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선생님
여전히 건강하시고 즐겁고 보람된 나날 보내고 계시지요.
무소식이 희소식이리라 以心傳心으로도 짐작하고 있습니다.
조미미의 노래든가요 “바다가 육지라면” 이.
진작 만나뵙고 이야기라도 나눌 수 있는 기회라도 있으련만요.
이런 소박한 저의 바람도 백년하청(百年河淸)일까요.
날씨가 무척 더워지고 있습니다. 그곳 더위도 여기 못지 않게 만만치가 않던데요. 지금부터 앞으로 두어 달 동안이 문젭니다. 해마다 치루어야 하는 반갑잖은 이 연례행사를 어떻게 하면 금년에도 좀더 슬기롭게 대처해나가야 할 것인가가 큰 과제입니다.
거기 있던 동안 어느 한 해 여름은 하도 더워 도저히 집안에 있을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집사람과 같이 두 노인네(?)가 점심과 돗자리를 준비해서 Manhattan의 Central Park에까지 가서 짙은 나무 그늘에 자리를 잡고 하루 낮을 보내고 온 일도 있었습니다.
저희가 rent 한 집이 東向이라 오후만 되면 서쪽에서 불덩이 같은 햇볕이 정면으로 실내로 쏟아져 들어오는 바람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습니다. 거기가 Forest Hills의 Queens Boulevard 였지요. 자기 집 없는 사람의 설움을 한때나마 뼈저리게 느끼며 살았던 쓰라린 기억이 생생합니다. 지금에 와서 돌아보니 그것도 다 저에게는 유익하고 참으로 좋은 경험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良藥은 몸에 쓰다 (Good medicine tastes bitter.)라는 격언이 생각납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게 아닌가 봅니다. 때로는 고통과 고난이 찾아오기도 하지요. 그 고통과 고난은 피해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누가 대신 져줄 수도 없습니다. 특히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고통과 고난의 아픔에 직면하게 될 때 사람은 누구나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새로운 삶의 전환점을 이루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무작정 덥다 덥다하고 아무 하는 일도 없이 가만히 집에 들어앉아만 있을 수도 없구요. 지난날을 되돌아보아도 그런데요. 사람이란 무엇이든 집착하는 일이 있으면 자연 거기에 몰두하게 되고 그런 가운데서 더위가 언제 지나가는지도 모른 채 여름을 보낸 기억이 있습니다.
길을 찾아야지요. 길이 없으면 새로 길을 내어서라도 가야지요. 그게 우리네 인생살이인 것 같습니다. 가는 길이 다 같을 수는 없구요. 저마다 나름대로 자기 길을 개척해 나가야 하나 봅니다.
현명하고 기발한 피서법이 여러 가지 이겠습니다만 자기에게 맞는 방법을 택해야 하겠지요. 요즘의 저같이 할일 없는 사람의 경우라면 독서삼매경(讀書三昧境)에 빠져보는 일도 한 가지가 훌륭한 피서법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일찍이 시인이요 국 영문학자인 무애(无涯) 양주동(梁柱東, 1903-1977) 선생은 그의 유명한 수필 “勉學의 書”에서 <독서의 즐거움>에 대해 선생 나름의 철학을 갈파(喝破)한 적이 있습니다. 선생은 “맹자(孟子)의 인생 삼락(人生三樂)에다 모름지기 ‘독서(讀書), 면학(勉學)’의 제 4일락(第四一樂)을 추가할 것이다”라고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란 杜甫의 詩句를 인용했던가요.
제가 보내드리는 글들이 다가 윤선생님 취향에 맞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취사선택권은 어디까지나 선생님 몫입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저도 괘념치 않으니 전혀 구애되지 마십시오. 우리 속담에 “소발에 쥐잡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소가 뒷걸음을 치다가 쥐를 잡는 경우 만큼 좋은 글을 접하기도 쉽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저의 비유가 너무 지나친 감이 없지는 않지요만.
어쩌다 마음에 드는 좋은 글을 대할 때의 그 기쁨을 어디에다 비유할 수 있을까요. 좋은 글의 힘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으리만큼 지대하다 하겠습니다. 평생토록 어떤 사람의 뇌리에서 자리하고 있으면서 그 사람의 생각과 인생을 즐겁고 윤택하게 해주고 있으니까요. 그런 글이 바로 영원한 마음의 양식(糧食)인가요.
[작가 박상우의 그림일기] ‘나는 너에게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가 copy 하시기가 그렇게 힘이 드셨군요. 그렇게 힘이 들면 안 되는 데요. 10번을 시도해도 잘 안 된다하셨으니. 그런건 읽어만 보시고 그냥 지나쳐버리세요. 윤선생님이 읽어보시는 데 글의 의미가 있는 거니까요. 선생님의 site로 들어가서 <에세이>며 <사는이야기>등을 저도 자주 봅니다. 그 외에 [수신확인]을 통해서 보내는 즉시 윤선생님이 글을 읽어보신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점 대단히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래 장영희 교수의 글 “불쾌지수 관리법”이 참으로 아름답고 순수한 보기 드문 귀한 글이라 여겨집니다. 저같은 사람이 감히 이런 글을 평한다는 자체가 무례인 줄도 알고는 있습니다만. 그러나 좋은 건 좋다고 말하고 싶을 따름입니다.
늘 아름다운 생각하시며서 좋은 글 많이 쓰셔서 보여주십시오. 기꺼운 마음으로 읽겠습니다. 그게 선생님과 저와의 유일한 대화방법 아니겠습니까. 아시다시피 혈액의 원활한 circulation만 필요한 게 아니라 인간에게는 생각의 소통 또한 못지 않게 중요한 것입니다.
건강하고 즐거운 나날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2010. 7. 5.
서울에서/ 김영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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