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 전 776년에 첫번째 올림픽이 열렸던 역사의 현장 그리스에 올림픽의 횃불이 다시 밝았다. 고대 올림피아에서 점화된 횃불이 역사상 처음으로 남미와 아프리카를 포함해 다섯개의 오륜기가 상징하는 다섯개 대륙을 모두 거쳐 다시 그리스에 도착된 것이다.
아테네 올림픽 주 경기장에서 점화식을 가짐으로써 지난 13일부터 29일까지 전세계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열전에 돌입했다.
이번 올림픽은 사상 처음으로 전 세계 202개 IOC 회원국이 모두 참가하는 첫 대회여서 더욱 의미가 크다. 모토는 ‘인간 본위의 올림픽(Human Style Olympic)’. 개막식전 행사에서 올림픽 본고장답게 그리스 신화에서 현재에 이르는 긴 역사의 줄기를 한눈에 보여주며 서막을 장식했다.
2000여 개의 섬으로 이뤄진 그리스는 물로 상징되는 대표적인 나라이다. 물로 채워진 스타디움의 중앙무대 장치는 그리스의 전통적인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반신반마의 짐승같은 켄다우로스는 파괴력을 의미하며 문명화된 그리스의 질서와 신성을 위협하는 존재로 묘사되기도 한다.
사랑의 신 에로스는 보통 통통하고 예쁘장한 남자 아이로 귀엽게 묘사된다. 그러나 이 날 화려한 경기장의 창공을 수놓은 에로스는 올림픽 정신을 상징하듯 건장한 젊은이로 표현됐다. 앙징맞은 활과 화살을 들고 어깨엔 날개가 달린 어린 아이의 모습이었던 에로스는 프시케를 만난 후 사랑에 눈을 뜬 성인의 모습으로 표현된 것이다.
그리스 나라 전체가 그리스 신화가 살아 숨쉬는 역사의 현장으로 이 모든 줄거리를 잘 구성해서 개막식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천하의 바람둥이 제우스가 황소로 둔갑하여 페니키아의 공주였던 에우로페(Europe)를 납치하여 사랑을 나누었다는 전설이 깃든 크레타 섬, 유럽(Europe)문명이 태동한 미노스 문명을 필두로 아가멤논의 황금 마스크가 장식된 미케네문명. 고대 올림픽 게임의 발상지와 대리석 조각상들이 즐비한 파르테논 신전, 승리의 여신을 든 아테네 여신상이 있는 그리스 고전문명, 그리고 로마와 비잔틴문명, 모든 것이 살아있는 고도의 예술품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특히 크레테 박물관에서 보았던 양손에 뱀을 든 여사제의 복제는 놀랍도록 완벽한 모습이었다.
지난 해 그리스에 갔을 때 기억에 남는 곳은 출산장려 정책으로 조성된 주택단지들이다. 그리스는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아이를 낳으면 집을 지어주며 아테네 주변에 이들을 위한 단지를 만들어놓고 있다. 아이를 끔찍이 낳지 않으려는 요즘 젊은이들을 격려하기 위한 고육지책인 것이다.
그리스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바다로 둘러쌓인 반도국이다. 오랫동안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았으며 2차대전이 끝난 후 공산화의 위협을 받았으나 우방국의 도움으로 3년간의 내전 끝에 민주체재를 갖추게 되었다.
민주주의 과정에서 50만명의 사상자를 내는 전쟁을 치루기도 했다. 1967년부터 7년동안 군사정권이 장악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민주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현재는 신민주당이 집권하고 있으며 공산당도 합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테네를 돌아다니면 공산당 모임을 알리는 여러 현수막이 보여 이색적이다. 공산당은 대략 5%로 추산되고 있다.
인구 1천만명인 그리스는 1981년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한 후 독일. 프랑스 등 부강한 나라의 원조를 받았었다. 하지만 지난 5월 폴란드나 헝가리 등 비교적 가난한 동구권의 가입으로 예전의 혜택을 더 이상 받을 수 없게 됐다.
1998년 그리스를 방문했을 때 신약시대에도 썼던 드라크마 화폐를 여전히 쓰고 있었고 달러가치가 높게 느껴졌지만 최근 유로화로 바뀌면서 화폐 경쟁력이 떨어져 물가가 많이 달라져있었다. 가격이 저렴한 맛에 가곤 했던 여행자들의 발길을 돌려놓아서 경기가 많이 침체되어 보였다. 그 곳에서 만나는 상인들마다 도대체 손님이 없다며 하소연하기 바빴다.
2004년 올림픽이 작은 사고없이 성공적으로 치뤄지길 기원한다. TV를 통해 올림픽 중계를 볼 때마다 수준높은 삼성광고가 비춰질 때마다 무척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미국에서 살다보니 짚신장사하는 아들과 우산장사하는 아들을 둔 어머니가 된 기분이다.
미국이 이겨도 기쁘고 한국이 이겨도 기뻐서 기쁨이 배가 되는 것같다.
2004/08/16
윤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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