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4월은 또 다시 캠퍼스를 피로 물들였다.

지난 16일 오전에 알게 된 뜻밖의 충격적인 사건으로 그저 그 자리에서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돌처럼 굳어져버렸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그런 정신분열 증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 것이고 이 철딱서니 없는 아들이 곧 내 아들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대학에 재학 중인 아들에게 곧바로 전화했더니 받지 않았고 저녁 11시가 되어서야  연락이 왔다. 오히려 엄마를 위로했다.

맨하튼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첫 딸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어떻게 그런 일이… 하면서 빠쁜 업무로 되돌아가 몇마디 말도 주고받지 못했다.  대학에서 의학을 가르치고 있는 둘째 딸에게 전화했더니 첫마디가  “엄마 , 부모가 그렇게 열심히 일해서 대학에 보냈는데 부모 생각하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라며 깊은 한숨을 쉰다.  그곳은 한국사람이 별로 없어 조용한 것 같다고 했다.

그 날만 해도 누가 그랬는지 확실치 않더니 다음 날 시시각각 들려오는 소식에 범인이 조승희이며 한국에서 8살때 이민온 영주권자라는데 온 몸이 얼어붙는 듯 했다.  더구나 같은 학교 재학중인 영문과 4학년 학생이었다니 뒤통수를 둔기로 심하게 얻어맞은 것 같이 뒷골이 뻐근해지며 통증이 왔다.

언제나 외톨이였으며 항상 얼굴을 숙이고 눈을 마주치기를 거절했다.  물음의 대답조차 거부하고  자기자신에 대해 물음표를 던지면서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상태에서 극도로 자신을 숨기며 살아왔다.  그가 왜 이렇듯 겁에 질린채 공포에 떨어야 했을까?.  억수같이 쏟아지는 뉴스에 조승희의 아픔들이 낱낱이 까발려지면서 한 사람으로 인한 수많은 희생에 놀라고 아린 가슴을 쓰러내리며 나는 얼마나 울고 또 울었는지 모른다.

그는 그의 팔에 붉은 잉크로 새겨진 ‘Ismail Ax’라는 단어로 그가 남긴 글에 싸인을 했으며 그 글에는 “오사마처럼 내 인생에 9-11 테러를 저지르고…”  라고 썼다고 한다.  나는 그 대목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무언가 머리 속에 번뜻 스쳐지나가는 것 같았다.  아하 ~  그새 가졌던 의문의 감정이 풀리는 듯 했다.

지난 4월 4일 맨하튼에서 만나는 친구들의 모임을 준비하면서 3월 한달 내내 이유도 없이 알 수 없는 죽음이 무겁게 나의 마음을 짓눌러 옴을 느꼈다.  왜 그렇게 유난히 죽음이라는 화두가 계속 머리 속에 맴돌았는지?  왜 9-11 사건이 자꾸 연상이 되었는지?.  그래서 우리의 모임을 위해 진정한 삶에 대한 대화를 하기 원했고 그 주제를 위해 글을 썼으며 몇 년전 9-11 테러사건 직후에 썼던 ‘인생의 의미’란 글을 찾아내어 카피해서 모임에 가져가기도 했다.

참석했던 친구들에게 새 글과 함께 나누어 주면서 난 그저 삼사 년 지난 줄 알았는데 9-11 테러가 2001년에 일어났는지 몰랐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가  언제 죽을런지 모르는데 겉치레가 아닌 진정한 삶을 살아야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느닷없이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했더니 며칠 후 한 친구가 전화를 다 했다.  윤명희씨 혹시 어디 아픈데가 있느냐고…

나는 이 사건을 접하면서 스캇 펙의 <거짓의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는 지금이야말로 정신 의학이 악한 사람들을 포함시킬 수 있는 새롭고도 구별된 성격 장애 유형을 인식해야 할 때라면서 이 유형에는 일반적인 성격 장애 질환의 공동 특징인 책임 기피와 아울러 다음과 같은 특징들이 나타난다고 했다.

(1) 파괴적인 행동, 희생양 찾기(책임 전가) 행동이 일관성 있게 나타나며 그 양상은 대개 아주 미묘하다.

(2) 비난이나 그 밖의 형태의 나르시시즘적 상처들을 지나치리만큼 못 견뎌하는데 대개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3) 사람들 앞에서의 자기 이미지와 사람들이 자기를 존중해 주는가에 대하여 유별난 관심을 갖고 있다.  이로 인하여 생활 양식이 견고해진다는 장점은 있으나, 동시에 그것은 증오나 복수심을 부정하게 하고 위선의 정도를 심하게 만든다.

(4) 지적인 속임수를 자꾸 쓰게 됨에 따라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가벼운 정신 분열증적 장애와 같은 모습이 점점 많이 나타난다.

남자의 내면에는 선천적으로 감정을 억압하는 성향이 존재해서 지적인 추상 작용을 할 때 편안함을 느끼고 인격적인 관계에서는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때문에  대부분의 남자들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인격적 관계에는 익숙하지 않다.   그리고 대체로 대화와 변론을 혼동해서 논쟁이 생기면  상대방을 설득하려 들지 진정한 대화로 이해하려 들지 않기 때문에 한층 더 외로워져서 자신이 이해받고자 하는 주관적 욕구가 더욱 강해진다.

의학의 발달로 많은 질병들이 치료되지만 사랑의 결핍으로 오는 신경성 질환들은 늘어나기만 한다.  어느 정도의 물질은 축적할 수 있으나 삶의 질은 저하되고 있다.  삶의 질은 감성의 질서에 속하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인격적 감정을 가졌지만  남자들은 이런 감정의 은폐로 타인과 관계를 잘 맺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소외감과 좌절을 느끼고 폭력적으로 변하기 쉽다.

조승희는 초등학교 때부터 벌써 성격 이상 징후를 보였다고 한다.  그 말은 가정에서 충분한 정서적인 지원을 받지 못한 탓일 수도 있다.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그가 가정이나 학교 또는 교회에서 얼마나 비인격적이 될 수 있었는지 그 아픔을 아무도 몰라주었던 것 같다.  고립된 채 인격 감각의 부족으로 계속 상처를 받아 서서히 형성되어 온 결과일 수 있다.  누군가가 그에게 귀 귀울여 주고 한 사람의 온전한 인격체로 대해주었어야 한다.

내 자식이었다면 나는 이렇게 했을 것이다.  정말 돈이 없어도 미국에서는 굶어 죽을 일이 없다.  만사 제쳐놓고 아들 옆에 있어주고 맛있는 것도 같이 먹으면서 네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아느냐고 끊임 없이 확인시켜줄 것이다.  농촌에 내려가서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방학 때에라도 극도의 가난과 영향 실조로 어린 아이들의 눈과 귀에서 구더기가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는 남미나 아프리카 선교라도 보낼 것이다.

그리고 농가에 가서 봉사하면서 짐승들을 돌보는 일을 시킬 것이다.  심한 자폐증 아이들이 짐승들과 어울리면서 말문을 열었고 그들의 인생이 바뀌게 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집에 강아지라도 데려와 돌보게 해서 자신의 책임감과 무조건적인 사랑을 체험하게 했을 것이다.

심리적이고 영적인 힘을 갖춘 사람만이 그를 도울 수 있을 것이다.  끝까지 그런 분을 찾아 아들을 부탁하였을 것이다.  그러면 이 세상을 더 이해하고 자기자신과 더 평화로워졌을런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일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한번뿐인 인생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2007/04/26
윤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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