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대학들이 졸업식을 가지면서 수 많은 학생들이 오랜 학창생활을 마치고 새로운 세상을 향해 발돋움해 나간다.  나의 막내 아들도 얼마 전 컬럼비아 대학을 졸업했다.

모 두 설렘과 희망으로 가득 차야 할 올해의 졸업식장에는 예전과는 달리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 듯한 느낌이 든다.  신문에는 올해 5월과 6월 중 대학을 졸업했거나 졸업 예정중인 170여 만 명의 예비 사회인 중 취업이 확정된 학생은 전체의 5분 1 수준 정도라고 했다.  그러나 막내는 그것보다는 더 많이 직장을 찾은 것 같다고도 했다.  학교 졸업식에서도 교수들이 졸업생들을 격려하며 미국경제가 더 나아져서 모두 원하는 직장을 갖길 바란다며 많은 격려를 보냈다.

막내도 매케니컬 엔지니어링을 전공했지만 아직 직장을 찾지 못했다.  학교에도 부탁하고 선배들 회사에도 연락해 보기도 하면서 백방 노력하고 있어 안쓰러워 물어보았더니 시간 문제이지 직장이 될 것이라며 오히려 나를 위로해서 다행스럽기도 하다.

두 딸들의 등록금을 주면서 너희들이 공부를 마치고 돈을 벌게 되면 동생을 공부시켜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다짐했더니 제 동생을 많이 도와주었고 장래도 조언해준다.  딸들은 막내가 의대를 진학하기 원하지만 정작 본인은 좀 더 생각해 보겠다고 하지만 심리학과 정신분석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두 딸들은 대여섯 살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었고 중학교부터는 바이올린을 배우기도 했다.  막내도 제 누나들처럼 5살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몇 년 배우더니 안치겠다고 난리를 쳐서 얼마나 애를 먹였는지 모른다.  그러느라 애꿎은 선생만 몇 번 바꾸는 일이 생긴 후 안되겠다 싶어 그만 두었다.  누나들은 여자들이라서 피아노를 배우는지 모르지만 남자들에게 피아노는 별로라며 트럼펫을 부르기 시작해서 고등학교 내내 밴드부에서 트럼펫을 불렀다.

그 러다가 고등학교 때 기타를 사달라고 졸라서 록뮤직이 생각나 반대했더니 통기타를 치면 될 것 아니냐며 혼자 배우기 시작해서 지금은 수준급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예일대학 여름캠프 동안 몇 과목을 택했었는데 자신이 원하던 한 과목은 다 차서 음악을 택했었는데 그것이 재즈에 대한 역사공부였다.  재즈강의를 들은 후 깊은 이해와 관심을 갖게 되면서 더욱 연습하는 동기가 됐다.

그 러면서 운동도 열심이어서 미식축구, 달리기, 라 크로스 팀에서 팀장으로 열심이었다.  미식축구에선 쿼터백으로 맹활약했고 졸업 때엔 전국 고등학교 명예의 전당 선수로 지명 받기도 했다.  컬럼비아 대학에서는 전액 장학금을 줄 터이니 축구선수로 오라는 제의도 있었다.

그러나 운동하면서 뼈가 부러지기도 하고 심한 부상도 여러 번 겪었다.  피를 흘리며 아파하는 것을 보고 내가 눈물을 감추며 울상이 될 때마다 아들은 이것은 운동의 일부이니 걱정 말라며 나를 오히려 위로하면서 집에서 쉬지도 않고 학교로 갔었다.  부상한 몸으로 벤치에 앉아서 자기가 뛰지 못해 시합에 지면 어떡하냐고 오히려 팀을 걱정하며 격려했었다.

그 러니 대학에서도 운동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당연했다.  고등학교 때 열심히 한 것으로 족하니 대학에선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했다.  하버드 대학에도 라 크로스나 축구선수로 갈 수 있었으나 컬럼비아 대학에서 그냥 공부 만하기로 했다.

아들 대학을 결정하고 났더니 친구들이 웃으면서 하나님이 첫째는 내가 아직 젊어서 멀리 보스턴의 하버드대학에 보냈고 둘째는 그 보다 좀 더 가까운 뉴헤이븐의 예일대학에 보냈고 막내는 내가 나이가 들어 장거리 운전이 힘들까 봐 제일 가까운 맨해튼에 보내게 되었다며 축하해주었다.

대학시절 내내 팀스포츠를 그리워하던 막내가 요즘 함께 시간만 되면 고등학교 친구들과 만나 축구나 라 크로스를 하면서 너무 행복해 한다.  그리고 어울려 기타를 퉁탕거리며 연습한다.   함께 일 년에 몇 번 캐리비언이나 멕시코에 있는 클럽 메드에서 통기타 연주를 한다.  올 여름도 2주 간 멕시코 연주여행 스케줄이 잡혀있다.

그러나 이렇듯 겉보기와는 달리 마음이 심히 억눌릴 때가 많았고 지금도 많다.  나는 종종 아이들을 키우면서 기도를 많이 하지 못했던 것이 너무 후회가 된다.  미국대학이 어떤 곳인가?  술. 마약 그리고 섹스가 난무하는 곳이 아닌가?  그래서 두 눈 달린 사람이 한 눈 달린 사람들 속에서 이상한 취급 받기 적합한 곳이 아닌가?

그런 유혹의 정글 속에서 실수를 통해 깨닫기도 하면서 우리의 자녀들이 올바로 살려고 얼마나 방황하고 수없이 갈등했을까?  그것을 생각하면 자녀들이 무사히 졸업해준 것 만해도 하나님께 감사하다.  아니 살아준 것 만해도 너무 감사하다.

믿는 자들은 자녀들에게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는 것 이상 더 귀한 것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자녀들을 위해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한다.  정말 무섭게 변하는 세상을 헤치며 살아야 하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고 산다는 것은 요행을 바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성 어거스틴의 어머니가 들었던 말을 다시금 되새겨 본다.  “어머니가 기도하는 자식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

그리고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를 향해 가시면서 하신 말씀을 다시 한 번 기억한다.
“예수께서는 여자들을 돌아다 보시고 말씀하셨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어라.” (누가복음 23:28)

2009/06/07
윤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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