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읊조렸던가?.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그러나 올해의 5월은 그 어느 달보다 더욱 잔인한 달이 되어버렸다. 미얀마의 이라와디강 일대는 10만명도 넘는 사람들이 순식간에 밀어닥친 초강력 싸이클론으로 인해 삼켜버린바 되었고 모든 가옥들도 납작하게 되거나 서글프게 물에 잠겨버렸다.
북한정권을 모방하였다는 어설픈 군정부는 자신의 정권연장욕에 외부인들의 도움도 거절하며 국민들은 죽든말든 고개를 돌린 채 통제에만 안간힘을 썼다. 각국에서 보낸 구호품들을 빼돌려 시장에 내다 팔아 돈을 벌어보겠다는 정부 고위층들의 얄팍한 수작들은 저질스런 인간의 추태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정부의 늑장으로 시체들은 물위에 둥둥 떠있고 더운 날씨탓에 썩는 것을 방치해서 전염병이 돌고 있다. 현지에는 마실 물과 식량, 의류, 텐트등이 부족하고 그나마 몇명 안되는 생존자들조차 말라리아로 살아남기 힘들게 되었다.
한편 중국에선 쓰촨성 일대의 강진으로 수 많은 인명과 재산피해를 보았고 지진으로 매몰되어 물길이 막혀 생긴 거대한 호수들이 언색호라는 낯선 단어로 표현되어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처럼 째깍째깍 시간을 갉아 먹어 들어가고 있는 판국이 되었다. 정식 보고된 사망, 실종자만 7만 2천여명이라고 하지만 32년 전 허베이성의 대지진처럼 발표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
성경에는 ‘한 영혼이 온 천하보다 귀하다’는데 남녀노소가 무슨 차이가 있을까 만은 학교건물이 무너지는 바람에 공부하고 있던 어린 학생들이 피지도 못한 채 몰살해 버린 것은 정말 가슴 아프다. 쓰촨성의 원촨에서 무너져 버린 학교 건물은 원폭으로 골절만 앙상하게 남았던 히로시마의 건물을 연상시키는데 그 건물을 향해 등 돌린 채 무릎 꿇고 기도하고 있는 한 여인의 사진을 보며 다시 한번 인생이 무엇일까 깊이 생각해본다.
중국에선 한 가정 한 자녀 정책으로 달랑 한 자녀만 둔 집들이 대부분일텐데 그들의 죽음 앞에 부모의 심정은 어쩔 것인가. 인간은 누구나 죽음의 씨를 품고 태어나지만 이렇게 사그러진 어린 생명 앞에 속수무책이 되어 아픈 가슴을 쓰러 담는다.
얼마 전 큰 딸로부터 전화가 왔었다. 자신이 다녔던 로펌에서 함께 일하던 몇 살 위인 아이리쉬계 수쟌은 하바드법대를 나왔고 직장 내에서도 항상 웃고 착하기로 유명했는데 같은 직장에서 만난 남편 사이에 어린 두 자녀를 둔 후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던 중 몸이 좀 피곤한 것 같아 검사해 보았더니 희귀암이라는 것이었다.
그 후 3 달만에 세상을 떠나 장례식에 갔다왔다고 한다. 아직 어린 아이들 때문에 죽어가면서도 눈을 제대로 감을 수 있었겠느냐며 울먹였다. 그런데 며칠 전 또 전화가 왔다. 한국인 대학친구의 이메일에는 그의 남동생이 집 근처에서 조깅하던 중 차에 치어 사망했다고 한다.
그 친구의 가족이야기를 들으면 꼭 자신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고 한다. 위로 딸 둘이고 막내로 아들인데 특히 그의 엄마는 아들을 무척 자랑스러워하고 아꼈다고 한다 – 난 아들이나 딸이나 차이가 없지만. 큰 딸 친구도 하바드법대를 나왔고 막내 아들은 하바드대학과 하바드 경영대학원을 나와 좋은 직장을 얻어 결혼하고 아직 자녀는 없지만 집도 장만했는데 그런 청천병력 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한다. 이제 겨우 서른 살 초반인데 말이다. 한 달도 채 안되어 두 번 장례식 참석을 하게 된 것이다.
지난 2월 갑자기 막내 아들이 건강상 휴학을 하게 되어 우리 가정은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고통을 맛보아야 했다. 지금은 서서히 회복되어 가는 듯 하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의사는 암과 같은 치유 불가능한 병을 앓는 사람들도 많은데 적어도 생명엔 지장이 없다는 것을 감사해야 한다고 위로했다. 그 말은 듣기에 따라 섭섭할 수도 있지만 맞는 말이다.
그래, 살아만 있어다오. 지진 속에 천리도 멀다 않고 달음질해 온 모정처럼 무언들 못할까보냐. 학벌이나 명예, 권력, 재물이 스러져가는 생명 앞에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한치 앞도 알지 못하는 삶이기에 그래도 견딜 수 있는지 모른다. 나 자신을 위해 울어야 할 때다.
인간의 생명이 호흡에 달렸는데 더욱 낮은 자세로 겸손하게 살아야겠다. 내 가슴 깊은 곳에 정직한 영을 부어달라고 기도드린다. 남에게 보이고자 하는 삶이 아니라 간사함이 없는 삶을 살게해 달라고 말이다. 비록 내일 이 세상의 종말이 온다 해도 오늘 하루 너무나도 소중한 시간들을 의미있게 보내야겠다.
2008/05/21
윤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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