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解凍)과 더불어 드디어 봄이 찾아온다. 어제는 서울 지역의 기온이 13. 5도로
100여 일 만에 올겨울 최고라더니, 이어 오늘은 낮 기온이 16도까지 올라 금년 들
어 가장 따뜻한 휴일이란다. 물실호기(勿失好機)다. 오늘은 오랜만에 아침 일찍 운
동을 나갔다. 여느 아침과는 달리 현관문을 나서도 한기(寒氣)를 거의 느낄 수 없을
만큼 훈훈한 바람이 얼굴을 매만진다.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두어 달 동안은 종전의 내 스타일과는 달리 여러 날을
이른 아침에 운동을 나가지 못한 상태에서 이번 겨울을 거의 다 지나 보냈다. 그렇
다고 그 사이 운동을 게을리 한 것은 아니다. 아침 일찍 자주 나가지 않았다 뿐이지
식후나 오후 시간에는 꾸준히 한다고 하기는 했다.

내가 하는 아침운동은 주로 걷기다. 보통은 왕복 한 시간 남짓, 좀 멀리 가면 두 시
간 가량 걸리기도 한다. 아파트 가까이 뒷산, 비봉산(飛鳳山)을 오르는 운동이다. 등
산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겠고 대개 산길 걷기다. 그래도 이른 아침 운동을 예년처
럼 하지 못한 채 겨울을 나게 되다보니 마음 한 구석에는 어딘가 늘 찜찜한 데가 없
지 않았다.

사람에게는 매사 각자 자기 스타일이라 할까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식이 있다. 운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이는 새벽 운동을 좋아하는가 하면 오후나 저녁 무렵의 운동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철저하게 아침형이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고 할 수만 있다면 어떤 일이든 아침 식사하기 전 눈을 뜨는 즉시 해치워야 하는 것이 내 성미다. 그래야 직성이 풀린다. 나는 느긋한 성격의 사람은 못된다. 할 일을 두고는 못 배긴다.

운동에 있어서만은 유독 그렇다. 아침 먹고 나서 느지막이 다른 사람들 다 나가는 어중간한 시간에는 아예 나가고 싶은 마음마저 내키지 않는다. 무슨 일이든 남들이 다 하는 식으로 해서는 남보다 앞 설 수 없다는 생각이 내 머리를 지배하고 있다.  그런 성격을 지닌 사람인 내가 내 방식을 고수하지 못한 것이 적이 마음에 걸린다는 말이다. 내 생활 페턴에 무슨 이상이 오는 듯한 징조가 보이는 것 같아 마음이
불안하다.

지나온 세월을 회고해보면 더욱 그렇다. 난 대구 사람으로 앞산이며 팔공산 동서봉 등을 수도 없이 여러 번 오른 사람이다. 그 중에서 특히 팔공산 갓바위는 워낙 여러 번 오른 지라 아마 그 횟수가 수백 회는 넘을 것이다.  그것도 거의 대부분 새벽이나 이른 아침에 다녔다. 산을 거의 다 내려올 때 쯤이면 겨우 한두 사람 만날 둥 말 둥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하루 중 맨 먼저 산 정상을 밟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특히 악천후일 때 그런 경우가 많았다. 겨울에 눈이 오거나 여름 비가 내리는 날 등 외출하기에 일기가 극도로 불순할 때는 아침 일찍부터 높은 산을 찾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런데 그런 날이 오히려 나에게는 기회다. 좋게 말한다면 이런 자세가 도전(挑戰) 정신일까. 그것이 나의 아침운동 스타일이라면 스타일이다.

그러한 이력의 소유자인 내가 이번 겨울에는 나의 방식을 제대로 고수하지 못했으니 마음이 편할 리가 없다. 올겨울은 매서운 한파에다 유별 눈이 많은 해였다. 서울의 지난 1월 최저기온이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진 날이 무려 20일을 상회했다고 한다. 그 추위 위세에 결국은 나도 눌리고 만 것이다.

지고 나서 기분 좋을 사람은 없다. 그러나 지고 싶어 지는 사람도 없다. 그렇게 밖에 될 수 없었던 데는 상당부분 불가항력적인 요인들이 작용했다 하면 구차한 변명으로 들릴까. 나도 이제는 이팔청춘이 아니다. 겨울 혹한이 두렵지 않을 만큼 체력적으로 자신이 있는 것도 아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Too much is as bad as too little. 중용지도((中庸之道)를 이르는 말이다.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 무리수를 두지 않겠다는 고심(苦心) 끝에 내린 신중한 처신의 결과라고 자위(自慰) 해본다..

오늘 아침은 산 공기가 너무 상쾌하다. 그야말로 산너머 조붓한 오솔길에도 봄이 찾아오고 있다. 우수(雨水), 경칩(驚蟄)도 지났고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는 춘분(春分)이 얼마 남지않았다. 만물이 약동하는 춘삼월호시절이 다가오고 있다. 이제부터는 아침운동에 장애물은 없다. 게으름만 피우지 않으면 된다. 부지런하면 건강은 지킬 수 있다.

시작이 반이다. 해이해진 마음 새로 다잡으며 오늘 아침 다시 조기운동을 시작했다.  희망을 바라보고 열심히 뛰어야 겠다. 생즉동(生卽動)이다. 살아있다는 건 끊임없는 움직임이다. 옛날 군대 생활 하던 시절 수송부(輸送部) 앞을 지나칠 적마다 눈에 들어오던 슬로건이 생각난다.  “닦고, 조이고, 기름칠”.  유지관리(維持管理 ) 면에서라면 인체(人體)도 차량이나 다를 바가 없겠다. 건강도 이런 요령으로 관리하면 어떨까.

2011. 03. 13.

林谷齋/草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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