필요없고 오직 빛으로 그리는 그림이라는 점입니다.  왠만하면 절대 프래시라이트를 사용하지 않고 오직 자연광으로만 찍습니다.  에이다를 렌즈에 담느라 한동안 정신없이 셔터를 눌러댔습니다.  저 천진난만한 갖가지 얼굴표정들.  정말 아이들은 때묻지 않은 하늘나라 천사들 같습니다.

오후가 되니 딸이 돌아오고 또 사위도 돌아왔습니다.  얼른 에이다를 돌려준 후 가벼운 마음으로 가방을 메고 맨해튼 길을 걸었습니다.  이곳 저곳 기웃거리다 몇 블럭 위에 있는 맨해튼 구름다리 생태공원에 가서 수 십장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흐드러진 들풀 위로 벌들은 윙윙거리고
날개 찢긴 나비도 꽃 끝에 사뿐이 쉼을 얻는데

허드슨 강은 다리 밑 저만치 소리없이 흐르고
해는 지평선 향해 서서이 곤두박질칩니다.

오늘 하루도 아무 탈 없이
무사히 지냄을 감사드립니다.
2010/08/30
윤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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