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처럼 엄마는 집 뒤뜰에 조그만 텃밭을 만들어 매일 물을 주며 정성스럽게 가꾸셨다. 고추랑 오이, 호박 그리고 깻잎 등 여나무 구루 심어서 제법 싱싱한 채소를 심심치 않게 먹을 수 있게 하셨다. 오이를 얼마나 많이 수확했는지 시집간 두 손녀집에 보낸다고 직접 오이김치를 담아 몇 번 보내기도 하셨다.
동양식품점에서 산 김치는 대부분 소금을 지나치게 넣어 짜서 먹기가 힘들었는데 할머니는 이북식으로 싱겁게 담으셨다. 싱그러운 오이김치로 손녀사위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여러번 받고 기분이 좋아지셨다.
1923 년 3월 1일 평안북도 초산에서 다섯 남매 중 네째로 태어난 나의 엄마는 어릴 때 부모님이 농장을 경영하셨다고 한다. 일찍 아버지를 병으로 여위게 된 후 큰 오빠가 살림을 책임지게 되어 홀로 황해도 해주로 가서 일년동안 터를 닦은 후 초산으로 돌아와 집과 모든 땅들을 팔아서 온 가족이 이주하게 되었다고 한다.
해주 근교에서 제법 큰 농장을 경영했고 일꾼들도 무척 많았다고 했다. 엄마는 내가 어릴 때 황해도에서 자란 이야기를 가끔 들려주곤 하셨다. 밭에서 자란 채소랑 과일들을 어부들이 바다에서 금방 잡아올린 싱싱한 조기와 맞바꾸었다고 한다.
한 동이 천 마리인데 그것을 여러 큰 항아리에 소금 뿌려가며 절였다가 볕에 적당히 구득구득 말리면 알이 가득찬 노란 굴비가 얼마나 맛있었는지 굽지 않고 그냥 날로 쭉쭉 찢어서 먹어도 너무 맛있었다고 한다. 그런 맛있는 굴비는 남한에선 찾아 볼 수 없었다고 했다.
얼굴만큼 큰 것을 금방 잡아 싱싱하게 삶아 빨개진 꽃게는 얼마나 맛있고 배불렀는지 모르고 또한 사람들을 따라서 썰물과 함께 들어가 두 번이나 조개도 잡아보았다며 여러번 자랑도 하셨다.
고 구마도 겉은 흰데 속은 얼마나 단지 홍시를 먹는 것 같았고 과일도 탐스럽게 크고 달아서 꿀맛이었다고 한다. 밭에 나가면 시장에다 내다 팔고 남은 과일과 채소들이 많았다고 했다. 그 중 잘익은 수박과 건드리면 터질 듯한 토마토를 반으로 쪼개면 빨간 속이 서리라도 낀 듯 뽀얗게 덮혀 있는 것을 한 입 크게 물면 입 안에 온통 아삭거리는 싱그러움과 그윽한 달콤함이 가득 찼다고 했다.
요즈음 시장에서 사는 채소나 과일들은 설익은 것을 일찍 따서 오는 도중 익거나 덜 익은 것을 내다 팔면서 밭의 싱싱함이 사라져서 맛과 영양이 반감한 것이 대부분인 것을 감안하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엄 마는 어릴 때부터 항상 싱싱한 음식을 마음껏 먹고 자라서 지금껏 큰 병을 모르고 건강하게 살 수 있던 것 같다고 하신다. 그래서인지 땅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무어라도 심지 않고는 견디질 못하신다. 덕분에 밥상 가득히 올려진 맵지 않은 풋고추와 오이를 쌈장에 찍어 먹으며 텃밭의 호박을 숭숭 썰어 넣고 두부도 가지런히 썰어 넣어 구수하게 끊인 심심한 나의 엄마표 된장찌게에 알맞게 현미 섞인 밥을 쓱쓱 비벼서 양념한 깻잎찜을 얹혀 먹는 맛은 소박한 행복감과 함께 한 여름의 더위를 말끔히 잊게 만든다.
엄마, 이북에 부모 형제 남겨두고 먼저 떠난 남편따라 어린 오빠를 안고 그믐달 목숨걸고 남한에 피난오셔서 우리 남매를 위해 한 평생 고생하신 것 감사합니다. 엄마를 보고 싶다며 눈물 붉히던 엄마의 모습을 잊지 못합니다. 엄마의 말없는 희생과 믿음의 기도가 지금 우리를 만드셨어요.
아빠를 닮아 무뚝뚝하기만 하다던 딸이 싹싹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그러나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고 증손주 재롱도 보시고 그들이 커서 결혼하는 것도 보시기 바랍니다.
엄마 사랑해요.
2008/08/25
윤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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