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촌수필문학회> 김병규

 

산과 들이 온통 푸르러 달콤한 유혹의 눈길을 보낸다. 답답하고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 싱그러운 자연의 품에 안기고 싶은 계절이다. 오랫동안 병상에서 신음하던 나도 자연의 손짓에 마음이 끌린다. 지겨운 투병생활에서 벗어나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 잠시 나들이라도 다녀오면 답답한 가슴이 후련하게 트일 듯싶다.

나의 투병생활은 길고도 고통스러웠다. 지난해 당한 교통사고 후유증 탓이다. 연쇄반응(連鎖反應)으로 발생한 허리 골절은 3차 시술까지 하는 동안 나는 초주검이 되었다. 네 마디나 골절된 허리뼈 시술 때문에 부동의 자세로 긴 세월 누워있어야 했다. 무섭게 몰려오는 통증은 생사를 넘나드는 고통이었다. 나는 지칠 대로 지쳐 기력도 떨어졌다. 그 힘겹던 투병생활 중에도 계절은 쉬지 않고 바뀌었다. 겨울이 봄으로, 봄은 또 여름으로 변했다. 세월처럼 무심한 것이 또 있을까? 입원 중 봄이 돌아왔을 때, 창밖에는 벚꽃이 구름처럼 피었다. 덕진공원을 오고가는 사람들의 경쾌한 발걸음을 병실의 창문으로 바라보면서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언제쯤 나도 저렇게 걸을 수 있을까? 선망의 눈동자가 창가에 머물러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이를 악물고 이 고난을 넘겨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세월이 약이라 했던가?
3차 시술 뒤 3개월이 지났다. 참기 어렵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나는 혼신의 노력으로 잘 넘겼다. 무섭게 공격하던 통증은 날카로운 칼을 접고 퇴각을 서두르는 것 같았다. 간헐적으로 밀려오는 통증은 줄어들었다. 이른바 생사를 넘나들던 투병전쟁은 종전(終戰)의 청신호가 나타났다. 언제 또 복병이 발악할지 예측할 수는 없지만 회복의 희망이 보인다. 열망했던 건강회복에 자신감이 생기고 힘이 솟아오른다. 마음의 여유도 생겨 멀어졌던 세상에 다시 접근하고 싶었다.

푸른 나무와 그늘이 그리운 7월이 시작되었다. 경인년 상반기가 악몽 속에 사라졌다. 몸은 무거우나 마음은 날아갈 듯 상쾌하다. 가벼운 나들이라도 하고 싶다. 허리에 복대를 두르고 지팡이를 들었다.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건지산을 향했다. 건지산 초입 물탱크 밑에는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있다. 우리 가족이 전주로 이사 오던 23년 전에 회초리였던 나무가 거목으로 자라 시원한 그늘쉼터를 만들었다. 오랜만에 쉼터에서 보이는 세상이 별천지였다. 나는 집에서 1,000여 미터가 넘는 거리까지 모험적인 나들이를 하였고, 왕복 2,000미터의 보행은 성공적인 도약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샤워를 한 뒤 온 몸이 나른하여 눕고 말았다. 오랜만에 달콤한 낮잠을 즐겼다.

답답하고 외로운 투병생활은 창살 없는 감옥생활과 같다. 정을 안고 찾아오는 문병객은 사랑이 넘치는 구세주다. 나의 오랜 투병에서 느끼는 꾸밈없는 감정이다.
비몽사몽간에 조카딸이 또 문병을 왔다. 내가 사고를 당한 뒤 자주 찾아오던 천사 같은 조카다. 그는 초췌한 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대뜸 말했다.
“작은아버지! 차를 대 놓았으니 고향에나 다녀오시게요.”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 말이던지, 나는 앞뒤 가릴 것 없이 차에 올랐다. 왕복 400리 고향 길, 날아가듯 달리던 차는 한 순간에 고향에 접근했다. 산과 바다가 어울린 아름다운 내 고향, 나는 감격스런 마음으로 고향의 품에 안겼다.

고향 마을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옛날의 바다와 산 그대로였다. 따뜻하고 정겨운 인심도 그대로였다. 동산의 나무와 풀과 이름 모를 들꽃들을 바라보니 새롭기도 하고 삶에 대한 풋풋한 감정이 온 몸에 스며들었다. 두근물로 갔다. 내 어릴 때 동무들과 어울리던 놀이터이자 수영장이다. 바닷바람이 전해주는 자연의 소리가 내 심신을 어루만져 씻어주었다. 나는 바닷물에 첨벙 뛰어들었다. 무쇠처럼 무겁던 내 몸에서는 검붉은 액체가 끊임없이 뿜어 나와 바다를 온통 핏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몸은 새털처럼 가벼워졌다. 나는 한 마리의 새가 되었다. 하늘이 붉게 물들인 바다와 살을 섞어 황홀한 노을을 꾸미고 있었다. 나는 아름다운 놀 속으로 훨훨 날고 있었다. 놀은 내 몸을 살포시 안고 빙글빙글 돌렸다.
“그만 일어나세요. 저녁 들게요!”
아내의 목소리가 가물가물 들렸다. 나는 벌떡 일어나려다 허리가 짜릿하여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오직 나들이가 하고 싶었으면 꿈에 고향을 다녀왔을까. 오수(午睡)에 꾼 일장하몽(一場夏夢)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2010. 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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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 그리워도
못가는 신세

저하늘 저산아래
아득한 천리

언제나 외로워라
타향에서 우는몸

꿈에 본 내고향이
차마 못잊어

고향을 떠나온지
몇몇 해련가

타관땅 돌고돌아
헤매는 이몸

내부모 내형제를
그 언제나 만나리

꿈에 본 내고향이
마냥 그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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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곡재/초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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