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 이용당했어.”와 “나, 사기당했다.”는 말이 새해 벽두부터 영 마음에 걸린다.
전부터 알던 사람이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고 한다. 그녀는 가게를 새로 시작한다는 주인 여자로부터 모든 일을 맡기겠으니 도와달라는 말을 믿고 자신의 오랜 경험을 살려 헌신적으로 일을 해주었다고 한다. 일을 부탁한 주인 부부는 교회에 열심이었다고 한다. 주인 여자는 자신이 10년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새벽기도를 해왔으며, 남편은 그런 아내 덕분에 축복받아 부유하게 됐다며 아내를 치켜세워 그들에 대해 존경심마저 생겼었다는 것이다. 어느 날 저녁 주인 여자가 수요예배에 간다고 하길래 자기를 위해서도 기도 좀 해달라고 했더니 내 기도도 하기 바쁜데 남의 기도할 시간이 어디 있겠느냐며 총총이 나가버리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가게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게 되자 느닷없이 내일부터 그만 두라는 것이었다. 너무 갑자기 듣는 말이라 연말까지 며칠 안 남았으니 그 때까지만이라도 일하게 해달라고 사정하고 그 때까지 일한 값은 받지 않겠다고 했으나 그 날로 그만두게 되어 춥고 어두운 밖에서 서러움에 한참 울었다고 한다. 요즈음 같이 어려운 때에 직장을 잃어 상심해 할 어린 아들이 눈에 밟혔다는 것이다. 그러나 겉으론 아닌 척 하면서 남을 이용해 그를 교묘하게 내쫓은 것과 그런 일이 한두번이 아닌 것을 나중에 알고, 해도 너무했다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요즈음도 계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지 다른 한 사람은 계로 인해 물질적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계주도 그 입에서 항상 하나님이 떠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한다. 계주가 유령인물들을 넣어 앞서 여러 번째 타먹고 그 계를 깨버렸다는 것이다. 그 계주도 입에서 항상 하나님이 떠나지 않던 사람이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처음 그를 보았을 때 “주여~”하며 하도 성스럽게 기도하고, 말 끝마다 하나님을 찾아 깜빡 속았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너무 기가 막히더라는 이야기를 한다.
어떤 사람은 교회의 사모에게 심한 언사를 듣고 따로 조용히 만나서 그 말로 인해 자신이 얼마나 상처를 받았는지 모른다고 했더니 공개적으로 “내가 무슨 잘못을 했냐”며 목소리를 높이면서 오히려 자기가 상대방을 위해 얼마나 좋게 이야기하고 다니는지 아느냐는 말에 열 받았는데 나중엔 남편에게까지 일러바쳐 부부싸움까지 났었다고 한다. 맘이 상한 그녀는 말을 하면 일이 더 커질 것 같아 아예 침묵을 하니 교만해서 그런다는 말까지 들었다고 한다.
크리스챤들이 교회 안 행동과 교회 밖 행동이 달라 신앙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빈수레처럼 요란하여 하나님은 믿어도 교회는 믿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교회에서는 사랑을 말하면서 행위는 전혀 본 받을 것이 없을 때 사람들은 실망하여 그 자리를 떠나게 된다. 기독교가 모든 종교보다 우월하다고 말할 자격이 있는가?. 안 믿는 자들에게도 칭찬을 받아야 한다고 했는데 안 믿는 사람은 커녕 믿는 사람끼리도 믿을 수 없으면 어쩌란 말인가.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하며 질투하지 않고 자랑하지 않으며 잘난 체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버릇없이 행동하지 않고 이기적이거나 성내지 않으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딥니다.’라고 성경은 말한다.
교회는 건물을 가리키는 예배당이 아니라 진실된 약속과 하나님의 비밀을 가지고 있는 정직한 사람들의 모임이어야 하는데 하나님은 오직 예배당에만 존재하는 것처럼 강조한다. 아직도 교인들에게 예배당의 강단이 제단인 듯 착각하게 하여 자신의 제단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친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써 성소의 휘장이 찢어지고 성전의 의미는 영원히 소멸되어서 다시는 구약시대처럼 매번 짐승의 피를 흘리지 않아도 되는데 아직도 기도할 적마다 우리의 제단을 부르짖는 곳도 있다.
한국의 주입식 교육을 받고 자란 탓인지 한국교회도 교인들을 주입식 훈련을 통해 한 교회의 충성당원으로 만들려고 한다. 제 교회에 충성만 하면 밖에 나가서 어떻게 하든, 타인에게 어떻게 대하든, 가정에서 어떻게 하든 상관할 바 아닌 것이다. 기복신앙의 결정체이다.
켄터키의 사우스이스트 교회의 설교협력목사인 데이빗 스톤은 “사탄은 최우선 순위의 것보다는 주변의 딴 곳에 집중하게 만든다. 일의 주인이신 주님(the Lord of work)보다 거꾸로 주의 일(work of the Lord)에 바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말씀이란 초점에서 벗어나면 교회 아닌 클럽미팅이 되고 만다”라고 했다.
현실 기독교가 비난받을 만한 일들을 그저 감추고 감싼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사실의 왜곡은 교회를 더 위선적으로 만들고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강팍하게 만든다. 분주함과 이기심으로 가득차지 않고, 어디에 있든지 내면의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세미한 영의 음성을 듣고 신령한 은혜로 살고저 묵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진정한 신앙의 힘은 죄의 은폐나 부정이 아니라 그 극복에 있다.
2004/01/13
윤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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