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두려움과 공포가 지나갔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둡고 숨막히는 긴 터널을 통과하지 않아도 된 것이 그나마 불행중 다행이다.

미국은 이라크를 무력화시키고 후세인 대통령 시절 이라크 고위관리들이나 과학자들의 행방을 뒤쫓고 있다.  그 중 일부는 몰아내기도 했으나 나머지는 계속 추적하고 있다.  그러면서 전쟁중 이라크를 계속 지원했고 후세인의 추종자들의 은신처를 제공하고 있을지도 모를 시리아를 향해 테러세력을 지원하지 말 것을 경고하기도 했다.  그동안 이라크로부터 은밀히 받아쓰던 석유도 송유관을 폐쇄시킴으로써 시리아를 향해 경제적 제재를 가하기도 했다.

올해 1월과 2월사이에 중근동에 갈 기회가 있어서 몇 나라를 둘러보았었다.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커스를 본 첫 느낌은 온통 회색의 도시였다.  중동의 사막기후로 인해 대부분의 도시들이 채색되어 있는 것이 드문 것은 사실이지만 시리아에서는 사회가 더 경직되어서인지 사람들과 건물들이 전혀 생기있어 보이지 않았다.  어느 아랍국가들처럼 소수의 특권층을 제외하곤 서민들의 삶은 가난하고 고달파 보였다.

요르단에서 시리아로 들어갔는데 시리아에서는 정치에 대한 이야기나 정치인들을 비난하는 말을 하면 절대로 안된다는 심각한 경고를 받았다.  한국과는 외교관계가 없고 북한과는 형제와 같은 친근한 관계라는데 미국과 이라크와의 전운이 짙어갈 즈음이라서 만나는 사람들이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면 한국이나 캐나다에서 왔다고 둘러댔다.

시리아에서 1971년 대통령으로 당선된 하페즈 알 아사드는 2000년에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사망하여 아버지에 이어 34살된 아들 바사르가 통치권을 물려받았고 현재는 막강한 군부의 지원으로 정권을 유지하고 있다.  그의 아버지 아사드의 정치스타일이 매우 잔혹하다는 평가가 있는데 이는 특히 1982년에 하마에 있는 시아파 대사원을 점령하고 닥치는대로 죽인데 기인한다.  그때 군인들을 동원해 폭격을 가함으로써 도시를 초토화 시켰는데 그로인해 비공식적인 통계지만 1만명 내지 3만명이 죽었다고 한다.

시리아 어디를 가도 곳곳에 높다랗게 세워진 동상과 아버지-아들의 커다란 사진들이 걸려있어서 몹시 눈에 거슬렸다.  그들의 과대망상증으로 인한 눈먼 명예욕과 인위적 권력욕의 허영심을 보는 듯 해서 매우 씁쓸했다.

얼마전 바그다드 도시 한 복판에 거대하게 세워졌던 후세인 동상이 강제로 끌어내려져 철거되는 것을 온 세계가 지켜보았다.  65세 생일을 기념해 세워졌던 동상이 1년도 채 안돼 끌어 내려졌고 두려움에 떨던 사람들이 우루루 달려들어 머리부분을 질질 끌면서 신발로 때리고 올라타는 것을 보고 독재자의 허세가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온 세계가 똑똑히 보았다.  후세인 정권하엔 이런 일이 가능치도 않았겠지만 있었다면 즉시 총살감이었으리라.

수메르 속담 중 ‘왕같이 집을 지은 자는 노예같이 살고, 노예같이 집을 지은 자는 왕같이 산다’라는 말이 있다.  이라크의 사담이 거대한 저택을 수도 없이 짓고 그것도 모자라 땅속을 두더지처럼 파고 견고한 지하건물을 짓고서 장남 이외에는 자신이 그날 그날 잠자는 곳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매일 옮겨다녔고 성형수술로 자신과 같은 모호한 인물들을 여러명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또한 후세인은 자신의 거대한 동상을 계속 세우면서 일반 대중에겐 모습을 보이는 일이 드물었다고 한다.  시리아의 아사드도 거의 나타나지 않았으면서 곳곳에 거대한 자신의 동상을 수없이 세워놓았다.  이 지구상에 아직도 존재하는 몇몇 독재자들은 어쩌면 그렇게 같은 공통점을 가졌는지 모른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본성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  옛말에 ‘말타면 종 부리고 싶다’고 하듯이 덕이 없는 사람들이 권력을 거머쥐면 교만해져서 신과 동등해지고 싶어지는가 보다.

몇해 전 루마니아를 여행하면서 수도인 부쿠레슈티에서 챠우세스쿠가 지은 희고 웅장한 대리석의 어마어마한 대통령 궁을 보았다.  24년 동안 독재를 한 챠우세스쿠는 부인 엘레나와 아들 니쿠등 친족 연고자들을 국가 핵심부서의 책임자로 앉히는 등 개인숭배, 족벌체제, 세습제와 비밀경찰에 의한 주민감시로 일가 사회주위를 이루었고 북한의 김일성 주석과는 의형제를 맺었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켜 세웠던 레닌, 스탈린, 차우세스쿠 동상들도 가을의 추풍낙엽처럼 덧없이 가고 후세인의 동상도 또 그렇게 갔다.

시라아의 바사르도 요르단의 압둘라 왕이나 모로코의 모하마드 6세처럼 아랍의 새로운 젊은 지도자이다.  아버지의 전철을 밟아 왕처럼 군림할 생각을 버리고 그의 나라를 현대화해야 희망이 있다.  이라크도 미래를 바로 내다 볼 줄 아는 지도자가 나와 소수의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만 흥청망청 호의호식하는 사회가 아니라 서민들에게도 사회복지 혜택이 고루 가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즉 표현의 자유, 여행의 자유, 종교의 자유, 학문의 자유 등을 가질 때 개인도 사회도 나라도 발전할 수 있다.  억지쓰고, 떼쓰고. 협박하여 절받는 교활한 지도자가 아니라 국민들로 부터 존경받는 현명한 지도자가 나오길 바란다.

2003/05/13
윤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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