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그것도 거실에서 편히 앉아 멋진 해넘이(日沒) 장관을 지켜볼 수 있다면 그 또한 얼마나 커다란 행운일까. 아파트 숲 속에서 현대를 살아가야 하는 무수한 도회지 사람들에게는 그런 광경은 여간해서 잡기 어려운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런 귀한 행운을 근자에 와서 내가 어쩌다 보니 자주 잡게 되기에 하는 이야기다.

요즘 같아선 한 주가 멀다 하고 우리 내외가 기다리고 찾아 가는 데가 있다. 기다리는 사람도 있고 또 찾아갈 곳도 있다는 말이다. 사람 기다리고 사람을 찾아간다는 건 참으로 신나는 일이다. 살맛 나는 일이다. 기다릴 사람 없고
찾아 갈 데가 없다면 무슨 낙으로 살까. 아무 갈 데도 없고 오라는 데도 없다고 상상을 해보라. 그런 삶이 얼마나 무미건조하고 따분하겠는가. 그 점에서 보면 사실 나는 요즘은 참으로 행운아인 셈이다.

그 곳이 어딘가 하면 둘째 아들 내외가 사는 집이다. 거기를 그렇게 자주 가는 까닭이 무엇인가. 분명한 목적이 하나 있어서이다. 보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다. 안 보면 보고 싶어 안달이 나 못 견딜 지경의 사랑스런 손자 놈이 보고 싶어서다. 요사이는 손자 기다리고 보러 가는 낙으로 산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녀석과 같이 있으면 마냥 내가 행복하니까다.

손자 보러 가는 건 좋은데 그렇게 자주 가면 자식이며 며느리가 좋아하느냐구요? 그럼 싫어한다는 말인가. 누구를? 아무리 막되 먹은 세상이기로서니. 그럴 수는 없다. 그건 틀림 없는 사실이다. 확실하다. 이 나이까지 살아오면서 는 것, 남은 것이라곤 눈치 하나 뿐인데, 척하면 삼천리지 그 눈치마저 모를까. 사실은 우리만 그런 게 아니고 그들이 더 오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래서 그들 내외가 더 고맙고 한편 기특하다.

요즘 세상에 아무리 고부지간 정이 메말랐다 해도 세상 시어머니 며느리 사이가 다 그렇다고는 단정짓고 싶지 않다. 모녀처럼 오순도순 다정한 고부 사이도 얼마든지 있다. 사람 나름이다. 상대적이다 그리고 각자 하기 나름이다.

아전인수격인 해석일지 몰라도 나의 며느리들은 시부모와 사이가 그렇게 나쁘다고는 믿고 싶지 않다. 착각은 자유라구요. 착각이 아니다. 먼 훗날은 모르겠다. 사서 지레 걱정할 필요는 없다. 적어도 지금까지 지내오며 겪은  바로는 자신있게 “그렇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란 옛말이 있다. 그 말은 너무도 타당한 말인 것 같다. 나는 며느리가 둘이다. 그런데 둘 다가 하나같이 귀엽고 사랑스럽다. 그 애들과 함께 있으면 시간이 언제 지나가는 지를 모른다. 내가 경상도 사람이라 그런지 그들에 대한 나의 그런 마음을 제대로 나타낼 줄 몰라 탈이지 어디까지나 이건 내 진심이다.

집사람과 두 며느리들, 고부지간은 물론이요 나와 그들 사이는 틀림없이 아직은 “이상무(異常無 : No problem!)”다. 며느리들 자랑은 그쯤하고….둘째 손자 이야기, 본론으로 돌아간다. 녀석 보러 가는 날은 그냥 덤덤하게 가는 게 아니다. 참으로 신나는 길이다. 발걸음도 가볍다. 생각만 해도 흥이 절로 난다. 입꼬리는 귀에 걸린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집사람은 나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 하지는 않다. 엔도르핀이 막 솟아난다.`

세상에 손자 말고 이처럼 보고 싶은 사람이 또 어디 누가 있을까. 이건 뭔가에 완전히 홀린 상태다. 매료된 상태다. 사랑의 샘은 아무리 퍼내도 마르지 않는가. 나에게 어디 그런 사랑이 여태 남아 있었던가. 녀석을 향한 나의 사랑은 끝없는 하늘이요 가 없는 바단가.

그 참, 이상하다. 손자가 왜 이렇게 사랑스러울까. 우문이요 우답일 게다. 답이 필요가 없다. 그저 좋다. 맹목적이다. 내리사랑이라더니. 조건을 붙인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런 건 사랑이 아니다. 내가 인간을 이렇게까지 좋아해본 적은 일찍이 없었다.

녀석은 오늘 2011년3월 8일로서 생후 만 24개월 두 돌이 된다. 녀석이 태어난 지  넉 달이 될 무렵 우리 내외는 수년만에 뉴욕에서 귀국했다. 그때부터 최근까지 거의 한 집에서 딩굴며 산 셈이다. 작년 이맘때 첫 돌 행사 치른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그 사이 또 열 두 달이 지나갔다. 노인네들 입만 떼면 늘 하는 그 소리 그야말로 세월이 유수(流水)다. 그러나 그 지나간 세월이 녀석에게 너무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이젠 완전히 사람이 됐다. 밥도 잘 먹는다. 잘 논다. 잠도 잘 잔다. 좀처럼 우는 법이 없다. 쉬도 응가도 혼자 잘한다. 못하는 말이 없다. 컴퓨터도 잘 만진다. TV 켜고 끄고는 식은 죽 먹기다. 전화 걸기도 자유자재다. 아이폰도 잘 만진다.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이다. 몸도 몸이지만 지적 발달이 참으로 놀랍다.

오늘도 저녁 무렵 거실에서 손자 녀석과 신나게 놀고 있었다. 집이 서향이라 인천대교 쪽 서해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조망이다. 놀이가 한창이던 중 우연히 그리로 고개를 돌리자 뜻밖에 그야말로 멋진 광경, 숨막힐 듯 황홀하고 아름다운 해넘이 광경이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가. 커다란 광주리 만한 붉은 해가 산위에 걸렸다. 녀석에게도 그리로 관심을 유도했더니 한참 동안 해가 넘어가는 그 신기한 순간을 지켜본다. 그 광경이 좋은 걸 아는 지 모르는지.

너무도 큰 의외의 소득이다. 부수입이다. 원님 덕에 나팔 분다. 손자 덕에 잡은 우연의 행운이다. 님만 본 것이 아니라 뽕도 땄다. 손자 보러 여기 오는 날은 이런 행운이 겹치는 경우가 더러 있다.

해돋이(日出 )명소로 소문난 미 동부 최초의 국립공원 아카디아 공원(Acadia National Park)과 더불어, 아름다운 일몰로 명성이 높은 세계적 휴양지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까지 굳이 갈 필요도 없다. 거실에 앉아 손자랑 놀면서도 그에 못지 않는 기막힌 장관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등장 밑이 어둡다했던가. 이 집 거실은 인천의 와이키키요 앞에 보이는 서해 바다는 송도 와이키키 비치(beach)다.

2011. 03. 08. / 仁川 松島에서 草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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