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신문사에 있던 분이 다가와서 다른 사람들은 한 나라만 다녀와도 책 한 권씩 쓰는데 어떻게 해서 그 많은 나라들을 다니고서도 글 하나 쓰지 않느냐는 꾸중섞인 제안을 받고 사양하다가 글을 써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어 여행문과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다.

그 때에는 독일에 있는 괴테 생가 방문기를 쓰기로 했었는데 내 딴엔 최선을 다했는데 얼마나 유치했던지 그것을 지금 읽어보면 한심해서 얼굴이 뜨거워질 지경이다.  그런 글을 쓰고 나서도 열흘 넘게 심하게 앓기까지 했으니…  그렇다고 지금 잘쓰는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이렇게 글쓰기란 결코 만만치 않아 아무리 내딴에는 정성들여 쓰더라도 좋은 글이 되기는 참 힘이 든다.

요즈음 신문에 ‘영미권 인기작가들의 글쓰기 법칙’이 소개되어 많은 부분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첫째로 자신이 쓴 글을 큰 소리로 읽어서 문장의 리듬을 확인하라는 것이다.  다음은 절대 용어사전을 들여다 보지 말며 작품을 쓰는 동안엔 파티도 가지 않을 정도로 다른 이들의 단어가 자신의 단어들 속으로 쏟아져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의 언어로 글을 써야하기 때문에 글쓰는 동안에는 사람들도 만나지 말라는 이야기이다.

어떤 작가는 스스로 비평가가 돼야 한다며 불필요한 단어들을 쳐내고 상투적 문구를 조심하라며 더 뺄 부분이 없을 때까지 문장을 다듬어야 한다고 말한다.  어느 작가는 글을 본 사람들이 틀렸다고 지적하면 대개는 옳은지적이라며 한두 명의 친구에게 읽어보게 하는 게 좋다고 했다.  정말 쓸데없이 길게 늘어뜨린 글을 읽으면 은근히 화가 치밀 때도 있다.   

성공한 작가들의 글쓰기 법칙을 요약하면 자신의 단어를 사용하고, 쓴 글을 소리 내어 읽고, 읽고 쓰기를 반복하고, 쓴 글을 버릴 줄도 알아야 하고, 인터넷을 멀리하고, 어휘력을 기르고, 다양한 경험을 하고, 스스로 비평하는 법을 배우고, 메모하는 습관을 들이고, 글쓰기를 즐기라는 것이다.

참 말이 쉽지 이게 보통 일인가.  얼마 전 에세이 <오렌지나무 곁에서 9>를 쓰다가 너무 엉성한 것 같아 쓰고 지우고 또 쓰고 지우고 하면서 밤을 꼬박 세우는 바람에 진이 다 빠져버린 것 같았다.  뒤늦게 재미 붙여 날 새는 줄도 모르게 된 셈이다.  그 후 목이 붓고 콧물과 기침으로 며칠동안 심하게 고생했다.  참 글을 써서 뭐가 생긴다고 이 법석을 떠는 것일까 한심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올따라 눈이 많이 내려 오늘도 폭설로 학교도 문을 닫고 길은 한적한데 밖엔 여전히 하얀 눈송이가 펄펄 날리고 있다.  며칠 심하게 아프다가 오늘 저녁엔 그르렁거리는 기침으로 골까지 흔들리는 통증이 왔다.  며칠 씻지도 못해 엉클러진 머리에 몰골이 흉악해 보였다.  정말 괴물같았다.

그래도 오늘 저녁 연아의 경기는 봐야지.  가까스로 걸터 앉아 TV를 향해 비스듬히 비껴 앉았다. 그러면서 다 끝나고 보아야지 도저히 내 가슴이 쿵쾅거려 볼 수가 없다고 혼자 생각했다.  저 한 순간을 위해 얼마나 눈물겨운 세월을 견뎌야 했을까.  얼마나 남 모르는 고통을 겪어야 했을까.  내 가슴이 더 아파와 혹시 실수라도 할까봐 가슴 저려 그냥 바라볼 수 없을 것 같았다.  NBC에서는 여자 싱글 피겨스케이트를 계속 중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스키시합도 보여주어 더욱 기다리기 힘이 들었다.

막상 가냘파 보이는 연아가 나타나자 얼마나 안쓰러워 보이던지.  그런데 예상 밖에 대담한 경기를 보여주어 가슴 조리던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았다.  연아는 꿈에 그리던 올림픽 금메달을 거머쥔 뒤 자신이 있어서 긴장도 안했다던가.  정말 연아는 방금 천상에서 내려와 맑은 물 흐르듯 은반 위에서 황홀한 몸짓으로 우아하게 추었다.  그 순간 시간은 정지되고 사람들의 마음은 그녀와 함께 춤추며 부드럽게 날개짓 하였다.

작가 제프 다이어의 말처럼 “관찰한 것을 단어로 옮기는 작업을 습관으로 만든다.  이 습관은 점차 본능이 될 것이다”  그렇다.  나름대로 성공한 운동선수나 예술가나 작가나 누구든지 자신의 분야에서  습관이 본능이 되도록 중단없이 피나는 연습을 한 것이다.  습관이 되기도 얼마나 힘든 데 말이다.

나도 저 세상에서 손짓할 때까지 부단히 성장해야지.  아픈 몸을 추스리며 멀리 눈 내리는 숲이나 출렁이는 겨울 바다를 마음의 눈으로 응시하며, 하얀 뒷뜰에 말없이 그림처럼 손짓하는 나뭇가지들을 향해 초점을 맞추고서 카메라의 셔터도 눌러 보고, 젖혀진 의자를 끌어당겨 앉으며 기침할 때마다 울리는 두통을 가슴으로 쓰러내리면서 오늘도 습관이 되도록 콤퓨터 자판을 두드려본다.

언젠가 습관이 본능이 될 때까지……
경건의 훈련도 게으르지 말고서…

“육체의 운동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 훈련은 모든 면에 유익하니, 이 세상과 장차 올 세상의 생명을 약속해 줍니다.” (디모데전서 4:8)


 2010/02/27
윤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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