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국인들은 유별나게 건강에 좋다는 것은 다 찾아 먹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매인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하다못해 까마귀가 좋다하면 멸종될 때까지 잡아먹을 것이고, 독사는 물론이려니와 사슴피를 즉시 먹기도 하고, 곰쓸개가 좋다해서 살아있는 쓸개를 빨대로 빨아먹는다는 이야기는 위험성을 넘어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합니다.

나이가 들면서 친구의 권유로 어떤 건강보조식품을 먹게 되었습니다.  머리가 무겁고 아팠었는데 많이 이완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가격이 비싼 것이 흠이었지요.  그러다 심한 변비가 찾아왔습니다.  좋다는 것은 다 사먹게 되었어도 아무 효험없이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어느 제품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분이 내게 아무 생각말고 한번 복용해보고 결정하라는 것이었지요.  그것은 두 가지로 된 것으로 집에 가져와서 한 번 먹었는데 놀랍게도 그 다음 날 변비증상이 약해진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좋다는 포도씨와 오메가 3 그리고 비타민 씨를 덧붙여 복용하면서 3개월을 지냈는데 한 번도 두통약을 먹지도 않았고 커피도 많이 마시지 않아도 되어 몸 컨디션이 놀랍게 좋아진 것입니다.  그리고 일년 전부터 돋보기를 써야 글이 깨끗이 보였는데 눈을 보호하는 비젼엑스를 먹은지 8개월이 지나 우연히 안경없이 글을 읽는 나를 발견하고 자신있게 다른 사람들에게 권했는데 그것이 내게 큰 경험이 된 것입니다.

80세가 넘은 엄마가 복용하고 수술해야 된다고 한 붉게 부어오른 발목관절이 어느덧 다 나았고 더 특이한 것은 엄마의 방문을 열면 이상하고 퀘퀘한 냄새가 나서 얼른 닫고 싶을 정도였고 특히 화장실 사용 후 심한 악취로 불편했는데 그 냄새가 다 없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샤워할 때마다 한 웅쿰씩 빠지던 머리카락이 점점 작아져서 이젠 몇 가닥밖에 안빠진다는 사실입니다.  그 외에도 많은 체험이 있습니다.

우리가 꾸준히 복용한지 거의 6년이 넘은 것 같습니다.  엄마가 어제 제게 이러더군요.  “야, 참 이상하다.  머리카락이 그렇게 많이 빠지더니 이젠 거의 안빠진다.  참 그거 좋구나.”  우리는 압니다.  그게 무엇인지를.  양심적으로 만든 양질의 제품은 사람의 노화현상을 더디게 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나 이젠 너무 상처를 받아 입을 다물어버린지 오래 되었습니다.

나는 이 경험을 통해 인간심리를 좀 더 잘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일일 찻집이나 맛집을 하기도 하고 식당에서 웨이트레스를 하면서 돈을 모아 여행을 하거나 다른 사람들을 돕기도 하는데 네트워크 회사인 이 제품을 소개해서 수입이 생기면 어려운 사람들도 도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처음엔 경험없이 마구 소개하다가  별의 별 일을 다 겪게되었던 것이지요.

원래 떠버리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라  몇 사람 돕지도 못하면서 나의 입장을 말하기도 뭣해서 주삣거리는 사이에 “어쩌다 저렇게 됐느냐”는 비아양을 많이 들어야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일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누가 무엇을 소개하면 아주 아니다 싶지 않은 이상 일단 한두 가지는 사주면서 잘되길 기도합니다.

이 일로 크게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전도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이 처음엔 순수한 마음으로 무작정 전도하다가 차츰 한계를 느끼면서 갈등을 갖게 되지요.  그리고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을 내려놓게 되면 한 단계 도약하게 되지요.  그렇게 되면 말로 설득시키려는 것을 멈추고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는 방법을 배우게 됩니다.

그렇다고 제품을 소개하면서 하나님과 연결시키는 약삭빠른 상술로 돈을 버는 사람들을 정당화하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 주위에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눈을 찌푸리게 합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신이 진정 다른 사람들을 위한다면 사심없이 제품만을 정확히 소개해야지 꼭 자신에게 사야한다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정말 제품이 그렇게 좋다면 꼭 자기에게가 아니라도  어디서든지 그 제품을 사서 복용하고 건강하길 바란다고 해야 옳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을 전도하면서 꼭 자기 교회에만 와야한다면 그 의도는 한번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그가 교회에서 칭찬과 인정받기 위해 또한 그 반대급부를 노린 계산이 깔려있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정직하게 자신을 들여다보면서 이것이 하나님을 위한 일인지 자신을 위한 일인지 짚어보아야 할 것입니다.

다른 곳에서 더 좋은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면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깊은 반성의 기회로 삼고 그를 위해 기뻐해야지 그걸 가지고 트집잡고 분노한다면 분명 인격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분명 하나님께 속한 인격이 아닌 세상에 속한 인격입니다.  하나님의 인격은 경쟁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예수께서 나다나엘을 가리켜 일렀듯이 우리는 매사 “그 속에 간사함이 없는 사람”이 되도록 사랑의 마음으로 항상 겸손하게 자신을 내려놓는 연습을 끊임없이 해야겠습니다.
2010/08/27
윤명희

440 total views, 1 views to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