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한국에서는 사회 지도자급 인사들이 줄줄이 자녀들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경우를 많이 보게된다. 열 손가락 찔러 안 아픈 손가락이 없지만 맹모삼천까지 들먹이며 목표도 철학도 없이 유난히 자식사랑을 내세운다. 어쩌다 한국이 이 지경이 되었는지.
이러한 현상은 보고 배울 것이 없는 이른바 교육부재에서 오는 것이다. 지도자들의 뻔한 거짓말, 이기주의, 무책임, 무원칙, 금전만능 등 이런 것들이 얽혀져서 무질서를 이루니 무엇을 보고 배울 수 있을 것인가. 거의 모든 분야가 흔들리고 최소한의 규범마져 망가지고 있다. 덕스럽지 못한 부적절한 사람들이 권위와 권력을 탐하니 무슨 비전이 있으며 희생이 있겠는가. 과시와 포장을 위해 자신을 알아주는 곳만 기웃거릴 뿐이지.
생후 6개월된 유아를 TV 앞에 앉히고 하루에 5시간씩 비디오로 영어를 가르친다거나 다섯살짜리에게 1백30만원이나 하는 영어과외를 시키기도 하고 수십만원씩하는 영국제나 프랑스제 아동복만 사서 입힌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고급 빌라에서 사는 아이들과 연립주택 아이들이 함께 다니는 학교에서는 있는 집 아이들과 없는 집 아이들 간의 ‘끼리끼리 현상’이 만연하다고 한다. 부모의 재산이나 타고 다니는 차의 종류에 따라 편이 갈라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정박아들의 시설이 동네에 들어선다면 온 동네 부모들이 달려들어 자기 자녀들 교육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고 반대하는게 아닌가? 미국에서는 오히려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할 터인데 말이다.
경기도 고양시에 사는 어떤 한 회사원은 아들이 다니던 유치원에서 졸업식날 우등상을 받을 5명의 아이들 중에 자신의 아들도 들어있어 자랑스러웠는데 그 중 3명만 상패를 타게되었다고 한다. 기분이 언잖아진 아버지는 따지듯이 학교에 항의했더니 그것은 유치원에서 마련한 것이 아니라 보모들이 미리 돈을 내고 주문한 것이었다는 것이다. 다른 아이들의 상패를 부러운듯 바라보는 아들에게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도대체 유치원 때부터 우열을 가려야 할 일이 어디있단 말인가? 한국에 갔을 때 우연히 내 옆에 앉게된 은퇴한 여선생으로부터 세상이 왜 이렇게 되어가느냐며 자신의 불쾌했던 경험담을 들은 적이 있다. 지하철 안에서 한 여자아이가 정신없이 뛰어다녀서 “집에서는 몰라도 여러사람들이 있는 장소에서는 아이를 좀 단속해야되지 않어요?”라고 했더니 젊은 엄마는 그렇지 않아도 기가 없는 우리 애의 기를 죽인다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더란다.
지난 봄 로스엔젤레스 타임스에도 보도가 되었던 믿기 어려운 기사때문에 얼굴이 뜨거워진다. 한국의 영어 조기교육 열풍으로 영어발음을 능숙하게 할 수 있도록 어린 아이의 혓바닥 아래부분을 절개하는 수술이 유행한다는 내용이었다. 세상의 엽기적인 이야기로 가득 찬 영화 몬도가네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이다.
어쩌다 한국이 이 지경이 되었을까?. 언젠가 모임에서 덕망있는 유태영박사의 강연이 있었다. 경험에서 묻어나오는 진솔한 이야기 가운데 유대인처럼 한국 어머니들의 높은 교육열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다. 한국 어머니들은 옆집 아이가 피아노를 배우는데 자기도 배우겠다고 하면 돈이 없어도 오기로라도 “그래, 너라고 못하겠니? 너도 해라”라는 식으로 재주가 있건 없건 모두 시킨다고 한다. 유대인 엄마 같으면 “그애는 피아노를 잘치지만 너는 운동을 잘하잖니?”라며 서로 다른 점을 칭찬해 준다는데 이것이야 말로 윈윈방식이 아닌가?
진짜로 재능있는 아이들은 배울 시설도 없고 오히려 보통수준의 아이들은 부모 등에 떠밀려 너도나도 영재학원에 다니고있다. 학원에서 이미 다 배워서 학교는 잠자는 아이들이 많을 뿐 아니라 수업을 믿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요 교사의 가르침을 믿는 것은 순진한 것이라며 학교교육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교육의 평준화를 부르짖으며 70점짜리 수준의 학생들이나 만족하는 학교가 되었다. 그래서 시키기 전에는 하려고 들지 않아 하나같이 수동적이고 개성이 없는 학생들이 되어 커서도 나서서 일하려고 하지도 않고 책임지기도 싫어하고 시키는 것만 하게되는 특징없는 사람이 되었다. 개개인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획일적 제도하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그야말로 특징없는 오리들처럼 떼지어 다니며 도토리 키재기나 하겠지.
가정이나 학교에서 단순히 지식의 습득을 강조하기보다 인간관계의 중요성과 남을 존중하는 습관을 길러주는데 보다 관심을 쏟아야 하는데 남보다 먼저 배워서 기죽지 말라는 부모들의 교육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변질된 자식사랑이 변하지 않는 한 ‘출구없는 방’처럼 희망이 없다. 사랑도 기술인데 배워야 알지 않겠는가.
2002/09/03
윤명희
497 total views, 1 views today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