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밖엔 흰 눈이 쌓이고 창가엔 나의 사랑스런 오렌지나무가 서있습니다. 지난 여름 집 밖에서 적당한 비와 햇빛을 받으며 잘 자란 오렌지나무에 아직 푸르기만 한 열매가 한 열한 개쯤 여전히 달려있는데 한달 전 더 할 수 없을 만큼 황홀한 향기를 풍기며 화사한 꽃을 피우더니 꽃이 지고 난 후 지금은 아주 조그만 열매가 되어 앙증맞게 귀여운 얼굴들을 하고 달려있습니다.
그 옆에 이년 전 즈음 한 여름에 퀸즈에서 꽃집을 하는 마음 착한 분이 학처럼 긴 목을 한 가데니아나무를 내가 꽃을 너무 예뻐한다며 거저 주다시피 해서 겨울에 오렌지나무 옆에 가지런히 갖다 놓았습니다. 머리에 인 수북한 잎들 사이로 무수한 꽃망울들이 맺혀있습니다. 이젠 오렌지나무도 홀로 있지 않아도 되고 서로 쳐다볼 수 있어서 좋겠습니다.
오렌지 꽃이 지고 나니 가데니아가 하나씩 크고 하얀 꽃망울을 터뜨리며 또 다른 천상의 향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어떤 할리우드 유명 여배우가 자신의 결혼식장을 가데니아 꽃으로 온통 희게 장식했다고 하니 그 향기에 취한 우아한 분위기가 어떠했을까 짐작이 갑니다.
둘 이 전혀 다른 것 같으면서도 찬찬히 들여다보면 많은 공통점을 가진 것 같습니다. 우선 둘 다 항상 진 녹색의 튼튼한 잎을 가졌고 많은 물과 영양과 햇빛을 필요로 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둘 다 하얀 꽃이 피고 열대나 아열대 지방에서 잘 자라는 따뜻한 지역의 식물로 씨를 뿌려 재배하는 점입니다. 물론 오렌지는 다른 나무에 접붙여서 키우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또한 뜻도 비슷한 것이 신기하기도 합니다. 오렌지 꽃은 정조와 순결을 가데니아는 청결과 순결을 뜻한다니 말입니다. 둘 다 다르기도 하지만 강하고 달콤한 향기를 풍기는 점도 같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둘 다 결혼식에 인기가 있는 이유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오렌지 꽃은 빅토리아 시절에 아주 인기가 많아 신부들의 꽃다발이나 머리장식으로도 꽤 쓰였다고 합니다. 오렌지는 꽃이 만발하고 열매를 많이 맺어 풍요와 부의 상징이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캘리포니아나 플로리다 신부는 이 꽃으로 장식할 만도 하겠습니다.
나무는 정말 정직 합니다. 사람들이 돌보아주는 만큼 잘 자라줍니다. 한동안 신경을 써주지 않으면 마른 얼굴로 서서 날 좀 보아달라는 듯 꺼칠해진 모습으로 쳐다봅니다. 그러다가도 적당한 수분과 빛과 공기와 영양을 공급해주면 아무 불평 없이 싱싱하게 뻗는 가지에 기쁨으로 반짝이는 짙은 초록 잎을 내놓습니다.
또한 자기에게 필요한 것 이상의 것을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자기 일만 묵묵히 할 뿐 쓸데없이 남 참견은 하지 않습니다. 오며 가며 예쁘다고 쓰다듬어 주고 잘 자라주어 고맙다고 하면 언제나 싱싱한 모습으로 다정한 웃음을 보냅니다.
오렌지나무 곁에서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며 행복한 눈길로 오늘따라 유달리 춥고 눈이 덮인 창 밖을 보며 생각에 잠겨봅니다. 예전엔 화분에 갇힌 것이 안쓰러웠는데 얼마 전 캘리포니아의 갑작스런 한파로 오렌지가 다 얼어버려 못쓰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래도 추운 겨울 따뜻하게 피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렌지나무는 보통 70년을 살면서 꽃과 열매를 맺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저 나무는 앞으로 아마 오륙십 년은 족히 살 수 있을 것 입니다. 우리 모두 건강하게 살아 수명을 같이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한 구루의 나무로부터 귀한 교훈을 얻습니다. 언제나 자신에게 정직하고 충실 하라고……
2009/01/16
윤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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