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 난 주일 오후엔 바람이 몹시 불었습니다. 구름이 많이 낀 잿빛 하늘에 비도 간간히 내렸습니다.  뒷 유리문을 스르르 열고 어둡기만 한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비가 멈추고 있어서 약간 습기찬 바닥 위에 뭔가 조그만 물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들여다 보니 털도 다 자라지 못한 못생긴 아기새였습니다.  떨어진 지 얼마나 되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바르르 떨고 있는 데 얼마나 불쌍하던지요.  얼른 부엌에서 조그만 손타올을 가져다 부서질 듯한 여린 몸을 감싸주었더니 스르르 눈을 감으며 타올 속에 목만 내어놓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다 큰 두 꾀꼬리가 부산스럽게 날개짓하며 주위를 돌더니 지붕 위에 앉기도 하고 나뭇가지에 앉기도 하면서 구성진 소리를 내며 주위를 맴도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아기새의 엄마 아빠인 듯 했습니다.  그래서 떨어졌던 자리에 아기새를 다시 살포시 내려놓고 부엌 유리문 뒤에 몸을 숨기고 살펴보았습니다.  두 새는 내려오지 않고 한동안 위에서만 몇 번 빙빙 돌다가 이리저리 앉아 꾸르르 거리더니 그냥 날아가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어디서 왔을까 주위를 살펴보니 떨어진 바로 위 커다란 고목나무 가지 끝에 숨겨진 새둥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빠새가 열심히 먹이를 물어다 주니 둥지 속에서 째재잭 거리는 부산스런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직 둥우리엔 서너 마리 더 있는 것 같았습니다.  어쩌다 이렇게 떨어졌을까.  혹시 서로의 알력으로 밀렸나, 실족했나 혼자 별의 별 생각을 다 했습니다.

아기새는 눈을 감고 있다가 조그만 소리라도 들리랴치면 부리를 크게 벌리는 것이었습니다.  어찌나 불쌍하던지 머리 위를 손으로 가만히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흙을 이리저리 파다가 지렁이랑 벌레들을 잡아 주었더니 잘 받아 먹었습니다.  그런데 잔디 위에 떨어진 오디 열매를 조금 더 먹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개를 옆으로 떨구더니 그만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이 새에 대한 상식이 없어 잘 못먹인 탓인지 아니면 엄마 품에서 오래 떨어져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뒤뜰 한 모퉁이에 있는 빨간 덩쿨장미 아래 묻어주었습니다.  며칠 동안 바람이 몹시 불기도 했지만 아픈 마음 때문에 뒤뜰의 고목나무는 쳐다 보지도  못했습니다.

닷 새 후  화창한 금요일 오후에 남은 새들은 어찌 되었는지 궁금해서 카메라를 들고 나갔더랬습니다.  그런데 새들은 온데간데 없고 빈 둥지만 달랑 매달려 있는 것이었습니다.  벌써 아기 새들도 다 날아가 버렸나?  그 아기 새도 며칠 만 더 참았더라면 훨훨 날 수 있었을텐데…  생각하니 마음이 찡해왔습니다.  하는 수 없이 빈 둥우리만 찍는데 고목나무 가지 사이로 낮에 나온 반달이 빼꼼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습니다.

윤석중 선생의 동요 ‘낮에 나온 반달’이 생각났습니다.

1.낮에 나온 반달은 하얀 반달은
해님이 쓰다 버린 쪽박인가요
꼬부랑 할머니가 물 길러 갈 때
치마끈에 딸랑딸랑 채워 줬으면

2.낮에 나온 반달은 하얀 반달은
해님이 신다 버린 신짝인가요
우리 아기 아장아장 걸음 배울 때
한짝발에 딸각딸각 신겨 줬으면

3.낮에 나온 반달은 하얀 반달은
해님이 빗다 버린 면빗인가요
우리 누나 방아 찧고 아픈 팔 쉴 때
흩은 머리 곱게 곱게 빗겨 줬으면

해님이 쓰다 버린 쪽박에 실려 아기 새가 날아가고 있는 듯 했습니다.

그 런데 그 다음 날 근처에 또 하나의 아기 새가 아주 죽어 나동그라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죽은 지 며칠 되었을까 조금 말라 파리가 몇 마리 윙윙거리며 주위를 맴돌고 있었습니다.  아 어쩌면 이렇게 죽었을까.  너무 일찍 둥우리를 떠나야 했나.  생명의 아픔을 느끼며 앞뜰 화분에 심기운 붉은 장미 아래 가만히 묻어주었습니다.

방으로 돌아와 전에 샀던 동식물 표본책(National Audubon Society)을 뒤적이다가 이 새가 볼티모어의 야구팀 이름과 같은 볼티모어 꾀꼬리(Baltimore Oriole) 라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꾀꼬리라니 어쩐지 이 새의 소리가 아주 예쁘더라니…

오 전 내내 무덥던 오후 잠시 소낙비가 후드득 쏟아지더니 찬란한 햇빛이 내리쬐는 주일 늦은 오후에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앞 창문을 통해 푸드득 몇 줄기 날개짓 소리가 들리더니 부산스런 꾀꼬리 화답소리들이 화선지 위의 화사한 멜로디처럼 아름답게 들립니다.  이 어여쁜 꾀꼬리 소리가 마치 죽은 아가들을 잘 묻어주어 고맙다는 듯 했습니다.

아마도 저 하얀 쪽배 타고 어린 꾀꼬리들은 그렇게 훌쩍 먼 나라로 떠나가버렸는가 봅니다.

주님은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는데,
우리의 인생살이도 마찬가지인 듯 합니다.
우연이란 없는 것이지요.

슬픈 일을 당할 때 그 당시엔 이해할 수 없어도
시간이 흐른 뒤 깨닫게 됩니다.
그 아픔마저도 내게 유익했다는 것 말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이 합하여 선을 이루는 것이지요.
우리의 죽음마저도 말입니다.

“인생들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전도서 3:21)

2010/06/20
윤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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