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번줄

                                                               -신효섭 논설위원-

‘1951년 폐허로 변한 한 한옥에서 소년 만욱이가 전쟁놀이를 하고 있다. 소년에게 군사우편 소포가 배달됐다. 마침 생일이다. 소년은 전장(戰場)의 아빠가 보낸 선물인 줄 알고 들뜬 마음에 포장을 뜯는다. 꾸러미에서는 전사한 아버지의 군번줄과 닳아빠진 전투화 한 짝이 떨어진다.’ 한국인 감독 작품으로 처음 2005년 미 아카데미 후보(단편애니메이션)에 오른 박세종 감독의 ‘버스데이 보이'(Birthday Boy)이다.

▶ 1995년 한 미국인 사업가가 중국 단둥(丹東) 군사박물관을 구경하다 미군 군번줄을 발견했다. 군번줄 주인은 6·25 때 실종된 공군 조종사 코프 대위였다. 미군은 10년 가까운 추적 끝에 코프 대위 전투기가 단둥 한 마을에 추락한 사실을 밝혀낸 뒤 2004년 코프의 유해를 발굴해 이듬해 장례까지 치러줬다.

▶ 군대에 갔다온 사람이면 누구나 “군번줄을 받은 순간 ‘아 이제 정말 내가 군인이 됐구나’하는 실감이 났다”고 한다. 그만큼 군번줄은 가장 확실한 군인의 상징물 중 하나다.  목욕 중에도 찰 수 있게 녹이 슬지 않는 스테인리스 판에 소속 군과 군번, 이름, 혈액형을 새겨놓았다.

군번줄은 전쟁 중 부상자 치료와 전사자 신원 확인에 꼭 필요하다. 천안함 희생자들도 대부분 군번줄을 차고 있어 이름을 알아내는 게 쉬웠다. 평시에 군번줄은 군기(軍紀)나 임전 태세 유지의 징표다. 일선 부대들이 수시로 장병들의 군번줄 착용 상태를 점검, 위반자를 징계하는 건 이런 이유다.

▶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선진당 이진삼 의원이 지난주 국회에서 천안함 사태와 관련한 군 기강 문제를 따지다 이상의 합참의장 등에게 군번줄 착용 여부를 물었다.  이 의장은 “안 매고 있다”고 했고, 김태영 국방장관은 “군번줄은 전시에 꼭 차고 다녀야지 평시에 안 차고 나온 게 문제가 될 일은 아니다”고 부하를 거들었다. 이 의원은 “정신 나갔다. 군복 입고 군번줄을 안 매다니 그게 말이 되느냐”고 질타했다.

▶ 대한민국 전함 천안함이 두동강 나 폭침(爆沈)된 게 불과 한 달 전 일이다. 천안함 사태에서 보고 누락과 지연 등 갖가지 군 기강 해이 사례가 드러났다. 국방부는 이미 희생장병들을 ‘전사자(戰死者)’로 예우했다. ‘별’들이 ‘평시’라며 군번줄을 매지 않는다면 ‘졸(卒)’은 무슨 명분으로 매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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