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이변이 또 일어날 수 있을까? 애당초 16강을 목표로 했던 나라가 4강을 향하던 일이 있었던가? 물론 훌륭한 감독과 잘 뛰어준 선수가 있고 막강한 응원단이 있다 하더라도 한 두번의 승리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렇듯 승승장구 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던가?
연장전까지 갔던 16강전을 치른 후 며칠 쉬지도 못하고 다시 뛰어야 했던 우리의 태극전사들이 또 다시 연장전도 모자라 피를 말리는 승부차기까지 갔다. 히딩크 감독이 월드컵이 기작되기 전 네델란드 신문에 기고한 글에 의하면 처음 감독 제의를 받았을 때 망설였지만 한국선수들의 엄청난 열정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국가의 명예와 위신을 위해 뛰기도 하겠지만 그보다 자신들의 몸값을 더 높여 개개인의 부와 명예를 잡는 기회로 생각하는 많은 유럽선수들을 보아온 감독에겐 신선하게 비쳤던 것 같다. 한국선수들은 초라해 보였지만 자신의 지시를 충실히 따르려고 노력하였고 한결같이 착하고 순수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실력이 떨어지면 남보다 더한 노력으로 보충하면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하고자 하는 의지다’라며 ‘나는 영웅주의를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고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할 뿐이다’라며 영웅되기를 사양했다는 것이다.
그가 부임한 이래 18개월 동안 한국팀에게 새로운 바람을 일으켜 이러한 혁신적인 변화가 올 수 있게 한 요인이 과연 무엇일까? 진리는 단순하다. 기본과 원칙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ESPN에선 이번 월드컵 최고 사령탑은 히딩크라며 히딩크식 체력프로그램과 한국 특유의 ‘선후배 문화’를 과감히 벗겨버린 감독의 용단을 높이 평가했다.
묵묵히 기초체력을 다졌고 어떤 위치에서도 진가를 발휘할 수 있도록 멀티플레이어로 단련시켜서 유럽처럼 스타플레이가 아닌 팀플레이에 역점을 둠으로써 결정적인 경기에서 진가를 발휘하게 된 것이다. 또한 실력위주로 선수들을 기용해서 나이나 경력에 상관없이 선수들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하였다.
처음 감독으로 부임했을 때 후배는 후배끼리, 고참은 고참끼리 모여 식사하는 것을 보고 대노했다는 것이다. 경기장 밖에서 나이나 친한 정도에 따라 끼리끼리 모여 자기들 끼리 ‘따로 국밥’이었던 것을 격의없고 원할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도록 ‘비빕밥’ 처럼 섞어놓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누구든지 ‘형’이라고 부르지 못하게 하고 모두 이름을 부르도록 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고참들의 불만도 있었으나 지금은 ‘히딩크가 옳았다’고 한다는 것이다.
선수들은 경기장에서 뛰는 것으로 자기의 실력을 나타내지 학연, 지연, 혈연으로 나타내는 게 아니다. 한국의 모든 분야를 썩게 만드는 이러한 망국병이 절연되었을 때 긍정적인 시너지가 창출되어 승리를 거뭐쥘 수 있게 된 것이다.
2002 월드컵을 끝으로 한국축구대표팀과 계약이 만료되는 히딩크 감독은 자신의 고향인 네델란드에서 PSV 아인트호벤의 사령탑을 맡을 경우 한국에서 사랑하는 세명의 제자를 데리고 갈 지 모른다고 한다.
박지성, 김남일 그리고 안정환이 유력한 후보라는데 인재를 알아주는 선생과 마음으로 따르고 존경하는 믿음직스런 제자들과의 아름다운 관계는 옆에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부러움으로 흐믓하게 한다.
경기가 끝나자 마자 네델란드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거니 주위에서 축하전화 받느라고 정신이 없다는 것이다. 네델란드에서도 히딩크 감독에 대해 아주 자랑스러워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곳에 사는 한인들도 대사관과 삼성빌딩에 모여 응원을 한 후 모두 길거리로 나와서 경적을 울리며 축하했다고 한다.
안타깝게 진 스페인에겐 따뜻하게 위로의 말을 해주어야겠다. 진부한 표현이 될런지 모르지만 그들이 즐겨 쓰는 말로 “마냐나”라고 말하며 내일을 기약하자고 해야겠다.
오는 25일 서울의 상암구장에서 독일과 준결승전을 치르게 된다. 공교롭게도 민족의 비극인 6.25사변과 같은 날이다. 피로를 회복하기에는 너무 짧지만 새롭게 가다듬어 다시 한번 우리 선수들이 독일을 멋지게 이겨 세계에서 월드컵신화를 다시 쓰는 긍정적 사변을 일으킬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정말 온 국민이 한 마음이 되어 이토록 신나는 일이 언제 있었던가? 세상에 이보다 더 신나고 기쁜 일이 어디 있을까? 가자! 이젠 챔피언을 향하여!
2002/6/26
윤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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