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한사온(三寒四溫)이라도 다시 찾아온 건가. 금년은 겨울이 시작되면서 날씨가 며칠 동안은 포근하다가 갑자기 추워지는 패턴(pattern)을 되풀이하는 것 같다. 지난 주에도 초반은 며칠 동안 따뜻한 날씨가 이어지더니 주말엔 영하 10도를 넘는 강추위가 찾아왔다. 이번 주간 날씨도 지난 주와 유사한 양상을 보이리라는 일기예보다.
포근한 겨울 날씨 덕에 지난 주 목요일(16일)엔 아주 오랜만에 한국의 나폴리라 불리는 남해안 항구 도시 통영을 찾을 수 있었다. 돌연 그 멀리까지 간 것은 새로 생긴 거가대교(巨加大橋)를 구경할 목적에서 였다. 보나마나 주말이면 차들이 많아 구경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일부러 주중을 택했다. 거기서 일박을 하고 이튿날 오전 아름다운 통영 시가지를 대충 둘러보고 신거제대교를 지나 14일 오전 새로 개통된 거제도와 부산을 잇는 그 유명한 거가대교를 여유있게 구경한 뒤 상경했다.
나는 어디에 새 길이 뚫렸다 하면 즉시 가보고 싶어 안달하는 성미를 가지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그런 나의 생각에는 별 차이가 없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 수는 없으나 나이가 들어도 그런 면에선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오래전 일이지만 일예로 중앙고속도로 대구 안동 구간이 1차로 완공 되어 개통식을 하던 1995년 8월에도 첫날 새로 난 길을 내 차로 달려 본 경험이 있다. 그리고 어제(12월 21일)는 밝은 뉴스거리로 화제가 됐던 경춘선 복선전철 개통일에 맞춰 춘천 소양호 뒷편 천년고찰 청평사(淸平寺)와 빼어난 경치와 암벽으로 소문난 오봉산 산행을 다녀왔다.
새로 생긴 길을 달려 본다는 것은 참으로 신나는 일이다. 나는 어느 목적지로 향해 운전을 하며 가다가도 도중에 새로 난 길이 있다하면 그 길로 들어가 보기를 좋아한다. 그럴 때마다 얻는 기쁨은 의외의 소득으로 예상을 뛰어넘는 경우가 흔하다. 가 본 적이 없는 낯선 길을 차로 달린다는 것, 그 보다 더 멋진 스릴과 감동은 없다. 사람들이 여행을 좋아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다 나의 이런 호기심과 대동소이한 심정이리라 믿는다.
이번 여행도 목요일 낮 두 시쯤 집을 나서 그 다음 날 저녁 아홉 시경 안양 집에 귀가를 했으니 고작 30여 시간 만에 국토 반 바퀴를 돌고 온 셈이다. 그야말로 벼락치기 여행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도착해서 마일리지(mileage)를 확인해보니 주행거리는 800km 가 족히 넘었다. 차만 타고 다니다 온 여행이 아니냐 할지 모르나 그렇지가 않다. 나름대로 실속이 있는 여행이었다. 비록 짧은 시간 동안이었지만 귀가하기까지 네 식구가 오가며 느낀 재미며 올라오는 도중에 겪어야 했던 스릴과 모험은 실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매사 그러하겠지만 양보다는 질이요 내용이 중요하다. 이번 여행 역시 벼락치기긴 했으나 콤팩트(compact)한 내용의 것이 아니었나 싶다.
오는 길엔 김해에서 동대구까지는 밀양 청도 경유 민자(民資)로 건설된 55번 고속도로를 달려왔고 어어 경부고속도로로 김천까지 와서 톨게이트를 빠져나왔다. 그 무렵부터 의외의 심각한 사태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김천에서 새로 난 국도를 따라 직지사 입구를 지나 추풍령까지 가는 길이 참으로 어려웠다.
험상궂은 날씨 관계로 그 시각엔 통행하는 차가 거의 없어 길에는 눈이 수북하게 쌓이고 있었다. 눈길 위를 조심조심 춘향이 걸음을 하면서 일차 목적지 추풍령까지는 용케 무사히 도착할 수가 있었다. 며느리에다 어린 손자까지 태우고 있었으니 운전대를 쥔 나의 심경이 어떠했겠는가. 겉으로야 태연한 척 했지만 손에는 진땀이 났고 속으론 무척이나 염려가 되고 신경이 씌였다.
그런 와중에서도 일부러 추풍령에 들른 것은 점심식사를 위해서였다. 거기 삼거리에는 돼지고기와 청국장으로 유명한 내가 아는 식당이 하나 있다. 눈발이 펄펄 날리는 가운데 네 식구가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그 때까지만 해도 그 날 중으로 서울까지 간다는 일은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가 없을 험악한 날씨였다. 밥을 먹으면서 식당 주인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어디 마땅한 여관이나 다른 숙소를 구할 수 없겠느냐고. 식사는 그 집에 부탁을 하면 되겠고.
딱히 어려우면 일박을 할 각오로 느긋하게 점심을 맛 있게 먹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한 시간 가량 뒤에는 눈이 조금씩 그치기 시작했고 날이 갤 것 같았다. 그래서 어렵사리 추풍령 톨게이트까지 가서 경부고속도로에 다시 진입을 했다. 큰 길엔 계속 차들이 다니는 관계로 눈이 쌓이지가 않아 주의만 하면 그다지 지장이 없을 것 같았다. 천만다행이었다. 그때서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쉴 수가 있었다. 금시에 해가 비치면서 날씨는 다시 좋아지기 시작했다. 도중에 옥천 휴게소에 들러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옥천(沃川)은 나와 특별한 인연이 있는 곳이다. 내가 장가를 든 곳이 옥천이다. 영덕대게로 유명한 경상북도 영덕군 강구중학교 초임교사로 있을 때다. 지금으로부터 43년전 1967년 2월 18일 충청북도 옥천읍 소정리 어느 허름한 과수원집 마당에서 나는 사모관대(紗帽冠帶 : 전통 혼례 때 신랑이 착용하는 모자와 복장)를 하고 집사람과 꼬꼬재배(전통혼례식)를 올렸다. 그 때 그 일을 생각하면 그때도 그랬는데 지금도 웃음부터 먼저 나온다. 그래서 첫딸을 낳았는지 모르겠다.
시간 여유도 있고 해서 느긋하게 손자와 같이 하얗게 덮인 눈 위에서 한참을 보냈다. 어미는 눈사람도 만들고 눈 위를 좋다고 뛰어다니는 손자 녀석의 동영상 사진을 찍기도 했다. 날씨가 어찌나 포근하던지 애기가 노는 데는 더 없이 좋은 상태였다. 세상에 태어나서 녀석이 맘껏 눈을 밟아보고 뛰어다니고 만져보고 등 눈 경험을 본격적으로 한 게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런 상황은 일부러 만들기란 더 어려운 일이다. 그것 하나만 해도 이번 여행이 비록 짧은 시간 동안이긴 했으나 충분한 소득이 있었다고 생각이 든다.
이야기의 처음으로 돌아가본다. 그날 오후 1시경 안양 출발, 인천 송도에 가서 며느리와 두 돌이 가까운 귀여운 손자를 태웠다. 거기서 제3송도교를 넘어서면 바로 77번 도로이다. 이어지는 제3경인고속도로 월곶 분기점(JC)에서 50번 국도, 영동고속도로로 접어든다. 다시 동수원을 지나 신갈에서 1번 경부고속도로에 들어서자 대전까지 직행이다. 비룡분기점에서 갈라져 대전 동구까지 갔고 거기서 시작되는 통영대전고속도로(35번 국도의 일부)를 내처 달려 어두운 저녁무렵 통영에 도착했다. 그야말로 강행군이었다.
사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나도 이제는 옛날 같지가 않다. 먼 거리를 계속해서 여러 시간 운전을 하기가 어렵다. 젊을 때야 누구나 대개 그러하겠지만 난 특히 자동차는 아무리 오랜 시간 운전을 해도 지칠 줄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하루 500~1.000km를 몰아도 그로 인해 피로를 느낀다거가 다른 일에 지장을 받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나에게 자동차 운전 그 자체는 노역(勞役)이 아니고 즐기는 휴식이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순간순간 눈 앞에 펼쳐지는 파노라마를 감상하면서 달리노라면 신이 나고 콧노래가 저절로 나온다. 드라이브가 어찌 따분하거나 힘이 들어서야 되겠는가.
나는 대구 사람이라 지금도 대구 내려갈 일이 자주 생긴다. 아흔여섯이신 노모가 형님댁에 계신다. 그럴 때면 으레 자동차로 가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근자에는 오갈적마다 힘에 부치는 것을 느끼곤 한다. 컨디션이 아주 좋으면 단숨에 300km 정도는 달릴 수 있지만, 그런 최상의 상태는 드물다. 아무리 신경을 써도 조금 가다 보면 어느새 머리가 띵해지고 하품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졸음이 잘 온다. 그럴 때는 가까운 휴게소에 들러 휴식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문제는 그런 횟수가 잦다는 데 있다.
물론 이번 여행에서도 내가 주로 운전을 했지만 집사람과 며느리가 중간중간 도와주었기에 무리없이 잘 끝마칠 수가 있었다. 힘 든 만큼의 소득은 있었던 후회없는 여행이었다. 급작스런 여행이었지만 가족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케 하고 가족의 소중함을 실감케 한 계기가 되었다면 그게 가장 큰 소득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인생은 아름답고 즐거운 것이다. 끝까지 우리를 무사히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2010. 12. 22.
林谷齋/草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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