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루하루 늙어가고 또한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 씨앗을 감싼 과일처럼 육체는 죽음을 품고 태어난다. 늙어간다는 것은 우리가 앞으로 살 날들이 살아 온 날들보다 짧음을 의미한다. 그러다 존재하는 것조차 어려움을 느낄 때 이 세상을 하직하게 된다. 이것이 우리의 운명이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영원한 젊음이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늙는다는 것은 타인에게나 일어나는 일이지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객관적 현상으로 받아들이기를 원하지만 우리가 어릴 때 늙었다고 생각했던 그런 나이에 어느덧 자신이 와 있음을 깨닫고 움찔 놀라기도 한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는 18세기 이탈리아 화가 폼페오 바토니(Pompeo Batoni, 1708~1787)의 그림이 걸려있다. 그리스 신화를 소재로 한 것으로 오른 손엔 모래시계를 들고, 시간의 신 크로노스가 눈부시게 싱그러운 여인에게 왼손을 내밀고 앉아 있다. 그 뒤에 약간 구부리고 있는 노파는 크로노스의 지시대로 젊고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에 그녀의 손을 갖다 대려하고 여인은 거부하듯 살짝 옆으로 얼굴을 돌리고 서있는 ‘시간이 노년에게 미를 파괴하라 명한다’라는 그림이다. 시간의 흐름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육체 는 36세를 정점으로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한다고 한다. 노화로 인해 피부는 자연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면서 지하를 향해 처지게 되고 신체에도 변화가 생겨 어깨 넓이는 줄어들고 골반 넓이는 늘어나서 골격도 변한다. 45세에서 85세 사이의 남자 상체는 10cm, 여자의 상체는 15cm나 줄어든다고 한다. 아마 청춘시절에 늙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한 거울 속에 나란히 볼 수 있다면 너무 놀라서 절망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불 위에 얹혀진 냄비안 찬 물속 개구리처럼 너무 서서히 진행되어 자신만 느끼지 못할 뿐이다. 그러나 빠른 세월을 깨닫는 순간 어느새 늙음이 먼저 와 기다린다.
늙음에 있어 여자들은 더욱 불리해 보인다. 셰익스피어의 맥배드에서 퀘퀘하고 음흉스러운 마녀들을 보라. 전부 늙고 기괴하고 추한 여자들이다. 마남(魔男)이라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다. 007영화 시리즈에서만도 남자주인공들은 늙어도 여전히 매력이 넘치고 우아하다고 느끼는 반면 여자주인공들은 매번 바뀌어 완벽한 젊음을 가진 여자들만 등장한다. 온갖 상업적 광고엔 젊어질 수 있는 비결만 부추기어 늙음이란 흉물스럽고 가치없는 저주로 들리기까지 한다.
평소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는 나이가 퍽 많은 여자분이 갑자기 젊음을 되찿은 듯한 외모로 바뀐 것을 보았다. 몇 만달러에 몸이 매끈해진다. 얼굴은 보톡스 주사로 팽팽해진다. 그러나 그게 얼마나 오래 유지 되겠는가? 무너져 내리는 육체는 한번 꺾였다 하면 걷잡을 수 없이 내리 달린다. 물론 각자 삶의 무게에 따라 속도는 다를 것이다. 긍정적이고 활동적이며 늙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집착하지 않는 사람들은 포기한만큼 내려가는 가속도가 덜할 것이다.
젊을 땐 화장기 없는 맨 얼굴이나 엷은 화장만으로도 싱싱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그러나 40세부터는 자신의 얼굴을 책임지라고 한다 윤기는 잃어가고 늘어만 가는 주름을 감추려 간혹 화장이 지나친 얼굴들을 보면 마치 무도회의 가면을 뒤집어쓰고 있는 것 같아 곧 닥칠 우리 자화상을 보는 것 같다. 늙는 현실을 외면하고 싶지만 우리의 진실된 모습은 남들에게 보여지는 나의 모습이다.
어떻게 하면 나이를 먹지 않는 것 같이 살면서 늙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가장 추하게 늙는 것은 ‘자신에게서 떨어져 나가는 것을 악착같이 붙들려고 하는 일’이다. 자신이 늙는다는 사실을 체념하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분노와 증오로 뭉쳐있다면 주위 사람들도 힘들고 그 자신도 비참할 수 밖에 없다. 낡은 축음기처럼 옛날 이야기만 되풀이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박탈 당했다고 느끼면 느낄수록 인생은 더 고독하게 된다.
나이들어 가면서 마더 테레사처럼 남을 위해 자신을 불태우는 이타형이 있고, 신문, 책, 잡지나 TV를 통해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가지며, 기도와 명상으로 마음을 가꾸고, 끊임없이 배우는 성장형이 있고, 넓어진 얼굴에 푸근한 마음으로 주위를 편하게 하는 부뚜막형이 있고, 마당발로 계나 모임을 주선하고 바쁘게 나돌아 다니는 뚜쟁이형이 있고, 낡고 검붉은 커튼 사이로 두리번거리는 늙은 창녀처럼 끊임없는 환상에 사로잡힌 쾌락형이 있다.
탈무드에 있듯이 ‘정욕의 노예가 되는 것은 노예 중에서도 가장 천한 노예가 되는 일’이다. 인생의 겨울이 닥쳐와도 버리는 때를 알지 못해 자신을 비우지 못하고 남의 불행을 오히려 즐기고 베풀지 않아 노욕으로 가득찬 채 발버둥치는 추한 모습은 보이지 말아야 한다.
세상엔 겨울이 오면 곧 봄도 오지만 인생의 겨울은 한번 가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다.
어차피 스쳐지나가는 덧없는 나그네 인생인데 집착과 집념을 놓아버리고 더 넓은 정신세계로 나아가 홀로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
2004/02/23
윤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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