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여름내내 밖에 내어놓았던 오렌지나무를 안으로 들여다 놓았다. 새로운 굵은 가지가 위로 싱싱하게 뻗어올라 하늘을 가리울 듯 하더니 급기야 제 무게에 못이겨 옆으로 팔을 떨구어버렸다.
화 분에다 온갖 먹고 남은 차 찌거기들과 음료수들을 부어주었더니 전에 잎들보다 배 정도는 더 커져버려서 얼마나 깜짝 놀랐던지. 몇 년전 집 주위에 있는 화원에 우연이 갔다가 각종 예쁜 꽃들과 나무들 사이에 우두커니 서있는 한 나무가 나의 시선을 끌었다.
오 래 전부터 좋아하던 오렌지나무였다. 그 나무를 사다가 집에 들여 놓고 오렌지꽃이 활짝 필 적마다 얼마나 행복했던지. 갑자기 밤 사이에 추워진 날씨로 인해 나무가 얼어버리면 어쩌나 싶어서 무거워 쳐진 새 가지들을 보기좋게 자르고 좀 더 큰 화분에 옮겨 심었다.
너무 큰 화분에 심었다고 움직이기 힘들겠다는 엄마의 말도 들은 척 하지않고 혼자 한 쪽을 들어올리려다 그만 허리를 다치고 말았다. 너무 아파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참고 덴에서 TV를 보던 엄마를 목청껏 불러댔다. 빨리와서 나 좀 도와달라고. 그렇게 무거운 것을 어떻게 혼자 움직이려 했냐고 혀를 차며 들어주어 겨우 부엌 뒷곁 안에다 들여다 놓았다.
며칠이 지나 휴일로 집을 찾은 막내 아들과 마침 집에 있던 남편보고 아래 덴에다 옮겨달라고 해서 창가 따뜻한 햇빛이 비치는 자리에 놓을 수 있었다.
아픈 허리는 우여곡절 끝에 며칠 안되어서 말끔히 고쳐졌다.
아 침에 일어나면 자동적으로 창가에 가서 오렌지나무를 들여다 보고 창밖을 쳐다본다. 한가할 때에는 주위의 의자를 끌어다 앉고선 커다란 화분 위에 발을 얹어놓고 편안한 자세로 차를 마시며 신문이나 책을 읽는다. 나에게 그런 시간이 그렇게 귀할 수가 없다.
오 렌지나무가 화분 속에 가두어져서 답답하기도 할텐데 너무 잘 자라주어 고맙기만 하다. 이 나무가 플로리다의 비옥한 땅이나 따뜻한 스페인 남부에 심겨졌더라면 얼마나 훌륭한 나무로 자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 측은한 생각도 든다.
나의 오렌지나무는 일년에 한두 차례 꽃을 피워 황홀한 향기를 흩날리다가 열매를 맺는다. 어떤 해는 몇개의 열매도 열리기도 하지만 올해엔 몹시 부는 비바람에 겨우 한 개만 달랑 살아남았다.
올초에 달렸던 작은 오렌지는 여름내 정열을 품고 지내다 가을에 황금빛을 내며 사랑스럽고 탐스럽게 자라났다. 올 여름에 달린 작고 푸른 오렌지는 내년을 바라보며 조금씩 자라고 있다.
녹색 테이프로 바침목에 동여매어진 나무줄기를 보며 묶여진 것이 없으면 얼마나 자유스러울까마는 무거운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는 아직은 곧게 뻗기에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자란 황금빛 열매 옆에 더 자라야 하는 조그만 푸른 열매들이 앙징스레 달려있다. 이제 무르익은 오렌지는 따야 할 시간이 다가온 것 같다.
나는 과연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 것일까?
12/05/2005
윤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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