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한국은 새 정부로 바뀌는 과도기에 있으면서 인수위에서 여러가지 야심 찬 정책들을 많이 쏟아내고 있다.  그 중 영어 교육을 확 뜯어 고치겠다고 발 벋고 나섰다.  10년 배워도 입도 벙긋 못하는 영어 교육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 기사를 읽으면서 어느 교인으로부터 들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신앙심이 깊었던 한 여집사는 오랫동안 남편의 믿음을 위해 기도하였지만 전혀 나아지는 기색이 없었다.  같이 먹고 우루루 몰려다니면서 그녀의 남편에게 교회는 그저 사교클럽 정도로 전락된 듯이 보였다.  그러던 중 오랜만에 남편의 친구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는 완전히 180도로 변하여 옛 사람은 사라지고 새 사람으로 바뀐 모습을 보고 너무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 여집사는 긴 한숨섞인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내 남편이 이 교회를 10년이나 다녔는데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남편 친구는 좋은 목사님을 만나 좋은 신앙인으로 거듭났어요.  내 남편도 그곳에서 신앙생활을 했더라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거예요.  그러나 내가 이 교회를 떠난다면 모두 붙잡고 난리가 날 것이 불보듯 뻔해서 도저히 못하겠어요.  우리가 아주 먼 곳으로 이사를 가지 않는 한에는…”

결국 그 여집사는 아주 멀리 이사가게 되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이번에는 잘 알아본 후 신중하게 결정했다고 한다.  지금은 남편도 많이 달라져가고 온 가족이 더 행복해졌다는 것이다.  신앙인들에게는 어떤 영적 지도자를 만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나 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해본다.  세상에선 시험이라도 치르고 우열을 가릴 수 있기라도 하지만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는 무엇으로 재어볼 수 있단말인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영적 지도자임을 주장하는데 그것을 뒷바침 할 만한 것이 무엇이 있는가.  누가 위로부터 인정 받고 누가 인정 받지 못하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구약시대에 엘리야 선지자는 바알의 예언자 450명과 갈멜산에서 대결하여 기도로 불이 내려와 모든 것을 사르게 하였으며 모세는 하나님의 대언자임을 무수히 보여주었고 사도행전에서의 사도들은 그들이 행하는 모든 일들이 위로부터 오는 신령한 은혜임을 여실히 증명해 보여주었다.

며칠 전 한국의 MBC 시사프로그램 ‘뉴스후’에서 ‘세금 안 내도 되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종교인들의 세금 납부 문제와 성직자들의 호화 생활을 다룬 것이 방송되어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고 한다.  3억원이나 되는 최고급 차와 최고급 아파트 또는 골프 연습장이 딸려있는 고급 빌라에서 살고 있으며 부동산으로 돈을 번 재벌 성직자들과 승려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소위 목회 성공신화를 이룬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이야기인 것 같다.

개교회주의에 빠져서 타교회는 경쟁 대상쯤으로 생각하고 커다란 블랙홀처럼 모든 교인들과 물질을 거세게 빨아들여 축적하기만 하고 교회 밖으로 내보내지 않는다면 분명 잘못되고 불행한 일이다. 반면 자신을 철저히 부인하고 검소한 생활로 남에게 참된 사랑이 무엇인가를 실천하는 분들도 많이 있다.

몇 분 예를 들면 의사의 길을 가다가 강권적인 하나님의 역사로 방향전환하고 현재 인천방주교회를 목회하는 박보영 목사(www.lovebangju.org),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학부와 대학원 그리고 하바드대학교에서 ‘중동지역학 및 역사학’으로 박사학위 받고 몽골에서 목회와 강의를 하고있는 <내려놓음>의 저자 이용규 선교사(www.nomadlove.org), 밥 퍼 주는 목사로 유명한 다일교회의 최일도 목사 등등 지금도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분들이 어두운 곳을 어루만지고 상처를 싸매주고 있다.

영적 지도자의 길은 좁은 길이며 더욱 높은 도덕적 기준이 요구된다.  어렵고 고통스러운 만큼 그들의 사랑이 전달되기 때문이다.  물질은 누리는 것이 아니라 나누어 주는 것이다.  그 길은 곧 섬김의 길이다.  그런데 모두 입으로는 섬긴다고 하면서 행동은 전혀 다른 것이 문제다.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지 나쁜 나무가 절대로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  기도와 섬김, 인내와 희생으로 선한 믿음을 보여줄 수 없다면 결코 그 길을 가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이 아니라 능력에 있는데 자신도 할 수 없는 것을 남에게 시켜서야 되겠는가?   그래야 나같은 평범한 사람들일지라도 유혹이 올 때 절제하고 남을 도와주지 못함이 부끄러워 움켜진 손을 밖으로 펴게될 것이 아니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누가 우리에게 선한 것을 보여 주겠는가?” 하오니 여호와여, 그 얼굴의 빛을 우리에게 비추소서.   주께서 내 마음에 기쁨을 주셨으니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합니다.”  (시편 4편)

2008/01/31
윤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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