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과 완전히 단절된 채 몇주간 여행을 하고 돌아와보니 책상 위에는 수북히 쌓인 편지꾸러미들이 먼지를 뒤집어 쓴 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중에는 어떤 분이 타계한 소식도 들어있었다. 이름이나 지명들은 특별히 노력을 하지 않으면 잘 기억을 못하는지라 그 이름만 읽고는 그 분의 모습과 이름이 얼른 연결되지 않았다. 그러다 그 분의 갑작스런 죽음에 충격을 받았던 지인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달아버린 그의 생애와 마지막으로 보내는 장례식에 참석하였던 경험을 듣고서 나는 잠시 혼란스러운 충격을 금치 못했다.
평소에 책도 많이 읽고 사회봉사도 남달리 앞장 섰으며 불의를 참지 못했었다. 죽기 전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들의 집들을 순례하듯 차례로 방문하기도 하고 함께 밤을 보내며 자신의 물건들을 건네주기도 했다고 한다. 사후의 일까지 완벽하리만치 꼼꼼하게 유언으로 써서 남겨놓고 치밀하게 죽음을 준비했던 것이다. 그토록 남의 일에 시시콜콜 참견하고 코치하려 들면서 왜 제 자신에 대한 해답은 정작 찾지 못하고 결국 자살을 택해야만 했을까?
현대에는 여러가지 스트레스로 우울증 환자들이 많이 양산된다고 한다. 우울증은 성인 10명중 한명꼴로 일생에 적어도 한차례 이상씩 경험하는 질환이라고 한다. 특히 양심적이고 자아가 강하고 완벽을 추구하는 타입의 사람들이 우울증이 있다면 환자일 가능성이 많다고 한다. 여러가지 치료방법이 있는데 약물요법과 심리요법, 전기요법이 있고 증상에따라 한가지 요법을 사용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선 병합치료를 해야한다고 한다.
우울증은 자살로 이끄는 병이어서 자신이 아무 쓸모가 없다고 생각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생활의 큰 충격, 즉 갑자기 심각한 재정상태에 빠졌거나 아니면 사랑하던 가족을 잃거나 이혼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할 때에 자살을 결심하게 된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위르켐은 자살을 세가지 종류로 분류했는데 이기적 자살, 이타적 자살, 혼돈적 자살이다. 이기적 자살은 사회적인 결속력이 약한 사람인데 독신이거나 자식이 없는 경우이고, 이타적 자살은 사회와 개인이 너무 밀접할 때 흔히 나타나는 유형인데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광장에서 온몸에 불을 질러 자살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그리고 혼돈적 자살은 개인과 사회와의 연관관계가 깨어질 때 생긴다. 실업이나 실직으로 경제적 파산을 맞는 경우이다.
많은 경우 자살하겠다고 사전경고를 하기 때문에 농담반 진담반으로 들릴 수도 있는데 이것은 위험신호일 수도 있다. 또한 자살을 결행하기 전 자신의 물건들을 주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기도 하고 수첩을 태우기도 하면서 주변정리를 하기도 한다. 이럴때 조용한 곳에 혼자 쉬다온다는 것을 방치하면 끔찍한 결과를 야기할 수도 있다. 의사의 치료를 받고 있더라도 심한 경우엔 누군가 항상 감시해야 하는데 그것마저 갑작스런 죽음의 결행을 막을 도리가 없을 경우도 있다. 마치 한명의 도둑을 열명이 감당하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들에게 보여지는 삶과 보여지지 않는 삶이 있다. 보여지는 외적인 삶에 바쁘게 돌아가다 보면 정작 중요한 자신의 문제에 소홀할 수 있다. 마치 신을 찾으러 갔다가 온통 바쁜 스케쥴과 행사에 정신없이 등떠밀려 다니다가 진작 만나야 할 신은 온데간데 없고 사람들에 치여 바삐 오가는 모습에 넋나가버린 사람들처럼 말이다.
현대인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은 혼자있는 시간이라고 한다.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면 온통 불안해져서 무엇으로 시간을 메꾸어야 할지 불안해 한다고 한다. 그러나 평소에 머리가 복잡해지면 먼저 주위의 소음에서 벗어나 일상으로부터 탈출하여 불필요한 것들을 가끔 청소해 정신적으로 가볍게 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먼저 자신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어디서부터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지? 또한 고요속에 물밀듯이 밀려오는 허무나 두려움, 미움과 고통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런지?
살아 온 햇수에 상관없이 어떤 사람들은 마음속에 미성숙한 유아기적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기도 하여 현실적응이 안돼 공격성과 분노를 자주 나타낸다. 또한 자기자신을 분리시키므로 통합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여 혼란해져서 남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자신의 벽을 더욱 확고하게 쌓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부정적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정기적으로 형성된 부정적 인격의 특성은 만사를 불만을 통해 보기 때문에 가족이나 주위사람들에게 괴로움을 준다.
나의 현재는 나의 행동과 생각의 산물이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선택한 결과이기 때문에 각자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자신이 처한 자리가 비록 만족치 못하더라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그 자리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톨스토이의 말처럼 “남에게 불만스럽고 또 자기 환경에 만족하지 못하며 자신에게 불만스러우면 블만스러울수록 인간은 거룩한 지혜에서 먼 곳에 있는 것이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어 지식이 산과 같이 높아졌을지라도 신을 아는 지혜가 없으면 헛것이요, 아무리 남을 위해 자기 몸을 불사를지라도 신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면 헛것이 되고만다.
2003/02/17
윤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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