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성장의 주역들, 노욕 버려야
[김태복 목사] 한국교회의 현주소와 진로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눅12:16~21)
한국 교회의 현주소가 어디인가?
지금 한국교회는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가. 한국교회 역사가 안고 있는 아이러니컬한 사실은 ‘1900년대 초기 한국교회는 10여만 신자에 불과했다. 그런 아동기에 불과한 한국교회가 어떻게 3·1 운동에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는가? 그에 비해서 100년이 지난 한국교회는 120배의 신자가 성장했음에도 사회를 선도하기는커녕 사회로부터 병들었다고 지탄받는 위치에 서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하는 점이다.
그러나 굳이 변명한다면, 3·1운동 당시 한국교회는 성숙한 교회였던 서구 교회가 파송한 선교사들의 온상 안에서 과보호를 받고 있었을 뿐이다. 그 선교사들에 의해서 학교, 병원, 사회사업이 기초를 닦기 시작했고 독립운동에 대한 지도를 간접적으로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당시의 한국교회는 진정한 자립된 교회라고 볼 수 없고 다만 아동기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6·25 사변 후에 북한교회가 남한으로 대 이동하면서 한국교회는 아동기를 벗어나 청소년기를 맞게되었다고 볼 수 있다.
청소년기의 특징은 성장이다. 때로 중·고등부 수련회 때 가보면 식사량이 대단한 것을 볼 수 있다. 얼마나 먹어대는지 식사 봉사하러 간 분들이 혀를 둘려댈 정도이다. 그들은 배불리 먹어도 돌아서면 배고픈 것처럼 먹어댄다. 그 때는 돌을 먹어도 삭힐 것 같은 기세이다. 그런 만큼 놀랍게 성장한다. 중 3학년이나 고 1학년 쯤 되면 하루가 다르게 키가 큰다.
한국교회의 청소년기는 6·25 사변 이후라고 할 수 있다. 1950년 이후부터 한국교회는 놀랍게 성장해 왔다. 1980년대 중반까지 한국교회는 10년마다 그 숫자가 배가 될 정도로 폭발적인 성장을 해왔다. 더 놀라운 사실은 상류층으로 갈수록 기독교인의 비율이 높다는 점이다. 「크리스챤 뉴스위크」라는 주간지에 보면 불교신문에서 조사한 내용을 게재(揭載)하고 있는데, 우리 나라 고위 공직자 1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기독교인이 42명, 카톨릭이 20명, 불교가 9명, 무종교가 26명, 기타가 3명으로 확인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기독교가 한국 사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막강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교회가 사회로부터 받는 비난 중에 가장 가슴 아픈 것이 무엇인가. ‘기독교인들이 25%나 되고 상류층으로 갈수록 기독교인이 42%나 되고 천주교까지 계산하면 62%나 되는 데도 한국 사회의 도덕이 이처럼 썩었는가?’라는 점이다. 그 대답은 간단하다. 종교적으로 가장 영향력이 있는 기독교인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바로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각종 대형비리 사건마다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인물들이 기독교 중직(重職)들이니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왜 그렇게 되었는가. 한국교회가 그 동안 오직 성장위주로만 주력해 왔기 때문이다. 마치 청소년기에는 기걸 들린 것처럼 먹어대듯이, 한국교회는 그 동안 오직 은혜와 복과 능력을 받기 위해서만 전력해 왔다. 그래서 기도원이나 각종 다양한 성경공부나 성장세미나 마다 만원사태를 이루어왔던 것이다. 얼마나 한국교인들이 은혜를 사모했는지, 여름철 휴가도 기도원으로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심지어 설날 연휴 때도 금식기도원에서 금식하는 사람들로 대만원을 이룰 정도였던 것이다. 그 때의 한국교인들은 은혜와 복을 받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을 정도로 사모하던 시기였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는 한껏 몸집을 불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조정기(調停期)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급성장하던 한국교회가 1980년대 후반부터 15년 동안 거의 성장이 멈추고 있다. 아니, 오히려 많은 교회들이 교인수가 줄어들고 있다고 안타까워하고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저는 지금 급속도로 성장하던 한국교회가 잠시 멈추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조정하시는 과정이라고 생각해 본다. 다시 말하면 이제는 한국교회가 한없이 성장으로 치닫던 청소년기를 벗어나 청장년기에 들어서는 전환기에 처해 있다고 볼 수 있다.
청장년기에 들어서면 우선 먹는 것부터 줄어든다. 고등학교 때는 걸신들린 것처럼 먹어대더니 23, 24살이 되니 먹는 양이 현격히 줄어든다. 이제는 키도 잘 자라지 않는다. 한국교회가 청장년기에 들어서니 은혜를 사모하는 열정이 약해졌고, 외형적인 성장도 멈추었다. 그러나 청장년기에 달라진 점은 책임을 질 줄 안다는 점이다. 그래서 취직도 하고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게되는 것이다. 이제 청장년기에 이른 한국교회는 성장위주에서 성숙위주로 대 전환해야 합니다. 급성장하면서 커진 몸집에 충실한 내용으로 채워야 한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지금까지 그리스도를 믿고 아는 것에는 열심을 나타냄으로 은혜와 복, 능력을 많이 체험했지만, 그 받은 바 은혜를 움켜쥐려고 할뿐, 어리석은 부자처럼 나누어주지 않는 데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아니된다. 이제는 끝없이 은혜와 복만 받으려는 개교회 성장위주에서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려는 신앙의 생활화(生活化), 섬김과 나눔으로 나타나는 성숙한 삶으로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국교회는 또 한번 도약을 할 것입니다. 이제는 농어촌의 미자립교회들과 불우이웃기관들, 그리고 북한선교와 세계 선교를 향해 나누어주고 섬기는 교인들과 교회들이 되도록 해야한다.
그렇지 못하면 자기 몸을 주체하지 못하는 비대증 환자가 되고 말 것이다. 한국교회가 병든 이유가 그 동안 열심히 복과 은혜를 받기 위해서 헌신하고 기도는 했지, 복과 은혜를 받은 후에 그것을 어떻게 감당할지 몰랐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과 같이 도덕적으로 병들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 사실을 미국 교회로부터 배워야 한다. 어느 재료집에서 이런 글을 읽어본 적이 있다.
미국의 신학자 칼 두들(Carl Dudly)의 조사에 따르면 “1940년부터 1960년까지 20년 동안 미국교회가 가장 왕성했던 시기라고 한다. 1940년대 미국의 주요 개신교, 장로교, 성공회, 루터교, 감리교인이 미국 전 인구의 49%였다고 한다. 그 뒤 20년 동안 전 인구의 15%가 증가했다고 한다. 이토록 왕성하게 성장하는 기간 미국교회가 한 일과 그 당시 선포된 메시지의 내용을 일반적으로 총괄하여 분석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1. 미국 교회가 한 일
(1) 미국 교회는 가장 왕성하게 성장할 때에 예배당을 크게 지었다. 교회가 성장하는 기간에 가장 중요하게 한 일이다. 지금 도심 가운데 비어있는 교회들이 그때 세워진 것이라고 한다. (2) 미국 교회는 가장 왕성하게 성장할 때에 신학교를 많이 세웠다. 각 교단 신학교들이 미국 곳곳에 세워졌다. (3) 미국 교회는 가장 왕성하게 성장할 때에 깊은 산 속을 찾아다니며 캠프장이나 기도원을 세웠다.
2. 선포된 메시지
(1) 예수를 믿은 것과 중산층이 되는 것을 강조한 내용이었다. 즉, 예수를 믿으면 잘 살게 된다는 것을 강조했다. (2) 예수를 믿으면 좋은 사회적 지위를 얻는다고 강단에서 선포했다. (3) 예수를 믿으면 좋은 가정을 갖는다고 하는 아메리칸 드림과 일치하는 메시지였다. 1960년부터 이런 소망이 실제로 실현되면서부터 미국인들은 교회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삶이 어느 정도 안정되고, 가정이 안정되고, 지위가 안정되면서 교회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 결과, 1964년 이후부터 1974년까지 감리교인이 1백만 명 줄었다고 한다. 그리고 1984년까지 920만 명이 줄었다고 한다.”
이런 재료를 보면서 마치 70년대, 80년대 한국교회의 보고서를 읽는 느낌을 금할 수 없다. 서구교회와 미국교회가 밝았던 실패의 전철을 한국 교회는 피해 갔어야 마땅한 것이 아닌가. 그러나 가슴 아프게도 40년대, 50년대의 미국교회의 모습을 한국교회는 70년대, 80년대 그대로 답습했다는 사실 이다. 그 결과, 성장이 둔화되거나 마이너스 성장을 나타내고 있지 않는가? 아니다. 한국교회는 이대로는 안 된다. 과감한 변신이 필요하다. 이제 한국교회는 새로운 변화기를 맞고 있다. 사실, 그 동안 한국교회 성장을 주도해 왔던 대표적인 선두주자들이 일선에서 물러날 시기를 맞고 있다.
2001년도「월간목회」지(誌) 4월호 대담란에서 주간 박종구 목사는 말하기를 ‘5년 내지 10년 후에는 현재 대교회 담임 목회자들의 80% 정도가 전부 은퇴하게 될 것입니다. 100개 교회를 선정해 놓고 보아도 5년 내지 10년 후에는 담임목사의 약 80%가 현역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그러면 어떤 현상이 오게 될 것인가 할 때 대교회에 소물급 목회자가 담임목사로 가면서 한국교회의 대표성이라든지 연합운동에 구조적인 개혁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진정 한국교회는 새로운 조정기, 변화기를 맞고 있는데 그것은 청장년기에 맞는 성숙함으로 나타나야 한다.
성장의 주역들, 노욕(老慾)을 버려야
한국사회가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경제성장을 이룩한 것처럼, 한국교회의 급성장의 주역은 지금의 대교회들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 교회들이 전력투구한 결과 오늘 한국교회 4만 교회, 7만 교역자, 1,200만 신자들을 가지게 되었고, 세계 160개국에 만 여명 이상의 선교사를 파송하게 됨으로 세계교회가 놀라고 있을 정도가 되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선교 100년이 겨우 넘은 한국교회가 세계 대형교회 25개 중에 10개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세계교회 역사에 유례가 없는 것으로 하나님의 베푸신 기적이라는 표현 외에는 없는 것이다.
또한 그러므로 대교회들의 공로를 아무리 극찬(極讚)하여도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급성장의 주역들이 이제 은퇴를 몇 년을 앞두고, 교단장 선거문제, 세습문제나 교회자금의 남용문제로 많은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것은 너무나 아쉬운 모습이다. 그 대표적인 분들을 나이별로 나열해 본다면 1928년생:최해일, 1929년생:홍순우 이만신, 1930년생:장기천 김선도 김소영, 1932년생:김충기, 1933년생:곽선희 김의환 은준관 오관석 배동윤 김창인 김기수 표용은, 1934년생:박조준 김장환 박태희 지 덕 석원태 김호식, 1935년생:장광영, 1936년생:조용기 피종진, 1938년생:김홍도 이호문 목사 등이다.
그들이 바로 한국교회를 세계 앞에 우뚝 서도록 급성장 하는데 견인차(牽引車) 역할을 한 분들이다. 그들의 생년월일을 보면 1938년부터 1928년까지로 60대 중반부터 70대 초반에 이르고 있는 나이다. 그들은 6·25 사변 당시 사춘기의 강을 건넜거나 군인으로 끌려가 전쟁의 강을 건너면서 생존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분들이다. 어느 의미에서 그러한 생사의 갈림길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은 분들이기 때문에. 살기 위해서는 어떠한 수단이나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청소년 시절을 보냈던 분들이다. 그러므로 생에 대한 집착, 성공에 대한 집념은 상상을 초월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바로 그런 일사각오의 투쟁정신으로 산 결과, 오늘의 성공, 오늘의 대교회가 이룩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자기가 이룩한 모든 성업(聖業)들을 자기 것으로 착각하여 계속 움켜쥐려는 모습은 추하게 보여진다. 오늘 대기업들도 계속 움켜만 쥐려고 하다가 근본적으로 무너지고 있는 것을 교훈 삼아야 한다. 돈벌이를 목적으로 하는 일반 재벌기업들도 창업 1세대가 물려주는 경영권을 2세대에게 세습할 때 비판이 쏟아지고, 전문 경영인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것이 가업을 위하고 국가를 위하고 국민에게 기여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사진은 2007년 7월 8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있은 2007 한국교회 대부흥 100주년 기념대회 장면 중 일부. 이날은 한국교회가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하고 있음을 통회하며 반성하는 자리였다. ⓒ 100주년 기념대회 사무국
그런데 하물며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그의 길을 증거하는 목사직을 자기 아들에게 세습한다는 것은 말 자체가 우선 더럽기 짝이 없다. 교회의 지배권을 세습까지 하다니, 어쩌다 교회가 이 지경이 되었는가! 예수 그리스도는 가난한 자, 병든 자를 사랑하고 부패하고 죄 많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불의에 맞서 싸우다가 십자가에 사형 당한, 집도 절도 없는 나그네였으며, 그 자신이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한 진리 자체였다. 이런 예수의 길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의 종이라면 또 이런 예수님의 몸으로 존재하는 교회라면 무엇을 세습할 수 있겠는가?
여기에 세습이라는 말이 적용되는 상황 자체가 벌써 그리스도와 인연이 먼 길로 빠지고 있음을 뜻하며 이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는 죄악이다. 왜? 자기 혈통에게 세습하려고 몸부림치는 목사들은 자기 왕국을 건설했고, 거대한 부를 축적해 놓고 있으며, 권력과 부를 자기의 뜻대로 부릴 수 있는 권력을 소유하고 있고, 그가 장악하고 있는 모든 기득권을 본이 죽은 후에도 행사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한용상:「교회가 죽어야 예수가 산다」213페이지)
성장의 주역이 되신 분들이여, 이제는 노욕(老欲)을 과감히 벗고 하나님 앞에 빈손으로 서십시오. 그 때 한국교회는 선한 싸움을 믿음을 지킨 그 모든 분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리라고 믿는다. 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자기가 이룩한 대교회라는 노욕에 매인다면 자기들이 쌓아 놓은 공든 탑을 자기들이 허무는 우행(遇行)을 저지르므로 온 한국교회 뿐 아니라 사회로부터 엄청난 지탄을 받을 것이 불을 보듯 환한 일인 것이다. 1990년 초에 「월간목회」지(誌)로부터 은퇴하신 목회자 중에 존경받는 분들을 탐방하여 인터뷰 기사를 써달라는 청탁을 받고 2년여 동안 12분의 원로 목회자들을 찾아 다녀본 때가 있었다.
한경직 조동진 임택진 정규오 박용익 조향록 방지일 정진경 한병기 이상근 박명수 최동진 등, 오늘의 한국교회의 기초를 닦는데 큰 힘이 되었던 목회자들이었다. 전국 여기 저기 다니면서 한 분, 한 분을 찾아뵙고 두 세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는 동안 큰 감동을 받았고, ‘저 분들의 목회적 삶에 비하면 나의 삶은 너무 보잘 것 없구나’라는 생각으로 부끄러움을 안고 돌아오고는 했다. 그들은 성자적인 목회상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은퇴한 후에도 검소 그대로였다. 그들은 자기의 전생을 바친 목회지도 조금도 주저 없이 물러섰고, 무슨 흥정 따위의 추한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원로 목회자들의 탐방이 마쳐갈 무렵, 잡지사에서는 이제 현역 목회자 중에 이름 있는 이들을 계속 인터뷰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이 들어왔으나, 사양했다. 그 이유는 아직도 목회를 마치지 못한 분을 평가한다는 것은 잘못하면 우(遇)를 범하기 쉽기 때문이었다. 지금에 와서, 지금 현재 은퇴를 앞두고 있는 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 때의 결정이 옳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더욱 원로 목회자 중에 당연히 들어갈 수 있는 분이 김창인 목사 였는데 그 분의 사정으로 차일피일 하다 보니 빠지게 되었는데 그것도 하나님의 도우심이라는 생각을 가져본다.
여하튼, 그 원로목회자들에 비하면 지금 한국교회를 주도하고 있는 분들에 대해서는 별로 존경심이 일어나지 않는다. 아니 된다. 이제라도 그 명예를 회복하는 길은 과감히 노욕(老慾)을 버리는 것이다. ‘선배들이여, 이제 마음을 비우고 유종의 미를 거두어 주십시오.’라고 애원하고 싶다. 성장주역들의 한국교회의 견인차 역할은 이제 끝나고 있다. 그럼에도 계속 지도자연하면서 앞에서 끌려고 한다면 한국교회의 또 하나의 성장을 장애 하는 요소만 될 뿐이다. 끝으로 성장주역들에게 서울고법 (高法) 부장판사인 이우근 장로가 쓴 한경직 목사에 대한 추모시를 소개하고 싶다.
847 total views, 1 views today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