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신문을 보니, 시골 아낙들이 봄 들녁에 과도와 소쿠리 옆에 끼고 봄볕 맞으며 냉이를 캐는 사진이 나왔는데 잔잔하게 미소가 일었습니다.
어릴 때는 우리 동네 앞이 다 냉이 밭이어서 먹지도 못하고 버리고 말 것이었지만, 캐는 재미로 하루가 참 빨리도 지나갔습니다. 동네 아이들과 우르르 한 덩어리로 몰려다니며, 남의 밭에 몰래 들어가 과도로 쑥쑥 미처 녹지도 않은 밭을 헤집어 놓고 도망가는 재미 역시 잊을 수 없는 추억입니다.
가끔 논두렁에서 논 미나리라도 발견하면, 한 움큼 꺾어다 집에 가져가 반찬해 달라고 조르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엄마는 지저분해서 먹지 못한다고 내버리곤 하셨습니다.
유난히 냉이 뿌리가 허옇고, 길쭉한 것이 매끈하게 검은 흙을 뚫고 나오면 어린 마음에도 기분이 참 환했고, 뿌리가 산삼처럼 굵고 실한 놈을 캐면 괜히 어깨도 으쓱하고 큰 일했다 싶어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기도 했습니다.
‘이거 가져가서 반찬해 먹어야겠다’ 싶어 서둘러 집에 달려가면, 몇 해 전 돌아가신 할머니께서는 하나 있는 손녀가 흙 묻은 손으로 건네는 냉이 소쿠리를 받아들고 “계집애, 많이도 해왔다” 하시며 메마른 손으로 등을 토닥여 주시곤 하셨습니다.
할머니에게는 칭찬을 받을 일이 엄마에게는 늘 핀잔을 들어야 했던 일이었습니다. 엄마는 제가 캐간 한 소쿠리 가득한 냉이를 냉큼 쓰레기통에 버리곤 하셨습니다. 그때는 하루 종일 손 더럽히고 손톱에 흙 때 끼며 한 일이 물거품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 마음도 몰라주는 엄마가 미워서 오기로 쓰레기통을 뒤져 냉이를 소쿠리에 담아들고, 혼자 해먹겠다며 물에 씻어 데치고 고추장 풀어놓고 식초를 한 숟가락은 들이붓곤 했었습니다. 결국 쓰레기통에 들어갈 것이었지만 말입니다.
냉이 캐는 여인네 뒷모습이 참 넉넉하고 푸근해서 혹시 우리 동네에도 냉이가 찾아왔나 싶어 밖으로 나가봅니다. 과도도 챙겨갈까 싶었지만 아직 이른 감이 있어 동태만 살필 겸 동네 앞산으로 산책을 나갔는데 아직 나무와 나무 사이의 공간은 너무 휑하니 비어있고 교회 앞으로 산을 타고 나있는 밭에는 잡초만 듬성듬성 푸른 내를 풍길 뿐입니다.
남도에는 붉은 봄이 이곳 저곳에 꽃망울을 터뜨리며 마음 급한 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고 하는데 아직까지 이곳은 동장군의 기세가 등등하기만 합니다. 아마도 봄의 전령은 우리 동네를 찾아오지 않았나 봅니다.
그래도 혹시 쑥이라도 보이지 않을까 싶어 허리를 한껏 구부리고 땅 밑을 훑고 있으려니 사람들이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봄은 지천에 널려있더군요. 작은 곤충들이 따뜻한 볕에 질척이며 녹은 흙 속에서 연신 무슨 작업들을 하고, 제 몸피보다 큰 먹이를 머리에 지고 영차영차하며 성실하게 움직이는 놈도 있고, 땅굴을 파는지 한 곳에서 앞발로 구덩이를 파는 놈도 보입니다.
푸른 것들이 미처 자리를 잡지는 못했지만, 작은 생물들은 이미 봄맞이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아직 쑥도 냉이도 보이지 않아 상춘객의 마음을 조급하게 하지만 곧 하얀 팝콘을 닮은 목련이 봄을 터뜨리겠지요.
얼마 전 신경을 쓴다고 물을 많이 주어 죽이고 만 선인장 2개를 꽃 화분으로 갈았습니다. 단지 작은 화분의 주인이 바뀐 것뿐인데도 방안 구석구석 불 밝힌 듯 환해지는 것이 좋기만 합니다.
선인장은 냉한 사람들이 잘 키운다고 하는데 이유는 지나친 관심으로 물을 자주 주다보면 뿌리가 썩어 죽어버리기 십상이거든요.
몇 년 동안 키운 선인장을 죽이고 말아서 한동안 요 놈들에게 신경 못쓰고 한꺼번에 물을 쏟아 부은 무신경을 탓하기도 했습니다. 물을 많이 준건 관심이 아니라 무신경이었으니까요. 오늘도 시간을 내어 빈 화분에 새로 정을 쏟을 것들을 심어야겠습니다. 아직 들녘에는 해가 지면 동장군이 진을 치고 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생동하는 봄소식이 찾아오겠지요. 봄은 화분 속 흠씬 촉촉해진 젖은 흙 속에서 오는 듯 합니다.
– 하지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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