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밖엔 훨씬 차가워진 바람으로 남은 낙엽들이 어지럽게 흩날린다.   집 앞 마당엔 이곳에 오기 전부터  족히 수십년은 그렇게 버티고 있었을 한 고목이 묵묵히 서 있다.   처음 이곳에 이사왔을 때에는 지나치게 커서 온통 마당 한쪽을 다 덮고 있는 것같아  그 나무가 없었으면 했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사정없이 내려쪼이는 한 여름 숨 막힐 듯한 더위를 식혀주기도 하고 가을이면 황홀한 황금색으로 집 앞을 수놓기도 해서 이젠 정이 들었다.  그리고 겨울엔 모든 잎들이 사라진 앙상한 가지 사이로 따스한 석양의 붉은 황금햇살이 여과되어 창문을 정답게 두드리기기도 한다.  변덕스러운 가을 갑자기 찾아 온 영하의 기온으로 잎들이 그만 얼어버리면 볼품없이 쭈그러든 낙엽들이  초라해진 채 바닥에 나뒹근다.

올해는 적당한 비와 따뜻한 날씨로 서서히 물들어 붉고 노란 낙엽들이 눈을 황홀하게 한다.   집 앞의 고목도 위아래가 온통 황금으로 뒤덮힌 듯 가지 끝에 남은 화사한 잎새들과  아직 푸른 잔디위에 수북히 내려 앉은 낙엽들이 황금색 저녁노을을 배경삼아 눈부시게 반사되면 창가에 앉은 나의 마음을 잠시 온통 황금빛으로 행복하게 어지럽힌다.  그러나 그것도 빨리 지나가는 순간일 뿐 금새 주위가 차가운 어두움에 깔려 컴컴해지고 만다.

로마제국시대의 평균수명은 25세 였고 프랑스혁명 시절엔 34세였다고 한다.  1900년 인간의 평균수명이 36살이였고 19세기 말엔 45세 였다고 한다.  그토록 불로장생을 꿈꾸던 진시황제도 49세에 죽었다.  한국의 1930년대는 평균수명이 31세에 불과했다고 한다.

예전엔 학(40~50년), 사슴(35년), 대나무(60년) 같은 십장생(十長生)을 장수의 상징으로 보았고 그 문안들이 선물도안이나 가재도구, 침구류에 많이 새겨져 있었는데 이제는 십장생보다 더 오래살게되어 언제부터인가 차츰 그 모습이 사라져가는 것같다.

1900년 평균수명이 36살이었는데 2000년에는 80살로 2배 이상 늘어났으니 향후 100년 후엔 200세도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것같다.  실제로 인간 게놈 프로젝트 연구성과로 2050년이면 평균수명이 150살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미 2004년도에  “몇 살부터 노인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70세 이상이라는 응답이 25%로 제일 많았고, 65세 이상이 24%, 60세 이상이 19%, 75세 이상이라는 사람도 17%였던 것을 보면 지금은 그보다 훨씬 높을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 한국의 평균 수명이 남자 75.1세, 여자 81.9세인 점을 감안하면 75세 이상부터 노인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크게 무리가 되지 않을런지 모르겠다.  요즘 65세는 청춘이다.  65세는 인생을 정리할 단계가 아니고 건강 100세를 위한 설계가 필요할 나이이다.

옛 날에는 사람들이 그냥 정신없이 살다  일찍 이 세상을 하직했으나 지금은 살아온 생만큼 더 되는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에 더욱 신중하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단순히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는 평균수명보다 얼마나 건강하게 활동하며 살았느냐는 건강수명이 더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얼마나 의미있게 살았느냐는 정신수명인 것 같다.  늙어가면서 아둥바둥 움켜쥐고 자신 속에 갖혀서 혼자 잘났고 정신차리지 않으면 당한다고  발발 떨면서 자신의 정욕대로 추하게 살지 말아야 한다.

어 떤 사람들에겐 물질의 풍요가 축복일 수 있으나  어떤 사람들에겐 저주로 보인다.   내가 알던 어떤 사람들도 가난할 때엔 소망도 있었고 겸손하기도 하였으나  갑자기 넘치는 물질로 인해 인생이 크게 망가지는 것을 보았다.  그들에게 물질이 없었더라면 차라리 자신을 들여다 볼 기회라도 있었으련만 이젠 그런 기회마저 상실한 것 같다.

길가에 뒹구는 아름다운 낙엽을 보며 인생의 소프트 랜딩을 생각해 본다.  결국 모든 잎들은 진다.   그러나 추하게 오그라들어 바삭거리는 낙엽보다  아름다움을 발하며 마지막 심지까지 다 타버리는 촛불처럼 우아하게 지는 낙엽이 되고 싶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말처럼 열정을 잃지 않고 사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  꿈과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살다가 죽음을 억울해하지 않고 자연에 순응하면서 두 손을 펴고 조용히 가고 싶다.

그렇듯 눈부시게 아름다운 낙엽이 되어 깃털보다 더 사뿐히 내려앉고 싶다.

2007/11/24윤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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