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말에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습니다. 항상 가던 서점으로부터였습니다. “원하시던 책 <지성에서 영성으로>가 왔어요.” 이모라고 부르는 친절하고 친근한 분의 음성이 낭랑하게 전화를 통해 들려왔습니다. 얼마나 기다리던 책인데 너무 읽고 싶어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습니다. 다음 날 당장 달려가서 부탁했던 다른 책들과 함께 몇 권을 더 구입하였습니다.
예전에는 책보다 옷에 돈을 더 사용했었는데 지금은 책을 구입하는 데 더 많은 돈을 쓰는 것 같습니다. 철이 좀 들은 셈이지요. 랑의 말처럼 정원은 꽃으로 가득 채우고, 집안은 책으로 가득 채우기를 원합니다.
항상 다니는 서점은 저의 취향을 잘 알아서 더 이상 제게 권할 책이 없다며 새로 나온 책들이 나오면 곧바로 연락을 해주어 조그만 행복을 만끽하며 살고 있지요. 우리는 우리가 읽는 것으로 만들어집니다.(We are created by the read. – Martin Walser)
이어령 교수의 <지성에서 영성으로>는 예쁜 그림과 몇 편의 시가 어울려져 있어 잘 꾸며진 책이었습니다. 그 책을 펼치자마자 강력한 글귀가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죽음보다 강한 사랑, 모든 창조는 사랑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하나님을 믿기 전에 몰랐습니다.” 그렇지요. 사랑은 지성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이어령 교수가 누구십니까?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이화여대 명예석좌교수, 중앙일보 상임고문,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 조직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올림픽 개폐회식 식전과 문화행사, 대전 엑스포의 문화행사와 리사이클관을 주도, 초대 문화부장관을 지냈고 수많은 저서를 쓴 한국 최고의 지성인이 아닙니까.
모두겉모습은화려하고아무문제가없는것처럼우아한미소와적당하게부드러운음성으로자신을철저히가장할 수 있을런지 몰라도많은사람들의깊은심연에는누구에게도말할수없는비밀로가득찬고통과슬픔의 공간이 되는 방이 있습니다.
수려한 글체로 자신의 심정을 그려나간 살아있는 간증과 그의 딸 민아의 사연은 눈물이 없이 읽기엔 힘든 것이었습니다. 하나하나의 사연이 살아 움직여 곧 저의 심장을 적시고 들어와 그만 읽다가 몇 번이나 왈콱 울음을 터트리곤 했습니다.
73세의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세례를 받으신겁니다. 딸 민아(47)씨에게 지난 15년간 닥친 시련이 결정적 작용을 했던 것입니다. 딸은 유학을 가 어렵게 공부한 끝에 변호사가 되어 성공을 한 한인으로 밝은 앞날을 예고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딸 민아는1992년에 갑상선암을 판정받으면서 여러차례 재발했고 유치원에 들어간 작은아들이 특수자폐증에 걸리면서 10년간 얼마나 많이 울고 울었는지, 울지 않고 잠든 적이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아이의 치료를 위해 변호사 일도 접고 무조건 하와이로 건너가서 눈물로 통곡하다 자신의 망막이 파열돼 시력을 잃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원망도 하고 떼도 썼다고 합니다.
딸의 고통은 이어령 교수를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나도 모르게 나는 땅바닥에 엎드려 기도를 드렸습니다. 제발 민아를 위해 저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꼭 하나님은 계셔야 한다고 황급히 무릎 꿇었지요….. 내 눈은 젖어 있었고 내 무릎은 땅에 닿아있었습니다…. 다만 나는 딸을 사랑했기에 믿지 않았던 주님에게 약속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절망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영성을 얻을 수 없습니다. 자기파괴라는 극적인 경험이 없이는 영성을 갖기 힘듭니다.” 자기 절망을 계기로 영성의 세계로 넣어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어령 교수는 세례를 받으면서 눈물이 흘러나와 왜 아기가 태어날 때 우는지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세례란 물로 씻는 의식이 아니라 가슴 깊이 묻혀있었던 온천수의 뜨거운 수맥을 퍼 올리는 것이라며 누구나 가슴 깊이 파고 들어가면 거기 영성의 수맥이 흐르고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크리스천이 되려면 가족의 정과 가치를 초월하는 시험에 합격해야 합니다. 그 비정하고 처절한 가족 이상의 가치세계에 대해서 오직 우리는 전율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족애를 초월한 것. 그러지 않고서는 영원히 살지 못하는 인간의 영역에서 함께 썩어가는 것이지요.” 혈육의 낡은 가정관을 사랑과 믿음, 하나님 아버지의 가족으로 확장하고 승화한 것이 예수님의 가정관이었고 기독교의 가족관이라는 성경의 진리를 깨달은 것입니다.
“누구나 예술가적 기질과 초월적 영성의 기질이 있습니다. 과학은 설명할 수 있는 것을 설명하며, 예술은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합니다. 종교는 설명해서는 안 되는 것을 설명합니다. 종교적 현상은 체험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것은 영성입니다. 신앙은 경험하는 것입니다.”
“성서는 절대적인 것이지만, 성서 역시 사람의 언어로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성서는 성서 이상의 메타로 가야 합니다. 즉, 기도를 하고 성령 체험을 하는 것이지 성서에 써 있는 대로 마치 헌법을 대하듯 할 수는 없는 것이란 겁니다.”
그렇습니다. 크리스천의 삶에는 영성을 위한 시간이 있어야 하고, 누구나 하나님의 임재 안에 머무는 그런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무릇 징계는 어떤 것이든지 그 당시에는 즐거움이 아니라 괴로움으로 여겨지지만, 나중에는 이것으로 훈련받은 사람들에게 정의의 평화로운 열매를 맺게 합니다.” (히브리서 12:11) 우리에게 시험이 없다면 하나님으로부터 버리운 자라고 했습니다. 모든 일이 순조로울 때 우리는 결코 성장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사랑으로도 성장하지만 환난과 고통을 통해서도 성장합니다.
속담에 ‘나무는 큰나무 덕은 못봐도 사람은 큰사람 덕을 본다’고 했습니다. 큰사람 이어령 교수와 딸 민아를 통해 수많은 영혼들이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이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진정 당신은 살아계신 주시요, 우리의 참된 소망이십니다.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1
이어령
하나님
당신의 제단에
꽃 한 송이 바친 적이 없으니
절 기억하지 못하실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
모든 사람이 잠든 깊은 밤에는
당신의 낮은 숨소리를 듣습니다.
그리고 너무 적적할 때 아주 가끔
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
어떻게 저 많은 별들을 만드셨습니까.
그리고 처음 바다에 물고기들을 놓아
헤엄치게 하셨을 때
저 은빛 날개를 만들어
새들이 일제히 날아오를 때
하나님도 손뼉을 치셨습니까
아! 정말로 하나님
빛이 있어라 하시니 거기 빛이 있더이까.
사람들은 지금 시를 쓰기 위해서
발톱처럼 무딘 가슴을 찢고
코피처럼 진한 눈물을 흘리고 있나이다.
모래알만 한 별이라도 좋으니
제 손으로 만들 수 있는 힘을 주소서.
아닙니다. 하늘의 별이 아니라
깜깜한 가슴속 밤하늘에 떠다닐
반딧불만 한 빛 한 점이면 족합니다.
좀더 가까이 가도 되겠습니까.
당신의 발끝을 가린 성스러운 옷자락을
때묻은 손으로 조금 만져 봐도 되겠습니까.
아 그리고 그것으로 저 무지한 사람들의
가슴속을 풍금처럼 울리게 하는
아름다운 시 한 줄을 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하나님
2010/04/15
윤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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