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 년 여름 영국의 남서부인 데본과 콘웰(Devon & Cornwell)을 여행하고 있었습니다.  한국과 비슷한 모습으로 생각한다면 아마 전라도지역쯤 될 것입니다.  살인적인 물가로 허덕이던 런던의 공무원들이 연봉이 줄어들어도 이 지역으로 전근하길 원할 정도로 생활비가 비교적 적게드는 한적한 곳입니다. 

가 파른 바닷가에 숨겨진 작은 마을들은 그림처럼 아름답고 음식도 특이해서 갖 구워낸 따끈하고 바삭한 스콘에 잼과 맛있는 크림을 바르고 뜨거운 크림티와 함께  먹었던 소박하고 멋진 점심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덕분에 몸무게가 15파운드는 족히 늘었던 기억이 납니다.

영 국의 시골은 파도가 아름답게 일렁이는 듯한 초록 벌판에 잡풀 낀 나지막한 돌담들이 우아하게 구불거리며 모자이크를 만들고 있어 오래된 정감이 묻어나는 곳입니다.  간혹 길가에 눈에 띄는 소박한 집들은 열어놓은 창문 사이로 흰 레이스커튼이 미풍에 흔들리고 뜨락에 핀 잔잔한 꽃들은 반가운 미소를 보냅니다.  아마 누구라도 이런 곳을 여행한다면 시인은 시가 되고 음악가는 음악이 되고  미술가는 미술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가 도 가도 끝없어 보이는 완만한 밀밭을 가로지를 때였습니다.  주위엔 집도 사람도 없는데 제가 탄 버스는 신호등마다 정확히 서는 것이었습니다.  그 신호등은 서울이나 뉴욕처럼 커다란 것이 아니라 나지막한 높이에 가고 서는 것만 알리는 조그만 등이 두 개 들어 있고 길가에 있어서 정지하지 않아도 될 듯이 보였습니다.

그 래서 왜 아무도 없는 이 허허벌판에서 신호등마다 서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운전사는 신호등을 가리키며 저 신호등엔 무인카메라가 들어있어서 서지않는 차들은 모두 찍힌다는 것이었습니다.  과연 셜록 홈즈의 나라인 것을 실감했지요.  그땐 뉴욕만 해도 개인설치를 빼고는 공공장소에서 무인카메라가 흔치 않을 때였습니다.

지 금은 곳곳에 설치되었고 점점 더 확장되는 추세여서 교통신호를 위반하는 차들에게도 무인카메라로 찍힌 사진에 날짜와 시간이 정확히 입력된 티켓이 발부되기도 하고, 예전 같으면 시치미를 뚝 떼며 오리발 내밀었을 범인들에게 꼼짝없는 증거를 들이댑니다.  요즘처럼 테러를 걱정하는 곳엔 수십 개의 무인카메라로 수상한 움직임을 알아내 미리 방지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1982 년 레바논 침공 때 세계 최초로 무인비행기를 실전에 투입했던 이스라엘이 석 달전 신형 무인항공기(UAV)를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이 신기종은 20시간 이상 연속비행이 가능하며 해발 약 1만 2000m 높이까지 올라갈 수 있고 크기도 보잉 737여객기와 비슷한 초대형이라고 합니다.

최 근 미국은 무인항공기를 가장 애용하는 국가이며 특히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에서 군사작전을 펼치는데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무인카메라가 신기했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많은 분야에서 무인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과학은 고도로 발달하는데 인성은 삭막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무인가게를 시도했던 사람들이 과연 가진 물건만큼 돈을 받았는지요.  아마 하찮은 액수라면 모를까 사람들에게 인기있는 고가제품이라면 힘들 것입니다.  
뇌의 부위가 다른 이성과 감성의 차이점이겠지요.

그럴수록 흙을 디디고 사람이 사람다워지는 자연으로 돌아가야 될 것 같습니다.

2010/05/31
윤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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