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잘 싸웠다.  우리 태극전사들이 자랑스럽다.  독일에게 1점을 내주고도 한 점 흐트러짐 없이 침착하게 끝까지 잘 싸워주었다.  애초 우리가 기대했던 이상의 선전을 해서 4강까지 진출한 것을 감사해야 한다.  그렇지만 마지막 한 골만 더 넣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한동안 허전한 자리를 맴돌았다.

우리들이 이러할진대 직접 몸으로 부딪힌 선수들은 오죽했을까?  그보다 이기려고 왔던 유력한 우승후보들이 하나하나 집으로 가야만 했을 때 그들의 참담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살아갈 동안 언제 다시 이런 기회가 올지 아무도 알 수 없다.  홈 경기장에다 더 할 수 없는 훌륭한 간독의 지도, 훈련되어진 강인한 체력과 순수한 정신력, 유럽의 강호들에게 신체적으로 열세임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굴함없이 시종일관 거침없는 경기를 보여주었던 우리 선수들의 선전하던 모습은 우리의 뇌리에 오래 각인될 것이고 월드컵 역사에 남을 것이다.

세계의 이목이 동시에 집중된 월드컵의 성공여부는 세계 속에 한국이 얼마나 잘 홍보되어서 국가 이미지가 개선되느냐에 달렸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면에서 이번 축제는 기대 이상의 효과를 얻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한국을 어느 누구도 작아서 잘 알아볼 수 없는 나라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이번 월드컵은 세계도 놀라고 우리도 놀란 하나의 꿈과같은 축제였고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갖게 하였다.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붉은 악마의 응원은 업창난 조직력으로 주로 술집이나 노래방, 룸싸롱 같은 어두운 문화와 대조적으로 안에서 밖으로 박차고 나오게해서 한국의 열린 광장문화를 일으켰다.  우리와 다른 타인에 대한 이해도 증진시켰다.

수십만이 운집했어도 쓰레기 하나 없고 화단의 꽃 하나도 상하지 않은 성숙한 응원문화를 보여 한국인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보여주었다.

변화가 없으면 발전도 없다.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젊은이들이 주축이 되어 시작된 응원문화는 집안에만 있던 기성세대들을 동참하게 해 우리는 하나라는 공동체성에 대한 열망에 불을 붙였다.  젊은이들 특유한 자유분방함과 숨겨진 능력을 찾는 도전이 새로운 물결을 일으켜 새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된 것이다.

오는 29일엔 대구에서 터키와 3,4위를 겨루는 시합이 열릴 것이다.  우리 선수들은 또 다시 최선을 다해서 뛸 것이다.  그 후 우리는 돌아와 다시 현실 앞에 서야 한다.  써커스가 끝나 후의 쓸쓸함처럼 열정과 욕망이 사납게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우두커니 남겨진 공허함을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채워야겠다.

우리의 승리에만 도취되었던 마음을 가다듬고 이젠 다른 지구촌 사람들도 돌아볼 때다.  우리가 기뻐 뛸 때 패자로 실의에 빠져 쳐진 어깨로 돌아서던 그들을 따뜻하게 그들 편에서 배려했는지 짚어봐야 한다.  그리고 손님들을 청해놓고 대접을 소홀히 한 채 흥에겨워 그들에게 우리들만의 잔치로 비쳐지지나 않았는지 점검해 보고 혹 불편한 점이 있었으면 우리의 미흡함을 용서해 달라고 해야겠다.

이런 큰 행사를 치르면서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을 지켜본 우리들도 많은 것을 배웠다.  심판이나 한국팀에 대한 근거없는 루며에 대해 의연히 처신했고 졌을 때 상대를 비난하거나 화풀이하지 않고 끝까지 깨끗한 매너로 스포츠맨쉽이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이길 때 기뻐하는 것보다 졌을 때 깨끗하게 승복하고 이긴 팀을 축하해 줄 수 있다면 더욱 멋진 행동이다.

이번 월드컵을 통해 우리가 부정적 패배의식을 말끔히 지워버리고 하면 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가장 큰 수확이다.

이런 자긍심이 일회성이 아이고 장기적인 긍정적 사고의 상승작용으로 한국 전반에 걸쳐 생산적이고 경쟁력이 넘치는 원동력이 되었으면 한다.  덧붙여 정치나 견제나 사회 모든 분야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꼭 지금의 한국축구만 같게 되기를 바란다.

2002/6/26
윤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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