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태어난 것을 계기로 소수민족의 미국 주류사회 진출을 기대했었다.  이제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한 지 100일이 지남으로 그 기대가 서서히 현실화 되는 느낌이 든다.

한국인들의 미국 이민이 100년을 넘기면서 이민 1세대들의 말없는 희생을 밑거름으로 하여 그 다음 세대들이 잘 자라 나름대로 뿌리를 든든히 내리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아직도 이민 역사가 긴 유대인들에 비하면 갈 길이 멀고도 멀지만 그래도 생활에 억매여 허덕이던 이민 세대들과는 달리 2세들이 미국의 회고 엘리트 교육을 받고 여러 분야에서 눈에 띈 활약상을 보여주는 것 같아 매우 고무적이다.

현재 오바마 행정부와 백악관 등에서 차관보급 3명을 비롯해서 특별보좌관이나 비서관, 연락 담당관으로 일하고 있는 한인들이 모두 10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 중에 미 행정부내 고위직인 차관보급으로 내정된 고경주(57, 하워드 고), 홍주(54, 헤럴드 고) 형제가 단연 두드러진다.  형제가 동시에 미 행정부 고위직에 오른다는 사실에 다시금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보건담당 차관보로 지명된 고경주 박사는 예일대 의대를 나와 하버드 보건대학원 학장을 지냈고, 미 국무부 법률고문에 내정된 고홍주박사는 하버드 법대를 나와 예일대 법대학장을 지냈다.

두 형제의 아버지인 고 고광림(高光林)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하버드에서 정치학 박사를 하였다. 고광림 박사는 4남2녀를 두었는데 6남매 모두 하버드, 예일대를 나왔고 그들 중 4 명이 현재 예일대 교수로 있고, 가족이 보유한 박사 학위만도 11개로 알려져 있다.  모친은 전혜성 박사로 예일대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예일대 동암문화연구소 이사장에 재직중이다.

내겐 1년 차이인 두 딸과 지금 막 대학을 졸업하는 늦둥이 아들이 하나 있다.  첫 딸은 하버드대학을 나와 같은 학교인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하고 지금 맨해튼에서 직장을 갖고 살고 있고 둘째 딸은 예일대학을 나와 예일 의대를 졸업한 후 하버드 의대에서 피부과 조교수로 일하다 지금은 뉴욕에 있는 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고형제의 성공담을 읽으며 부쩍 둘째 딸이 예일 의대에서 공부하고 있었을 때의 일이 생각났다.  하루는 내가 주일날 아침 일찍 예일대학을 방문하게 되었고 딸과 함께 대학 근처 교회를 참석하게 되었다.

예일대 학부 학생들과 대학원생들이 교회의 성가대와 교인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고, 몇몇 교수들과 켐퍼스 근처에서 사는 사람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그곳에 전혜성 박사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그녀의 옆에는 몇몇 예일대 교수들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모든 예배순서가 끝난 후 친교시간이 있었는데 방문객이었던 나는 누군가 말을 붙여오면 모를까 내가 먼저 이야기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리고 당대의 석학들이라고 불리 울 만한 교수들과 처음 만나 무슨 대화를 할 수 있었겠는가.

딸은 나의 그러한 태도에 사뭇 못마땅한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내 팔을 잡아 끌고 가서 전혜성 박사에게 엄마를 소개시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녀와 눈 인사를 주고 받으며 간단한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 짧은 대화 중에도 나의 딸을 쳐다보며 내게 한국사람들이 자녀교육을 잘 시킨 것을 보면 너무 자랑스럽다고 어찌나 칭찬하던지…

그런 나를 보고 있던 딸은 교회문을 나서며 “엄마는 왜 저 여자분처럼(전혜성 박사를 지칭) 하지 않았어?  엄마도 얼마든지 공부할 수 있었는데 왜 그러질 않았어?  그녀도 아이들을 키우면서 박사가 됐는데” 라며 눈을 치켜 뜨고 내게 질문하는 것이었다.  순간 나는 나의 약점을 들켜버린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오래 전 미국에 이민 온 나는 대학에서 계속 공부하겠다고 책 보따리를 싸가지고 왔었다.  그후 엄마가 미국에 오시게 되어 나는 어린 애들을 맡기고 학교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곳에서 영어(English as a Second Language)를 배우면서 앞으로 유용할 것 같아 컴퓨터와 어카운팅을 배웠다.  그 후 직장을 택하게 되면서 더 이상 원하던 공부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혼자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래 난 그렇게 더 공부하지 못했지만 너희들이 잘 자라준 것만도 하나님의 은혜로 감사한다.  난 너희들이 최고 명문대학을 다녔다는 것으로 최고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단다.  최고의 덕목은 너희가 남보다 더 나은 것만큼 다른 사람에게 사랑으로 베푸는 삶을 사는 것이란다.  그리고 너희들이 무엇을 하든지 행복하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단다.

지금도 나의 기도는 변함없다.

“사랑하는 이여, 나는 그대의 영혼이 평안함과 같이, 그대에게 모든 일이 잘 되고, 그대가 건강하기를 빕니다.”  (요한3서 1:2)

2009/04/30
윤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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