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어떤 모임에 참석하였다가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 볼 기회가 있었다.  서로 안부를 물어보며 그 동안 궁금한 소식들을 주고 받고 있는데 어느 여자 한 분이 먼 발치에서 잔 걸음으로 걸어와서 반색을 한다.  얼굴이 기억 날듯 말듯 누군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고민하고 있는데 그 분은 손까지 꼬옥 잡으며 흔든다.

그냥 적당히 넘어가다 나중에 탄로나는 것보다 훨씬 낫겠다 싶어 물어보았다.  “우리가 어디서 만났지요?”  “아휴, 이이 좀 봐. 점심도 같이하고 차도 같이 마셨으면서…”  그 분은 여전히 마음씨 좋은 웃음만 보낸다.  같이 차까지 마셨다고?  정말 난감했다.  “가끔 이렇게 기억력이 없어서 오해를 받아요.  성함이 어떻게 되시지요?”  H라고 대답하는 그 때에야 겨우 생각이 났다.  그나마 주위에 흔한 이름이 아니었기 망정이지 흔한 이름이었으면 어쩔까 싶었다.  “그런데 우리가 어디서 차를 마셨지요?”  이쯤되면 참아주는 것도 한계를 넘는 수위이다.  그러나 그 분은 “자주 전화를 하고 만나야겠네요” 라며 웃음을 머금은 눈빛으로 꼭잡은 손을 다시 흔들어댄다.

노령화에 따른 기억력 저하를 인지과학자들은 외부의 사물과 현상을 지각하는 능력과 기억을 담당하는 뇌부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들은 기억력 감퇴의 원인을 4가지로 나누는데 첫째로 청각이나 시각과 같은 감각과, 이 감각정보를 처리하는 능력이 저하되는 현상이라고 한다.  우리가 어릴 때 아주 맛있게 먹었던 그 맛을 장년엔 찾아 볼 수 없는 것이 한 예가 될 수 있다.  맛을 받아들이는 감각과 이 감각을 판단하는 뇌 기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둘째로 정보처리 속도가 느려지는 것이라고 한다.  젊을 때는 정보의 이해와 결정이 빠르고 머리 속에 저장된 기억을 신속히 끄집어 낼 수 있지만, 너무 노쇠해지면 그 속도가 현저히 떨어지게된다.  이렇듯 두뇌 회전속도가 느려져서 모든 일의 처리가 자동적으로 처지게 되기 때문에 조금만 복잡한 상황이 닥쳐도 그 상황을 파악하고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해 위기대처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세번째는 기억용량이 줄어드는 것이라고 한다.  마치 컴퓨터의 작업공간인 램 메모리가 줄어드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앞에 예를 들었듯이 사람의 얼굴은 기억나는데 그의 이름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 경우이다.  또한 이야기를 들어도 부분적으로만 생각이 나고 나머지는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램 메모리의 과다사용 때문에 기억용량의 부족으로 일부만 저장되고 나머지는 없어져버리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억통제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인데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정보는 기억하고 불필요한 것은 걸러내야 되는데 통제능력이 마비되어 불필요한 것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중요한 것들은 잊어버리게 된다.

막내의 이름을 부른다면서 엉뚱하게 다른 자녀들의 이름을 줄줄이 부르기도 하고 질문과 상관이 없는 엉뚱한 대답을 해대는 경우이다.  잦은 말실수나 기억실수가 일어나서 곤혹스런 상황에 처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현상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뇌에서 일어난다는데에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또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연세가 지극한 사람들이 계속되는 말실수로 주변사람들의 마음을 조마조마하게 만든다거나, 갑자기 과격한 발언으로 주위를 경악시키거나 이치에 맞지않은 논리를 주장하며 예측 불가능한 자기주장을 밀어부쳐 주위사람들을 당혹케 하는 것은 기억을 통제하고 억제하는 훈련이 필요한 경우이다.

이럴 때엔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먼저 글로 적어보거나 녹음을 해서 들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고, 주위의 사람들이 그의 돌출행동이나 언어를 계속 모니터해서 틀린 점을 고쳐나가도록 도와주는 방법도 있다.

생물학적, 심리적, 사회적인 노화에 대한 연구가 활발한데 생물학적인 노화는 여러가지 원인이 작용한다고 보고있다.  메케이는 크기 전에 먹이의 칼로리 제한으로 성장이 부진한 쥐들이 정상적으로 음식을 먹은 쥐들보다 훨씬 오래 산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렇게 적은 양분을 공급받은 쥐들 중 한 마리는 그냥 방치해 놓아 마음대로 먹게 둔 쥐들보다 거의 두 배에 이르는 수명을 기록했다고 한다.  적게 먹으면 오래산다는 것이 성립되는 것이다.

이러한 쥐에 대한 실험에 관해서 의사인 에스코피에 랑비오트은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설명을 붙였다.  “노화와 죽음은 에너지 소비의 일정한 특정 수준이나 심장의 일정 박동수와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다.  노화나 죽음은 성장과 성숙의 확정된 프로그램이 한계에 도달하게 될 때 일어나는 것이다.”  즉, 노화의 원인은 기계고장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메케이의 쥐에 대한 실험은 우리에게 인생의 가치를 어디에다 두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준다.  허황된 욕망과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워 죽을 때 가져갈 수도 없는 헛된 것을 악착같이 붙들고 늘어지지 말아야 한다.  예수의 가르침에 “먼저 자신을 부인하고 나를 따르라.” 고 한 것은 모든 문제의 핵심은 나 자신에게 있어서 그 해결은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의미일게다.  그리고 이것은 세상에서 가장 힘든 고독한 싸움이 될 것이다.

시간나는 틈을 타서 가까운 공원에 나가 푸른 하늘를 응시해 보기도 하고 더욱 짙어진 나뭇잎들의 살랑임을 보며 심호흡도 해봐야겠다.  그러다 벤치에 앉아 못 다 읽은 책을 뒤적여 보다가 발 밑에 수북히 자라난 클로버 잎들을 쓰다듬어 보기도 하고 혹 있을지도 모를 네 잎 클로버도 찾아봐야겠다.  남을 감동시킬 수 있는 웅변은 하지 못해도 네 잎 클로버를 예쁘게 그려봐야겠다.

2003/06/15
윤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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