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소식이 기다려지고 반갑기만 한 고마운 분으로부터 ‘어머니’라는 글이 담긴 이메일을 받고 마음이 찡해졌다. 그렇지 않아도 주위에 어떤 분의 사연 때문에 마음이 아려와서 더욱 그런지 모르겠다.
어 떤 사연 때문에 부모가 있어도 없는 것처럼 살아야했던 그는 어머니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다가 이미 중년이 되어서도 여전히 인생을 방황하면서 굴곡 많은 삶을 살았다. 그는 아이들이 자랄 때엔 엄마는 꼭 있어야 한다며 가슴 속 깊은 상처를 눈물 글썽이며 일그러진 얼굴로 말해주는 것이었다. 엄마가 없던 빈 공간을 그 누구도 채워줄 수 없었던 외로움의 연속 뿐이었다.
주 위에 존경하는 사람들 중 한 한인여성이 있다. 뉴욕가정상담소에서 8년간이나 이사장을 맡으며 말없이 봉사하고 올해부터는 이사로 계속 봉사하는 분이다. 남편은 이미 은퇴했고 그녀도 환갑이 지나 자녀들도 다 키우고 이제 얼마 안있으면 직장도 은퇴할 나이인데 어떤 이유로 오갈데가 없어 쉘터에 보내질 수 밖에 없는 다섯 살된 한국아이를 돌보게 되었다. 그녀는 고민하다 식구들과 의논한 끝에 입양하기로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그 아이는 몇년이 흐른 지금은 얼마나 자신감이 생긴데다 똑똑한 사내아이가 되었는지 모른다. 누구를 위해 봉사한다고 자랑하지도 않고 내가 했는데 알아주지 않는다고 떠들지도 않고 이렇게 조용히 실천하는 분을 보면 아직도 세상엔 살만하고 본받을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 사람의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했는데 이보다 귀한게 있을까? 이 세상은 자연의 조화와 고귀한 사랑을 노래하는 시인이나 학자들 또는 자연 지킴이들에 의해 운영되어지기보다 불행하게도 정치나 경제 또는 행정을 맡은 사람들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세상의 현실은 현실로 받아들이되 우선 내 책임에 속한 자녀들을 무한한 사랑으로 키워야겠고 더 나아가 등붙일데 없는 사람들에게도 계산되지 않은 사랑을 전하는 것이 너무 귀하다. 사랑은 받은 자가 사랑을 할 수 있다.
이메일로 받은 ‘어머니’라는 글을 함께 나누고 싶다.
폴 란드로 가는 비행기에서였습니다. 나는 한 노부인과 나란히 앉게 됐습니다.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 부인이 낡은 수첩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보여 주었습니다. “내 딸이라우…” 너댓 살쯤 됐을까. 빛바랜 사진 속 아이를 들여다보는 부인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습니다.
사진에 얽힌 사연은 이러했습니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 극에 달했던 전시의 어느날, 부인은 우연히 밖에 나갔다가 어린 여자 아이가 아장아장 걸어 가는 것을 보게 됐다고 합니다. “아이는 바로 앞서가는 엄마를 쫓아가고 있었지요.” 그때 독일병사가 아이 엄마를 붙잡았습니다. 아이 엄마가 유대인이었던 것입니다.
“엄 마아~!!” 놀라서 소리치는 아이를 힐끗보더니 군인이 아이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당신 딸이요..?” 그 순간 아이 엄마가 부인을 똑바로 쳐다 보며 말했습니다. “아니요, 그 아이는 저 분 딸이에요!” 사태를 짐작한 부인은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아이를 번쩍 안았고, 군인은 아무 의심없이 아이 엄마를 체포해 끌고가 버렸습니다.
“엄마, 엄마! 앙앙!”. “그래, 착하지. 그래 그래.” 아이가 큰 소리로 울었지만 행여 의심을 사서 아이까지 끌려가게 될까 두려웠던 진짜 엄마는 단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단 한번도…
“아 이 엄마는 그 후 어찌 됐는지… 이 아이가 그렇게 얻은 내 딸이라우…” 사진을 든 부인의 손이 가볍게 떨렸습니다. 노부인과 내가 목적지에 닿았을때, 공항엔 어느새 다 자라 어른이 된 사진 속 그 딸이 어머니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엄마, 여기에요. 엄마 여기….”
예전에 살던 집 근처를 지날 때면 언제나 앞 마당에 심었던 작았던 두 개의 목련을 본다. 어느새 세월이 지나 훌쩍 커버려 봄이면 황홀한 미소를 보내며 수백 송이 꽃들이 너울거린다. 비록 그 집에 살던 사람은 바뀌어도 나무는 그 곳에서 깊이 뿌리를 내리고 흔들림 없이 자라고 있다.
우리가 세상을 하직할 때도 이럴 것이다. 세대는 바뀌어도 이 세상에 그대로 남는 것이 있다. 나무와 같이 아낌없이 주는 순수한 사랑이다. 그리고 사랑은 사랑을 낳는다.
2003/05/01
윤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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