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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독이며 배우이고 오스카상을 수상한 호주출신 미국인 멜 깁슨(Mel Gibson)이 제작과 감독을 한 ‘그리스도의 수난(The Passion of the Christ)’이 오는 2월 25일 ‘재의 수요일 (Ash Wednesday)’에 미국과 캐나다에서 일제히 개봉 될 예정이다. 미국에서만 2천여개의 영화관에서 상영될 것이라고 하며, 예수 당시에 사용되었던 고대 라틴어와 아람어로만 만들어져서 여지껏 만들어진 영화로 봐서는 매우 이례적이라고 한다. 이 영화는 반유대적이라며 극장에서 개봉되기 8개월 전 이미 극렬한 논쟁이 있었다.
유대인들의 영향력을 무시 못하는 미국에서 강한 반대에 부디치기도 했으나, 작가이며 정통파 유대인인 데이비드 클링호퍼(David Klinghoffer)는 “우리는 유대주의와 진리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있지만, 공식적 제재를 받고 적당히 삭제한 유대주의나 진실은 원치 않는다”며 깁슨을 옹호하기도 했다. 작 년 5월말에 한 가톨릭 대주교가 덴버 가톨릭지에 깁슨의 영화를 옹호하는 컬럼을 썼는데 ‘모든 사람들은 완성되기도 전 이 영화의 진실한 믿음을 마구 공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본데, 15년 전 말썽이 많았던 예수의 마지막 유혹(The Last Temptation of Christ)을 상영할 때 영화평론가들은 몹시 불쾌히 여겼던 가톨릭 신자들에게 너그럽고 인내심이 있어야 한다고 훈계하지 않았느냐’며 이러한 충고는 ‘누구에게나 균등히 적용되어야 한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깁슨은 신비가(神秘家)인 안나 카타리나 에메리히(Anna Katharina Emmerich) 수녀의 이야기를 서술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쓰디쓴 수난 (The Bitter Passion of Our Lord Jesus Christ)’에서 부분적으로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1774년 9월 8일 독일의 한 가난한 농장에서 태어난 안나 카타리나 에메리히 수녀는 4살 때 이미 구원역사에 대한 환상을 보게 되었으며 1813년부터는 병으로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1824년 2월 9일 숨을 거둘 때까지 그녀가 지닌 예수 수난의 성흔과 그녀가 받은 신비한 성령의 은사로 침상에서 수많은 방문자들을 위로하였다. 독 일작가였던 클레멘스 브렌타노(Clemens Brentano)는 1818년부터 그녀가 숨을 거두었던 1824년까지 하루 두 차례 방문하여 그녀가 쓴 기록들을 베껴 적었으며 안나가 세상을 떠난 후 그녀가 보았던 수많은 환상들을 정리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쓰디쓴 수난’이라는 책을 발간하여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터키의 에베소에 있는 성모 마리아의 집도 나중에 그녀의 정확한 환상을 쫓아 찾아낸 곳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의 수난’에서는 이미 사어가 된 고대 라틴어와 아람어만을 썼다는데 처음엔 대사 자막이 없이 시각적 이야기 전개를 시도하여 언어의 장벽을 없애려고 하였다가 후에 자막을 넣기로 했다고 한다. 라틴어(Latin)는 고대 로마어로 로마의 세력이 확장되면서 자연스럽게 보급되었다. 라틴어는 인도 유럽어에 속하고 산스크리트, 그리스어, 독일어 그리고 켈틱어와 같은 어과에 속하며 18세기까지 학자들과 외교관들이 썼던 언어였으며 20세기 말까지도 로마 가톨릭 성례식문으로 사용되었다. 셈어족의 원형인 아람어(Aramic)는 수천 년 전부터 소아시아, 시리아, 메소포타미아의 일대에서 사용된 언어로 예수가 사용했던 언어이고 그의 제자들을 가르쳤던 언어이고 성인(聖人)들의 언어이다. 주기도문과 구약의 다니엘서가 아람어로 쓰여졌으며 기독교 시대에는 아람어가 시리아어로 일컬어졌었다. 일 년 전 시리아에 갔을 때 다마스커스에서 북쪽으로 57Km 떨어진 곳에 마아룰라(Maaloula)라는 작은 산간마을을 갈 기회가 있었다. 마아룰라라는 뜻은 아람어로 입구라는 말이라고 한다. 기독교 지역이기도 한 이곳은 역사상 아주 오래된 언어인 아람어를 지금도 사용해오고 있는 곳이다. 이슬람 종교가 들어오기 오래 전부터 사용했던 언어이므로 시리아의 마아룰라, 자바딘 그리고 바카 이 세 지역은 대대로 내려온 아람어를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마이룰라에 있는 한 교회를 방문했을 때 방문자들을 위해 한 소녀가 주기도문을 아람어로 낭랑하게 읽어주었다. 오래 전 공대를 다니던 오빠의 말이 생각났다. “미래에 과학의 발달로 빛보다 빠른 것이 발견될 때엔 우주 어딘가에 지금도 흘러가고 있을 예수 음성의 파장을 쫓아가 잡을 수 있어서 산상수훈을 우리가 직접 들을 수 있을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아람어를 직접 보고 들었던 그 때의 감회는 무어라 형용할 수 없었다. 자신을 보수적 가톨릭 신자로 평하는 깁슨은 교황제도를 반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예수를 죽인 자들로 부각되기를 꺼리는 유대인들의 강한 반발에 대해 깁슨은 “이 영화는 남을 공격하기 위함이 아니고 영감을 불어넣어주기 위함이다”라고 했다. 겟세마네 동산의 괴로움으로 시작해서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을 끝으로 예수의 마지막 12시간을 묘사한 이 영화는 세개의 못과 십자가로 만들어진 압축된 이야기 전개가 될 것이다. 평소 영화관에 별로 가는 편은 아니지만 벌써 이 ‘그리스도의 수난’이 기다려진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열심으로 예수보다 먼저 달려가 열정적으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지나 않은지 모르겠다. 혼돈의 시대에 믿음, 소망, 사랑 그리고 용서에 대한 메시지로 닫힌 마음들이 열려 우리 자신의 열정이 아닌 예수의 열정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왜 예수가 이 일을 다 이루어야만 했는지, 우리의 교만이 얼마나 높은지, 우리 자신을 들여다 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2004/01/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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