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에 들어온 오렌지나무가 뽀얗게 꽃을 피우며
퍽 오랫동안 황홀한 향기로 기쁨을 주었더랬습니다.
그런데 한두 달이 조금 지나자 한잎 두잎 떨구더니
바닥이 오렌지 잎으로 수북이 덮였습니다.
오렌지나무 곁을 지날 때면 어김없이
새로 떨어진 나뭇잎이 바닥에 딩굴고 있습니다.
간혹 가지를 살짝 스치기만 해도
몇 잎들이 떨어져 여간 조심스럽지 않습니다.
내려앉은 잎들을 손으로 가만히 흝어 나무 그릇에 곱게 담아
그냥 오렌지나무 곁에 나란히 놓아두었습니다.
그런대로 충분한 수분을 공급해 주었고
햇볓과는 비교할 순 없지만 그래도 밤엔
전등도 켜놓아 신경을 많이 써주었습니다.
그러나 몇몇 가지의 잎들이 모두 떨어진 것을 보면
너무 과다한 영양 공급으로 뿌리의 한 부분이
상처를 입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가끔 잘해준다고 하는 것이 오히려
타인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이 있기도 합니다.
저도 모르게 고마운 가해자가 되는 셈이지요.
나무 그릇에 담긴 오렌지 잎들은 왕성했던
지난 여름의 꿈을 그리워하며
한 때 뜨거운 열정의 계절이 있었음을 떠올립니다.
이제 어느덧 떨어진 잎이 되어 얼굴을
흙에 묻어야 될 때가 되었다고 움칫 놀라기도 합니다.
계절은 어김없이 찾아와 눈덮인 대지를 서서히 녹이고,
며칠째 처마 밑 고드름이 맑은 소리를 냅니다.
어둡고 긴 겨울도 이른 봄을 입고
얼음 밑을 흐르는 경쾌한 물소리와 함께
눈부신 햇살로 기지개 키며 서서이 일어날 준비를 합니다,
내일은 모처럼 방안의 창문도 활짝 열고
봄 맞을 준비를 해야할 것 같습니다.
겨울이 있어 봄이 오듯, 헤어지는 아쉬움이 있어
이른 봄의 햇살이 더욱 따스해지는 것 같습니다.
앙상해진 오렌지나무가 봄나들이 할 때를 기다립니다.
봄의 위로가 듬뿍 내려 이슬 맺힌 싱그러움으로
다시 풍성한 계절을 맞게 되길 바랍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은 무시하면서 자신의 생각은
항상 옳다고 착각하지는 않았는지 또한,
자신에게 좋은 것은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것이라며
마구 우기지는 않았는지 다시 한번 되돌아봅니다.
오렌지나무의 소리없는 외침에 좀 더 귀를 기울였더라도,
“고맙지만 사양하겠어요”라는 갸날픈 몸짓에
좀 더 따뜻한 가슴으로 공감했더라도,
이렇듯 고마운 가해자는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도 제 귓가에 들리는 듯 합니다.
“고맙지만 사양하겠어요”
2010/02/22
윤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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