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에 둘째 딸로부터 정말 어렵게 임신된 것 같다는 반가우면서도 걱정되는 전화를 받았다.  너무 바쁜  아이들이라 좇기듯 사는 것이 안스러운데다가 임신을 했다니 어찌 감당할까 싶었다.

둘 째는 언니와 나이가 한 살 밖에 차이나지 않아 언제나 같이 붙어 다녔다.  큰 딸이 4살이 되어 프리스쿨에 들어 갔을 때도 둘째 딸은 강당 한가운데 서서 왜 자신은 함께 들어갈 수 없느냐고 매일 울어서 4살도 되기도 전 6개월이나 앞당겨서 들어가기도 했다.

털 털하기만 했던 큰 딸과는 달리 하루에도 거울 앞에서 몇 번이나 옷을 갈아입고 머리모양을 바꾸던 둘째 딸은 어릴 때부터 의사가 되겠다고 장난감 의사가방을 들고 다니기도 했다.  두 딸들의 정기검진을 위해 의사에게 갈 때면 큰 딸은 병원 문을 들어가기도 전에 무서워서 큰 소리로 울어댔지만 둘째는 두 살도 안되었는데 울지도 않을 뿐 아니라 의사가 주사 놓는 것을 가만히 들여다 보아서 모두 놀라게 했다.

어릴 때 자라온 그 모습 그대로 중고등 학창시절에도 똑같이 유지되는 것 같았다.  항상 책이 손에서 떠나지 않았으며 화장실에서도 책을 읽느라 몇 시간씩 나오질 않아 문을 두두려야 할 때가 종종 있었다.  또한 음악과 스포츠에도 열성을 보였으며 모든 면에서 항상 리더였다.

틀림없는 성격을 가진 첫째는  법대로 방향을 잡았고 둘째는 의대로 방향을 잡았다.   다른 사람들은 자식들을 모두 법대 아니면 의대로 보내는 것이 성공의 잣대로 생각해서 특징없이 같은 방향으로 달려가게 한다고 하겠지만 나는 그와 반대였다.

저희들이 행복하다면 무엇을 택해도 괜찮다고 하였다.  오히려 둘째에겐 의사공부가 너무 길고 어렵지 않겠느냐며 여러번 다시 생각해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다른 것을 공부하더라도 다시 의대로 돌아갈 것 같다고 해서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

자녀들이 대학 입학원서를 낼 때에도 전혀 참견해 본 적이 없다. 늦게 얻은 아들까지 소위 명문대에 진학하게 되어 부러움의 대상이 될런지 모르겠지만 전혀 감정의 굴곡이 없다.  그저 자신들이 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고 감사한 생활을 하길 바랄 뿐이다.

다만 아이들에게 너희가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오히려 남을 돕고 살기를 원한다면 다른 사람보다 더 잘 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했을 뿐이다.

하 버드대학교에서 학부와 법대를 다닌 첫 딸과 예일대학교에서 학부와 의대를 다닌 둘째 딸은 정말 무섭게 공부했다.  밤을 새다시피 입을 다물고 공부하다 보면 보통 새벽이 되어 밖이 훤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어금니들이 다 상하게 되어 나중에 치과에서 모두 신경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려 여러번 울기도 했다.

큰 딸은 교수강의를 녹음해 집에 와서도 귀에 꼿고 들으면서 잠시도 쉬지 않았다.  중국어 실력도 월등해 베이징대학교에 가서 공부할 때 최고 상을 받기도 했다.  둘째 딸은 체력이 좋아야 공부도 잘 할 수 있다며 매일 이삼 마일을 뛰어서 그 고달픈 인턴생활도 거뜬히 해내어 피부과 레지던트가 되었다.

그 즈음 큰 딸이 법대에서 자기와 같은 클라스메이트였던 남학생을 동생에게 소개해서 둘이 좀 사귀다가 결혼하게 되었다.  한국인인 그는 그 때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후 다시 하버드의대에 들어가 의사공부를 하고 있었다. 둘째 딸은 하버드의대 피부과 조교수가 되었고 그 중 하루는 맨해튼에 있는 마운트 사이나이병원에 가서 일했다.

맨해 튼에서 일하는 날이면 언니 집에서 자고 다음날 아침 일찍 비행기로 보스턴에 도착한 후 바로 병원에 가야 했다.  사위는 특수 척추수술 분야의 훈련을 받으며 하버드대학교에서 법의학을 강의 했다. 그러면서 둘이는 아이를 갖기 원하게 되었다.

마침 둘째 사위가 뉴욕 맨해튼에서 마지막 1년 레지던트 과정을 할 수 있어서 작년 여름 맨해튼 아파트를 얻게 되었다.  둘째 딸은 마운트 사이나이병원에서 일하면서 다른 병원에서도 일하기로 다 결정했었다.

그러나 인간이 계획하더라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양쪽 집 다 쌍둥이를 낳은 기록이 없는데 둘째 딸은 의사로부터 특이한 쌍둥이라며  절대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태 아가 위험하다는 진단을 받고 직장은 고사하고 임신 5개월부터 화장실 가는 것만 제외하곤 가만히 누어 있어야 했다.  딸은 점점 몸이 부어 무섭게 변해만 갔다.  정말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비교적 작은 태아는 포기해야 할런지 모른다고 해서 둘째 딸이 많이 울었다.

인간이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가? 나는 아무에게도 딸의 임신을 알릴 수가 없었다.

태아가 위험하다고 담당의사는 미리 수술 날자를 잡았다.  임신한지 34주가 되는 12월 12일 아침 10시에 콜럼비아의대  병원에서 수술하게 되었고 정말 감사하게도 무난히 조그만 두 여아들이 세상에 태어나게 되었다.

둘 째 부부는 조금 큰 아이의 이름을 엠마로 그리고 둘째는 이사벨이라고 정했다.  이사벨은 너무 작아 인큐베이터에서 일주일 이상 지내야 했다.  둘이 합해도 정상적인 한 아기의 몸무게보다 작았다. 이리하여 나는 할머니가 되었다.

그렇듯 조그만 아기들이 한 달이 되니 점점 빵빵해지면서 젖 달라고 앙앙 울어대는 것을 보면 여간 귀여운 것이 아니다.  두 아기들의 귀는 꼭 아빠를 닮았으나 대체로 엄마를 많이 닮았고 나와 비슷한 점도 눈에 띄어 사랑스럽다.

사 위는 변호사 컨설팅 일도 한다.  병원일이 끝나 집에 오면 로펌에서 보낸 무거운 서류박스를 들고 방으로 들어와 밤 늦도록 열심히 일한다.  나를 쳐다보며 내니에게 줄 돈은 되겠다며 농담도 한다.  그도 올 여름이면 그렇듯 길고 길었던 레지던트 생활이 끝나게 된다.

큰 딸도 둘째 딸보다 늦게 한국인과 결혼해 맨해튼에서 살고 있다.  동생의 딸들을 보며 자신도 올해엔 아이를 가져야겠다고 한다.  이래저래 한 세대는 가고 새로운 세대로 교체되는 것 같다.   정말 빠르게 세월이 간다.  흐르는 세월을 누가 막을수 있을런가?

아 세월이여!
2008/01/15
윤명희
 


448 total views, 1 views to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