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도 범접하지 못할 박근혜의 매력과 내공의 힘

박근혜의 부정적 별명중에 대표적인 것이 ‘1 0 0 단어 공주’ 와 ‘유신공주’ 이다.
정치적 대척점에 있던 좌파정권이 박근혜의 이미지를 폄훼하고 브랜드를 왜곡시키기 위한 마케팅
전략 으로 심혈을 기울여 만든 별명이었던 것 만큼 한나라당에서도 이 교묘한 별명에 대한 반박이
다소 궁색 스러울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부정적 별명’을 한방에 ‘긍정적 별명’으로 뒤집어버린 사람이 있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사람은 바로 강준만이었다.
강준만이 누구인가?

자타가 인정하는 좌파이론가요 정치평론가이자•사회학자요•언론인이자 대학교수라는 다양한
직함을 가진 김대중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좌파 1 0 년 정권 만들기의 숨은 공신이다.
그가 노무현시절, 야당대표 박근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칼럼을 두어개 썼는데 그 칼럼에서
박근혜의  부정적 별명 두 개를 한방에 정리하였다.

박근혜 대표가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에 대해 똑같은 답변을 되풀이 하는 것에 대해 비판자들은
자질을 의심하지만, 지지자들에게는 그것도 매력이 된다고 했다.
그리고 모든 사안을 1 0 0 단어로 정리하는 것도 ‘능력’이라며 문화평론가 이재현의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게 1 0 0 단어 이내에서 모든 사태를 설명하는 것도 능력”이라는 평가를
소개한 것이다.

박근혜가 ‘유신공주’라는 것에 대해서도 그는 ‘물론이다’라고 동의하며 이렇게 덧붙인다.
“박근혜를 유신공주로만 인식하는 노 정권의 좁은 시각이 오늘의 박근혜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정치인 박근혜 인기의 비결이 외모자산과 부모의 후광효과만이 아니라,
상당 부분 스스로 개척한  덕목과 능력에 기인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유신공주를 공격하기 위해
비판자들이 만들었으나, 결국 자신들이 먼저 빠진 함정이라는 논리를 편것이다.

어쨌든 그때 이후 좌파정권과 그 추종자들의 입에서 유신공주 수첩공주 소리가 쏙 들어가 버렸다.
열린우리당은 17대 총선 당선자 모임을 청와대에서 성대하게 열었다.
노래와 춤이 곁들여진 여흥을 언론이 문제삼자 박근혜 대표가 이렇게 일갈한다.
“지금이 술 먹고 노래하고 춤출 때입니까?

4 0 0  만 신용불량자, 3 0 만 결식아동의 배고픔, 50만 청년실업자의 눈물을 헤아린다면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강준만은 그때의 박근혜를 이렇게 평가하며 마무리한다.
“박근혜의 금욕주의적 풍모를 보자면, 그 비판은 정략을 넘어서 마음 속 깊은 속에서 우러나온
영혼의 목소리였을까?”

알다시피 노무현은 연정을 제의할 정도로 야당대표 박근혜에게 호되게 당한다.
그무렵 전여옥이 대변인 2년을 소회한 ‘폭풍전야’라는 자서전을 냈는데 대연정 제안으로 열렸던
여야 영수회담 풍경을 이렇게 소개한다.

“박 전 대표가 정부 정책 실패를 조목조목 비판하자 노 대통령은 짜증스러워 했다.
다음 주제에 관한 수치를 김병준 정책실장에게 물자 김 실장이 땀을 훔치며 두꺼운 파일을 뒤져가며
‘2000년도에는…’ 이라고 하자 노 대통령은 ‘누가 그것을 이야기했나.
2010년도지, 아니 그것도 못찾느냐’며 사람들 앞에서 면박을 주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마주앉은 박근혜와 노무현의 회담풍경이 그려지는 일화이다.

전여옥은 ‘대졸 대통령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을 때  대변인을 그만두겠다고 눈물을 흘렸더니
박근혜 대표가 조용하지만 힘있는 어조로 “이겨내라.
인터넷에도  들어가지 말라”며 만류했다고 소개했다.
전여옥은 이책으로 ‘재미’를 좀 봤는데 이후 그녀의 배신과 변절로 이책은 쓰레게통에 들어갈
정도로 가치가 떨어져 버린다.

박근혜는 당대표로서 마지막 마무리로 ‘국민과의 약속, 이렇게 지켰습니다’라는
“대국민 약속 실천백서” 를 펴낸다.
정치에서 약속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백서발간에 대해 당직자들이 몹시 곤혹스러워했지만 박근혜는 고집을 꺽지않았다.

“저도 현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제 입으로 말한 약속과 원칙은 지켜야 합니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공약과 정책을 어떻게 지켰는지를 적은 321쪽에 달하는 이 백서는 유일무이한
“대국민 정치약속백서”로 남아있다.

이전에도 없었지만 박근혜 당대표 이후부터 지금까지 이런 대국민 백서는 누구도 발간할 엄두를
못낸다. 아마도 한국정치사에서 이런 백서는 영원히 발간되지 못할것이고 후일 한나라당 박물관
에나  전시될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금도 이 백서야말로 박근혜식 정치의 정수라고 본다.

강준만이 박근혜를 ‘금욕주의적 풍모’라고  표현했듯이 박근혜는 부정부패와 부조리에 대해서만큼은
누구보다 단호하다.
경선때 가까운 인척이 선거자금을 모금하고 있다는 말을 듣자마자 곧바로 전화를 걸어 당장 중단하고
그 돈을 다 돌려주라고 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또 모 출판사에서 작가를 고용해 자서전을 써오자 한마디로 물리친다.

“이건 제가 쓴 것이 아니잖아요 ”
툭하면 출판기념회를 여는 정치인들중 과연 자필로 직접 쓴 책이 얼마나 될까?
90년 9월 2일 박근혜는 자신의 일기에서 이렇게 썼다.
“권력은 칼이다. 권력이 클수록 그 칼은 더욱 예리하다.
그 칼을 마구 휘둘러서 쌓이는 원망, 분노, 복수심은 되돌아와 그의 목을 조른다.”

90년 육영재단 이사장을 그만둔 뒤 박근혜는 ‘비로소 나의 인생을 살았다’고 말했다.
단전호흡과 일기로 자신을 달래며 박근혜는 처음으로 전국을 여행하며 우리 문화유산을 답사한다.
그 무렵이 자신이 가장 행복했던 시기였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단종 유배지인 영월 청령포에 선 박근혜는 숙부인 세조에게 목숨을 빼앗긴 어린조카 단종의 일화를 생각하며 그 감회를 이렇게 적었다. “내가 그의 벗이 되고, 그가 나의 벗이 된 듯했다 ”
청바지 차림으로 시골길을 걷다가 동네 아주머니에게 국수 한그릇을 얻어먹었다.
그 아주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나서는데, 한 할머니가 따라나와 천원짜리 몇장을 기어이 쥐어주며
박근혜손을 꼭 잡고 이렇게 말했다.

“난 자네가 누군지 알아, 육영수 여사를 똑 닮았네.  힘내 아직 살날이 많아”
눈물을 핑돌게 한 그 할머니를 박근혜는 평생 잊지 못할것 같다고도 했다.
25년이 지난 그 할머니가 지금도 살아계실까?
지금의 정치인 박근혜에게는 이런 삶의 굴곡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아온 세월의 내공이 녹아있다.
분명 부모의 후광으로 출발한 2세 정치인이지만 여느 2세정치인들과 전혀 다른 특별한 향기와
칼라와  콘텐츠가 있다.

한마디로 품격과 차원이 다른 특별한 뭔가가 있는 것이다.
당대표시절에는 과거사 문제로 껄끄러운 일본을 방문했다.
일본 정치인중에서도 극우에 속하는 아베 관방장관과 만나 박근혜는 양국의 예민한 문제들을 직설적
으로 이야기했다. 외교적 수사 관례를 깰만한 강한 표현들이었지만 분위기는 진지하고 훈훈했다.
당시 수행했던 비서가 그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저는 대표님의 말씀을 보고 들으면서 정말 경이롭고 신기하다고 느낀 점이 있습니다.
사실 대표님이 하신 말씀의 내용은 상당히 강력합니다. 그런대도 같은 말을 해도 대표님이 하면
상대방이 흔쾌히 들으면서도 상당히 무겁게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대표님이 말씀하신 내용을 우리나라의 다른 정치인이 얘기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서로 얼굴을 붉히면서 기분 나빠하고, 상태가 더 악화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왜 대표님이 얘기하시면 좋은 분위기에 웃으면서 상대방이 꼼짝 못하게 받아들이게 되는지…
정말 불가사의했습니다 ”

불가사의한 매력…..
인고의 세월을 잘 다듬어 자신의 내공으로 승화시킨 박근혜만의 매력일 것이다.
언젠가는 이 대한민국도 진정 매력있는 나라로 태어나길,,,,
박근혜의 불가사의한 매력과 내공의 힘을 기대한다.

415 total views, 1 views to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