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그제는 훈훈한 봄바람으로 겨우내 얼어붙었던 마음이 모처럼 확 풀리는 듯하더니 오늘 날씨는 갑자기 180도 달라졌다. 봄날씨 변덕이야 누가 모를까. 변덕이 죽 끓듯 하다 보니 도대체 질정(質定)을 할 수가 없다. 속된 표현을 빌리자면 “미친년 널 뛰듯한다.” 하겠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말이 그래서 생긴 건가. 삶이 팍팍하고 어수선한 세상처럼 봄날은 쉽게 오지 않는다. 하여튼 종잡을 수가 없는 게 봄날씨다.
아침 일찍 산으로 운동을 다녀왔더니 얼굴이 언 것 같다. 꽃샘추위 운운하지만 아무래도 요즘은 한겨울처럼 완전무장을 하고 밖에 나가지는 않는다. 오늘이 도대체 며칠인가. 달력을 보니 딱 3월 15일, 이 달도 벌써 중반을 접어들고 있다. 요새는 날짜 가는 줄도 모르고 산다. 굳이 알아야 할 까닭이 없다. 궁금하면 달력 쳐다보면 된다. 이렇게 팔자 좋은 사람이 요즘의 나다. 그야말로 팔자가 늘어졌다. 잘 먹고 잘 놀고 개팔자 상팔자다. 어쨌거나 세월은 잘도 간다.
이래저래 봄 행차는 야단스럽다. 좀 얌전히 다소곳하게 오면 좋으련만 왜 이리도 요란한가. 무슨 사또님 행차라도 되는가. 울긋불긋은 좋은데 기어이 나팔까지도 불어야겠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올해도 이 강산 낙화유수(落花流水) 흐르는 봄에 세월에 꿈을 실어 마음을 실어 꽃다운 인생살이 고개를 넘자다.
나는 모자를 즐겨 쓴다. 그것은 내가 대머리인 까닭이다. 머리털이 많이 빠져 벗어진 머리를 대머리 또는 생소한 말로 독두(禿頭)라 한다. 여기서 ‘독(禿)’자는 대머리 ‘독’자이다. 서울 1호선 전철역 가운데 독산(禿山)역이 있다. 그래서 나는 많이 쓰이지 않는 한자(漢字), 대머리 ‘禿’자를 알고 있다.
왜 하필이면 역 이름이 독산이 되었을까. 금천구에 속하는 독산역은 내가 이용하는 안양역에서 상행선 네번째 역이다. 북동쪽으로 三聖山(481m)과 冠岳山(629m)이 바라다 보인다. 거기서 내리 뻗은 산줄기가 그곳쯤에 와서는 나무가 없는 민둥산으로 변했던 모양인가. 어쨌건 한때는 그 일대가 유독 벌거숭이 지역이었던가 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추측일 뿐이다. 향토사학자나 지명연구가가 보면 웃을 일일 지도 모르겠다.
이야기가 좀 빗나갔다만 바람 부는 날이나 추운 겨울에는 대머리에겐 모자가 필수품이다. 그래서 외출시 제일 먼저 챙기는 게 모자다. 오늘 아침에 나갈 때는 툭툭한 겨울 모자 대신 가벼운 걸 썼더니 그게 탈이었다. 차거운 봄바람에 머리며 얼굴이 살짝 언 것 같았다. 막상 다닐 때는 몰랐는데 따뜻한 집안에 들어서자 그런 느낌이 왔다. 보릿가을에 햇늙은이 얼어 죽는다더니 그때까지는 쌀쌀한 봄바람은 각오해야겠다.
이런 가운데서도 남촌(南村)서 불어오는 봄바람을 생각하고 그리워하고 기다리는 게 우리 선남선녀들의 봄 기다리는 마음인가. 우리가 기다리는 봄바람엔 속절없이 아이 어른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모두가 봄바람이 들고 봄바람이 난다. 그래서 기나긴 겨울을 이겨내게 한 인내를 키워준 변덕쟁이 봄바람을 내심 반기는 것인가.
2011. 03. 15.
林谷齋/草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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